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뮤지컬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가고 싶은 회사는 다 떨어지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입사한 첫 회사에서 무료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나는 일요일에 뮤지컬을 보러 갔다.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 회사 대리님에게 전화가 왔다.
관심 없는 회사, 거기에 있는 모두를 마치 외계인처럼 멀리하던 난 '일요일 저녁에 전화하는 개념 없는 사람이 다 있네' 하며 받았다.
뮤지컬 '아이다'를 보는 중간에 재택 근무 연락을 받았다, 무대 위 배우들은 앞으로 언제 관객들을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직감을 했던건지 우는 사람도 있었다
대리님: 성민 씨, 상무님 카톡 봤어요? 코로나가 단계가 격상돼서 내일부터 재택근무 하라는데?
이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생애 첫 회사생활 5개월 차에 누구는 30년 동안 한 번도 못해보고 은퇴하는 재택근무를 하라고? 집에서 일하다니.
개꿀.
현실이 맘에 들지 않던 프로 구직러는 철딱서니 없이 더 자유롭게 이직 준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좀 스케일이 달랐다.
신종플루 정도로 끝날 줄 알았던 펜데믹은 전 세계를 멈췄고, 당연히 구직 시장은 제일 빠르게 마비됐다.
난 중학교 때부터 영화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다, 영화를 사고파는 일 말이다.
CJ ENM, NEW, 쇼박스, 워너브라더스 등등... 이 회사들에 몇 번을 지원했는지 모른다.
코로나가 터지자 제일 먼저 아작난 산업은 문화업, 특히 영화관은 거리 두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27살이던 나는 좌절했다.
첫 회사가 1년 계약직이었기에, 내가 원하는 곳이든 아니든 정규직을 알아봐야 하는데 난 정말 X 됐구나.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난 부정적인 일이 일어나면 과하게 자신을 자책하고 괴롭히는 스타일이다.
그 당시엔 본가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던 때라, 괴로운 티를 팍팍 내는 나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건 오롯이 가족들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프로 구직러 답게 그 와중에 열린 공고를 지원하고 또 지원했다.
서류 접수하고, 면접 보는 일을 귀찮게 생각하지 않는 걸 보면 난 구직이 천직인 건가.
2020년 초, 겨울의 마지막에 시작한 코로나와 함께 나의 인생도 흘러갔고, 어느덧 초여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