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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지금Minow Nov 10. 2023

마음이 괴로울 때 글을 더 쓰는 이유

두 어달 전, 몰디브 비행을 갔을 때 나는 글쓰기와 다시 친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친구의 엄마가 논술을 가르치셨기에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글짓기를 시작했다. 

'나의 생각 글쓰기'라는 책을 모두 끝냈고, 사전 찾기로 단어를 찾고 작문을 했다.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찾아냈을 때의 짜릿함, 몇 권이나 되는 해리포터를 읽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아쉬움에 잠들었던 밤. 이 모든 것들은 글쓰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감동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글짓기를 비울 때 가만히 앉아서 원고지 8장, 10장을 쭉쭉 써 내려갔다. 처음에는 8칸 공책, 10칸, 원고지 공책 커서는 줄이 그어진 공책까지. 이렇게 단련된 기간들이 아직도 내가 글을 쓰고자 마음을 먹으면 끝까지 견인해 주는 견인차 역할을 해 주는 것 같다. 


하지만 글짓기 수업시간을 생각하면 그렇게 좋은 기억은 아니다. 또래의 친구들과 비교를 당했다. 잘하고 싶고 좋은 표현을 만들어 내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비교는 주눅 든 마음으로 이어지고 그 마음에 예쁜 표현이 많이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주제에 어긋나기도 새로운 시도를 하다가 정상궤도로 끌려오기도 했다. 어린 나이어도 어른들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것들을 느끼기 충분했다. 그게 어쩌면 나를 움츠려 들게 했던 것 같다. 


성인이 된 지금도 한편에 글짓기를 하며 긴장하고 평가에 두려워했던 그 느낌이 남아있었다. 쓰는 것 만으로, 내가 알고 있는 단어들로 써내려 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과정이 어찌했든 결과를 두고 보면, 나는 죽이 되는 밥이 되든 내 블로그라는 공간에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 하루 일과 중에 책 읽는 시간을 만들어 내는 꽤나 근사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좋은 습관을 쉽게 들일 수 있는 이유는 글짓기를 했던 시간들 덕분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주눅 들었던 나를 연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쓰고 다듬고 표현하며 내가 느끼는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기로. 





글쓰기와 나의 관계는 여튼 이러했다. 그리고 우리는 잘 풀었고 (내 일방적인 통보인 냥냥 펀치 같은 선언이지만) 나는 글쓰기를 야무지게 이용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 마음이, 주변의 상황이 힘들게 할 때이다. 



고등학교 은사님이 해외로 취직하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마음이 진짜 복잡하고 바뀌지 않을 것 같을 때에는 적어 내려 가면서 비워보라고. 적어내는 행위로 마음이 비워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년을 생각 없이 지내다가 내 마음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는 것들을 최근 많이 경험하면서 은사님의 조언이 생각이 났다. 



일기장이든 노트든 펼쳐둔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쭈욱 나열해 본다. 다음 작업은 내가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것, 달라지지 않는 것으로 분류 작업을 한다. 


오늘 나의 상황은 이렇다. 주말이 시작되기 전에 회사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어느 회사에도 그렇겠지만 따라야 하는 절차를 따랐다. 그 과정에서 회사 부서 간의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시간 낭비가 되었다. 그리고 주말이 시작되었다. 


나를 힘들 게 하는 것 : 병가를 내가 원하는 날짜에 맞춰서 쓸 수 없게 되었다. 

몸 컨디션이 점점 나빠진다. 회사 일처리 방식. 내일이 금요일이라서 일요일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중동의 휴일은 금요일, 토요일이다) 


달라지지 않는 점 : 내일은 금요일. (내가 기분 나빠한다고 금요일이 일요일로 바뀌지 않는다) / 회사 일처리 (10년째 이랬고 달라지지 않았고, 달라질 것을 기대하느니 절이 중을 떠나는 게 빠르다.) / 이틀 더 기다려야 함


달라질 수 있는 점 : 쉬는 이틀 알차게 보내기 /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 시켜서 기분 전환 시켜주기. 


그리고 사실 그 밑에 구시렁거리는 불평은... 내 자유다. 이렇게 적고 나니 글을 써도 되겠다는 마음의 공간이 조금은 생기는 느낌이다. 


회사에서 우스개 소리로 동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중동에서 일을 하러 오는 사람들은 두 개의 양동이를 들고 온다. 하나는 돈을 담을 수 있는 양동이, 하나는 bullshit (똥덩어리) 양동이라고 한다. 둘 중에 먼저 차면 다른 양동이는 바라보지 않고 떠난다는데.. 이번 경험으로 나는 똥덩어리 양동이가 조금 무거워진 것 같다. 원래 담겨야 할 것이 10킬로였다면 글쓰기로 중화시켜 3킬로만 담긴 느낌적인 느낌이다. 



이 시기도 잘 지나가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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