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유연함의 힘을 읽고
유연함의 힘이라는 책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바로 요즘 같은 시대에 필요하겠구나.’였다. 업무 환경이 바뀌고 익히고 실천해야할 것들이 많아지는 상황에 던져진 우리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사례들이 많이 있어 추상적일 수 있는 부분을 조금 더 명확히 이해시켜 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겪었던 비슷한 상황, 현재 마주하고 있는 도전 과제들, 앞으로 나의 모습은 어떠했으면 좋을지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마치 등산을 하다가 잠시 벤치에 멈춰 서서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물을 마시며 내 눈앞의 풍경을 보고, 다시 올라갈 정상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자네들을 도와줄 수 없네. 자네들이 자신의 스승이 되어 평생 가르쳐야 하네.”
맞다. 정말 맞는 말이다. 대학을 들어가서 졸업을 하면 직장을 찾게 되고, 직장을 찾으면 적당히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하고 그렇게 살 줄 알았다. 그렇게 평범한 삶이 나에게도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걸어온 길과 선택의 결과는 달랐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중동의 항공사에 취직했으며, 모든 교육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열이 오른 후라이팬에 녹는 버터처럼 부드러운 미국식 영어에 익어버린 발음은, 인도인 강사의 발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국말로 찾으라고 해도 모르는 항공 영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입으로 뱉어 내며 10년을 넘게 이곳에서 지냈다. 비행기에서 일을 하는 것은 좋지만, 육체노동을 하며 이곳을 평생 직장삼아 일을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입사 4년 째 나는 안전지대를 벗어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돈을 모으고, 쉬는 날이 있으면 내가 공부해야 할 것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남은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기위해 퇴사도 결정했다. 남은 공부를 마치는 기간을 10개월로 잡아 6개월 동안 비자 준비, 부동산 서류, 은행 업무들을 차근차근 해나갔다. 이 회사에 입사할 때에는 말 그대로 회사가 모든 것을 다 떠먹여 주었다. 그냥 받아먹기만 할 때는 몰랐는데, 재료를 하나씩 다 사서 손질하고 하나의 요리를 만들어내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하나씩 해 보니 못할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처음 내 안전지대를 벗어난 경험은 시간이 지나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못할 것 같은 일이 있으면, 이렇게 속으로 외친다. ‘그 뭐시라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 메타인지.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더욱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유연함의 기술의 핵심이다.”
유연함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드러움과 강단 있는 느낌을 함축하는 문장이 아닌가 싶었다.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간결하면서도 강단 있고, 배움을 위해 마음을 여는 느낌이 왔다.
퇴사 후 10개월 동안 나는 말 그대로 혼자였다. 14과목의 시험을 8개월 안에 끝내자는 목표를 세웠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나라에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제대로 된 전략을 세워야했었다. 그때 유튜브에 동기부여 영상을 찾아보다가 신박사님과 고작가님을 알게 되었다. 두 분이 말씀하시는 메타인지를 듣고 내가 시간을 더 쏟아야 하는 과목, 덜한 과목을 구분을 했다. 과목 별 목차를 열어서 또 세분화 시켜 일주일 계획을 세웠다. 일주일 내내 무리하게 계획을 짜니 금방 지쳤다. 그래서 같은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시간을 할애하는지 많이 물어보았다. 그들에게 맞는 방법이 나에게는 맞지 않았던 부분은 또 고치고 고쳤다. 5일은 목표치 달성을 그리고 남은 주말에는 다 하지 못한 공부를 해내는 식으로 유연하게 움직이니 점점 재미가 생겼다. 살면서 주도적으로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해 냈다는 큰 성취감을 그때 경험을 했다. 지금도 새로운 공부할 것이 생기면 겁먹지 않는 이유가 그때의 긍정적인 경험이 주는 자신감 덕분인 것 같다.
보이지 않는 하늘에 길이 존재하듯이.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는 지금 다니고 있는 항공사에 조종사 면접을 합격했다. 하지만 아직은 승무원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 교육을 잡아주기 전까지는 현재의 포지션을 유지해야한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서 내가 일해야 할 곳은 조종실인데 아직도 기내에서 일하는 내 모습을 보면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불쑥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 한 번 시작되고 나면 나를 잠식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런 생각에 잠식당해 무기력증에 걸린 사람처럼 몇날 며칠을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던 날도 있었다. 이 책을 접하기 전 몇 주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삶에서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
“지금으로부터 5년 후 당신과 내가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커피를 마신다고 가정해 보죠. 당신은 그 5년 동안 삶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은가요?”
책의 9장에서 나를 침대 밖으로 벌떡 일으킬 질문을 던져주었다.
내가 앞으로 몰게 된 비행기는 출발지에서 도착하기 까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항로를 거친다. Way point라고 불리는 곳을 하나씩 지나가며, 관할하는 지역이 바뀔 때, 국가가 바뀔 때 자신의 위치를 알리며 교신을 한다. 더불어 Flight plan이라는 곳에 앞으로 이 곳에서 다음 목적지로 가는 시간을 계산하고, 험상궂은 날씨를 만나면 조금 돌아가기도 하며, 트래픽이 없는 시간대에는 빠른 길로 안내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과정을 거치며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맞아. 나도 지금 잠시 돌아가는 길이지, 길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잖아? 목적지는 정해져있고, 다시 내 원래의 길로 가기 위해서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 후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커피를 마신다고 가정해보았다. 나는 지난 5년을 이렇게 보냈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던진 질문을 생각하며 무기력했던 나를 침대 밖으로 꺼낼 수 있었어요. 그냥 하염없이 시간만 기다리며 기회가 왔을 때 KO패 당하기 싫었어요. 그래서 내가 앞으로 교육 받을 가능성이 있는 비행기 기종 교육 패키지를 샀어요. 그리고 하루에 정해진 시간을 할애하여 내 시간은 내가 주도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러고 보니 내가 더 공부해야할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유튜브, 비행을 갈 때마다 기장님들께 질문을 해서 몇 달 후 시작된 교육을 잘 마칠 수 있었어요. 책으로 접한 당신의 질문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그리고 나와 같은 길을 가려는 후배들도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앞으로 내가 기다리면서 해야 할 일들을 마지막 다짐에서 찾은 것 같다. 이 다짐을 다이어리에 적고 이정표로 삼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