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신체적으로는 이미 성장을 다 했고 직장도 다니고 있고 나를 이모라 부르는 친구들의 자식들도 생겼으니까 나는 어른이다. 내 안의 자아는 아직도 20대 초 중반에 멈춰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세월을 받아들이는 나의 흰머리의 흔적을 없애려고 하고, 출근 전에 콜라겐 팩을 바른다. 올해 처음으로 피부과에서 보톡스도 맞았다.
새로운 곳에 가면 마냥 신나고 Gen Z 동료들과 일을 할 때면 그들이 하는 것은 다 따라해보고 싶다. 사실 나도 MZ의 시작축에 서 있는 나이이지만 그들의 문명과는 많이 동떨어져있다. 부지런한 학습이 아직도 필요한 때이다.
아무튼 나의 요즘은 그랬는데, 어제 갑자기 출근하는 길목에 출근해서 내가 어른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모먼트가 있다.
1. 새 구두를 신고 아픔을 참음.
주기적으로 회사에서는 새 구두를 준다. 발볼이 태평양처럼 넓은 나로서는 새 구두를 신는 게 출근하는 거 보다 더 싫을 정도로 싫다. 바쁘게 움직일 때는 모르겠지만 잠시 쉬는 시간이 되면 새끼발가락이 퉁퉁 부어서 발을 욱여넣고 있는 것 조차 힘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뒷쪽의 가죽이 닳아서 구두닦는 용액으로 바르고 덧칠을 하고 코팅을 해도 숨겨지지 않는 오래된 신발을 신고 일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새 구두의 안쪽 마감 부분도 너무 생생하게 살아있는 터라, 처음 몇 주는 안쪽에다가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둔다. 테이프를 잘못 붙이면 구멍난 스타킹이 되는 건 시간 문제다.
미연에 구멍난 스타킹 방지 대책위원장의 마음으로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여분의 스타킹이 있는지 확인하고 새 구두를 신고 출근을 했다. 또각또각 반짝반짝 보기는 좋다. 그 보기좋음을 위해 미어터질 것 같은 공간속에 참고 있는 통실통실한 나의 발들을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어른이라면 이 정도는 참을 줄 알아야지.'
생각하고 출근했다. 모먼트 1.
2. 에스프레소 마키아토
새 구두 받으면서 18개월이 지난 유니폼도 바꿨다. 처음 입사했을 때 보다 살이 조금 빠진 것도 있지만, 휘몰아치는 스케줄 끝자락에 유니폼을 맞추러 간 게 컸던 것 같다. 블라우스, 자켓, 치마, 바지 사이즈가 하나씩 다 줄었다. 머리는 지식이 늘고 줄고에 상관없이 똑같아서 모자 사이즈는 동결. 신발 사이즈도 동결.
아무튼 그렇게 새 유니폼 자켓을 받았는데, 지난 5일 동안 스탠바이 듀티에 아무 비행에도 불리지 않아 집에 있었다. 야금야금 살이 쪘던 건지 유니폼을 입는데 자켓을 잠그고 나니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니 이거 정말 큰일이다.
밤낮이 바뀌어 버린 터라 출근해서 커피도 한 잔 해야겠는데.... 고소한 거품이 몽글몽글 올라간 카푸치노가 먹고 싶었는데 이 커피랑 우유 뱃속에 넣으면 잘 달려 있던 단추가 유니폼에서 떨어져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발 양보했다.
에스프레소 마키아노 싱글샷 주십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서 갈색 설탕 반개 섞어서 후루룩 마시는데
뭐야.. 또 갑자기 내가 어른 같잖아 하고 공책을 펼쳐서 이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 필기를 해 두었다.
또 출근을 해야한다. 출근 전에 미리 일어나서 독서를 하고 글쓸 시간을 낸 이 순간도 제법 어른스럽다.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