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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부리 Jun 12. 2016

쌍둥이 딜레마

2016.06.12

어제, 거의 처음으로 쌍둥이들과 '셋만의 시간'을 가졌다.

전에도, 아주 가끔, 한시간 남짓 나 혼자 둥이들을 본 적은 있지만, 어제처럼 몇시간을, 또 저녁 먹이고, 재우는 미션까지 모두 수행한 적은 처음이었다. 


둥이들 때문에 며칠전부터 망설이던 아내는, 결국 남편을 믿고 대학 동창 모임에 나갔고, 어제 오후 5시반부터, 그렇게 둥이들과 나는 '강아지와 늑대의 시간'을 5시간에 걸쳐 보내게 되었다.


아내가 외출하기 전 둥이들을 모두 재워놓았지만, 귀신같은 녀석들은 아내가 나가자 10분만에 일어났다. 

당장 뭘 해야 할지 아득했지만, 아내가 준 한가지 요령만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밥 때가 되기 전에는 절대 분유를 주지 마라.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이 다 꼬인다'. 아내가 수십번의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교훈이란다. 

 

6시가 되기도 전에 일어났으니, 유준이(7시 저녁 식사 예정)는 1시간 10분, 우재(7시30분 저녁식사 예정)는 1시간 40분을 더 버텨야했다. 


일단 타이니 러브 모빌을 가동시키고, 아기 체육관도 켰다. 그러나 정작 둥이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무한도전 이었다. 물론 나도 같이 봤다...


아빠 재롱잔치도 하고, 매트 위에서 굴리기도 하고...한놈씩 아기띠도 해주고 하다보니 어찌어찌 7시가 됐다. 


한 여름에는 밥 먹이기가 정말 힘들다. 난 열도, 땀도 많은 체질이고, 안좋은 것은 귀신같이 아빠 닮은 둥이들도 불덩이 같다. 둘이 껴안고, 40도 정도 되는 분유를 아둥바둥 먹이고 있으려니 금방 온몸이 땀에 젖는다. 둘다!


일단 유준이는 220mm 중 200mm를 먹는데 성공, 그런데 잘 먹던 우재가 수상하다. 100mm 정도를 먹은 뒤 게속 분유병을 밀쳐낸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5~6번만에 어르고, 달래고, 중간에 놀아주고, 트름도 시키고 해서 다 먹이는데 성공했다. 


밥때가 되니 아내는 불안한지 연신 카톡으로 '잘 되가고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이런 사진을 자랑스럽게 찍어 보냈다. 


"네 아들들은 잘있다. 대신 네 남편이 죽어가고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소화를 시키려고 바운서에 앉혀놓고 다시 한시간여를 놀았다. 이제 대망의 취침시간. 불을 끄고, 수면등을 켜고, 자장가를 틀고, 아기띠를 하려는데....두놈이다!!! 누구를 먼저 안아야 하나.


그나마 점잖은 유준이를 안방 매트에 올려놓고(혼자 잠들기를 기대하면서) 우재를 안았다. 그러나 유준이는 난리다. 여우처럼 울어댄다. 우재 역시 잠들 줄 모른다.


조금 잠잠해진 우재를 눕혀놓고 유준이를 안았다. 우재는 굴러다니면서 운다.;;; 다시 우재를 안았다. 


일단 한명이라도 확실히 재워놓기, 다음 '타자'를 안기로 굳게 결심했다. 유준이가 다시 울어댔지만 외면했다. 일단 우재를 재워야 하니까. 


결국 우재는 내 품에서 잠들었다. 유준이는 울다 지쳐 혼자 잠들었다.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쌍둥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일, 아내는 내가 야근할때마다, 회식할 때마다 겪는 일. 아내에게 혼자 울다 잠드는 녀석이 안쓰러워 죽겠다는 말은 여러번 들었지만, 막상 겪어보니 느낌이 또 다른다. 


아내에게, '미션 컴플리티드' 소식과 함께, 2차까지 다녀와도 된다는 '낭보'를 날렸다. 


나도 늦은 저녁을 먹으려고, 탄산수와 다 식은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꺼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사이렌이 다시 울렸다. 


"언놈이 깬거냐" 외치면서 방문을 열어보니...언놈'들'이다. 유준이는 강아지처럼 고개를 들고 있고, 우재는 대성통곡을 하며 굴러다니고 있다. 아마도 우재 울음소리에 유준이가 깬 것 같다. 


두 놈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니, 크게 울었지만 우재는 아직 잠기운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유준이는 말똥말똥하고. 이번에는 유준이를 안았다. 그 전에 우재는 등을 토닥토닥해줘서 안정을 시켰다. 


유준이를 재우는데 우재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맘을 굳게 먹었다. 10여분 뒤 유준이는 잠들었고, 우재 역시 울다 지쳐 잠들었다. 


유준이를 눕히고, 이미 잠든 우재를 다시 안았다. 아기띠를 채우고 자고 있는 녀석을 한참 더 토닥거렸다. 눈에는 눈물자국이 남아있었다. 


혼자 쌍둥이를 볼 때 가장 큰 딜레마는 누구를 먼저 안을 것인가이다. 항상 공평하게 안아줘야지 하다가고, 결국에는 더 크게 우는 녀석을 안아줄 수 밖에 없다. 어제는 자가다 한번 깨는 바람에, 두녀석 모두 한번씩 공평하게 안아 재우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가들이 서운해하지 않고, 엄마아빠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아내는 아가들이 모두 잠든 뒤에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전날 저녁에 엄마얼굴을 못보고 잠든 유준이는 새벽 5시반에 일어나 엄마를 힘차게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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