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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조. 내 안의 나는 잘 지내고 있었니?

by 나의지금Minow


구척 장신 친구가 재미있게 읽었다며 지난달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라는 책을 술술 읽어 넘어갔던 기억이 있어 얼른 읽고 싶었다.

반은 한국으로 휴가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고, 나머지는 휴가를 다녀온 후에 읽었다.




구척 장신 친구는 특별하다.

회사의 직장 동료로 만나서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같이 지내는 시간이 조금 지나면 서로가 할 말을 대신한다.

내 구척 장신 친구와 나와 모두 비행해 본 내 주변 사람들은 왜 둘이 친구인 줄 알겠다고 한다.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게, 그 생각을 담아내는 게 비슷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친구는 책을 읽을 때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는다.

내가 이 책의 주인이었더라면 친구와 같은 구절에 밑줄을 그었으리라.

대신 나는 책의 구절을 내 독서 노트에 옮겨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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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안다는 건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게 바로 나 자신을 아는 일이었기 때문에.

결국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몰라 그렇게 고민을 했던 것은

그만큼 나를 몰랐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만큼 나는 나 자신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것.

- 2인조, P 96 "



질문을 던져 본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가? 1부터 10까지 점수를 매기자면, 7점 정도?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1년 동안은 저축 생각 없이 돈을 써보았다.

뮤지컬, 연극, 쇼핑, 먹는 데 돈을 쓰면서 경험을 사보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쇼핑몰에 오랜 시간 머무르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야 할 물건이 있으면 리스트를 만들어 그것만 사고 나온다.

여러 번 삶의 터전을 옮기다 보니, 불필요한 물건들이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더라. 그래서 최대한 물건을 늘리지 않으려고 한다.

옷도 입는 스타일이 다양하지 않아 한정적이다.

대신 미술관이나 전시를 보러 가는 것, 그리고 책을 사는 것.

먹어보고 싶은 음식, 요리하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사는 건 아깝지 않았다.

맛있는 커피숍에서 좋아하는 책 구절 읽으며 오래된 노래 한 소절 듣는 것,

서점에서 내가 읽고 싶었던 책 가득 사서 나오는 것,

좋아하는 전시 보고 엽서 사서 생각나는 사람에게 편지 쓰는 것,

이것저것 해보고 나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지금은 추릴 수 있을 만큼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0점 중 3 점이 부족한 이유는 사실 아직도 거절이 어렵다는 점이다.

마음이 불편해도 승낙을 하고 나서도, 좋은 소리 못 들은 적이 많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해 주고 나서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처음부터 '노'라고 이야기하지..

그래서 요즘은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게 있다.

불편한 부탁이 들어오면, 바로 부탁에 응하지 않는다.

나에게 먼저 물어본다.

그 부탁을 들어주면서 기분이 나쁠 것 같으면 정중하게 거절을 한다.

그렇게 거절을 하면 뭔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 만도 않았다.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도 없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것.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아, 글을 쓰세요. 노후를 준비해야죠

-10월의 마지막 장, 2인조 "



마지막으로 블로그에 글을 쓴 이후로 한동안 글을 쓸 주제만 만지작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쓰지는 않았다.

휴대폰 안에는 정리를 좀 해 달라고 외치는 사진들과 메모장에 적힌 글감들.

사실 누구 하나 나에게 글을 써라고 강요하지 않고 꼭 글을 써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내가 나의 정체성 자본으로 삼고 싶어 하는 것 중 하나가 나의 스토리를 글로, 영상으로 잘 담아내는 사람이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꾸물거리는 내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듯 10월의 마지막 장의 한 줄의 글귀가 뒤통수를 탁 친다.

그래서 오늘은 컴퓨터를 열고 짧게라도 끄적여본다.

잘했다.





" 사소한 것이라도 나로 하여금 주눅 드는 상황을 자꾸 경험하게 하지 않기.

대신 작고 별것 아닌 것이라도 좋으니 이기는 경험, 인정받는 경험,

타인의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 내는 경험 같은 것들을

자꾸만 해주기.

그뿐 아니다.

좋은 곳에 날 데려가서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훌륭한 예술 작품들을 감상케하고

책과 신문을 펼쳐 세상과 타인에 대해

진지하고 따뜻한 시선을 갖게 하면 그 모든 순간들은 나와 내 영혼을 살찌우고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부정적인 기억과 상처들은 점점 쪼그라든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게 다 나를 사랑해 주는 방법이었다.

내가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2인조"



이 구절은 책의 거의 끝부분에 나온다.

작가님이 1년의 이야기를 쓴 것을 보면서 작가라는 직업이 쉽지 않구나 하고 느꼈다.

적당히 낙천적이고 덜 예민한 나는 겪지 못할 감정, 경험들을 많이 하신 것 같았다.

그럴 때는 기찻길이 평행선을 달리듯, 공감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가 하다가도

'나도 그렇지 나도 나도'하며 공감이 될 때도 있었다.

그때는 기차선로가 역에 들어오기 전에 교차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부분에 나온 이 글을 읽으면서 기차, 지하철의 종착역에 도착한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내 안의 나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고, 사랑해 주는 방법을 찾고,

그 힘과 기억들로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내 안의 나에게 해줄 것.

좋은 것, 행복한 기억을 만드는 경험은 꾸준히 하되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불편함까지 감수하라는 강요는 하지 않겠다.

힘이 들면 힘들다 이야기하고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것.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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