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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리 Apr 19. 2016

드디어 뒤집다

2016.04.19

그제. 그러니까 4월 17일, 또 그러니까, 100일에서 꼭 일주일이 더 된 날이었다.

유준이 기저귀를 갈아 매트 위에 눕혀 놓은 뒤 젖병 소독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이 녀석이 업드려서 나를 보고 있는게 아닌가. 마치 이집트의 스핑크스처럼.

다시 한번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분명히 나는 유준이를 바로 눕혀 놓았다. 기저귀를 갈아서 아이를 엎어놓을 리는 없었다.

아내에게 "유준이 봐봐. 뒤집은 거 같아"라고 외쳤다. 아내도 "진짜, 진짜?"라며 믿기지 않은 듯 외쳤다.

태어날 때 우재보다 500g이나 작게 나왔고, 먹는 양도 적어 항상 걱정을 샀던 유준이 아닌가. 그러나 아직 우재가 방실방실 웃으며 팔다리를 휘젓고 있을 때 유준이는 힘차게 먼저 몸을 뒤집는데 성공했다.게다가 다른 아이들은 뒤집은 뒤 며칠이 지나도 잘 하지 못한다는 '몸통 밑에서 팔 빼기'까지 유준이는 단번에 해버렸다.


자랑스럽게 엄마아빠를 쳐다보는 유준이. 그러나 유준이는 곧 부모에게 뒤집기를 보인 것을 후회하게 되었으니....엄마아빠가 '다시 뒤집기'를 수차례나 요구했기 때문이다. 뒤집으면 바로 눕혀놓고 깔깔대고, 핸드폰으로 촬영한다고 다시 돌려놓고, 화질 좋은 카메라로 동영상 찍는다고 다시 뒤집고....결국 지친 유준이는 업드린 것도, 바로 누운 것도 아닌, 요상하게 옆으로 누운 자세로 지쳐버렸다.

"야. 나처럼 뒤집을 수 있냐?" "아니. 난 누워있는게 더 편해"

사실 뒤집은 것이 대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그 즈음에는 몸을 뒤집었으리라. 또 지금 뒤집지 않는다해도 언젠가는 뒤집었을 것이다.


다만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 아픈 곳 없이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를 키워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요즘들어 '젖병 거부권'을 충실히 행사하고 있는 유준이가, 그래서 체중이 늘지 않아 엄마의 애를 태우는 유준이가, 그래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징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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