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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즈음, 정규직은 벼슬이다


세상 풍파를 전혀 맞아 본 적 없는 뉴비 회사원이던 나에게는 일종의 가스라이팅(나를 위한 걱정이었으리라고 믿는다)들이 쏟아졌다.


성민 씨 일단 정규직이 되어야지~

1년 계약직으로 입사한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괜찮은 회사 (웬만하면 내가 일하고 싶은 곳)의 정규직 회사원이 되는 것만이 한국 사회를 사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앞만 보고 달리게 훈련된 경주마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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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이 세상엔 돈 버는 방법이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런 귀여운 가스라이팅들을 스펀지처럼 빨아 들였다.

정규직들만 쓰는 법카들도 부러웠고, 옆 건물 헬스장 지원도 부러웠으며, 그들의 계약 만료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여유로움도 부러웠다.


그래서 나는 구직의 방향을 '정규직'이면 된다고 잡았다.

코로나라 얼어붙은 채용시장에, 1년 경력 겨우 채운 내가 서류를 내밀 만한 곳이 많지는 않았지만, 나의 장점이 뭔가, 구직을 숨 쉬듯이 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러던 와중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 보고 싶다고.

창문을 만드는 스타트업인데, 일단 '정규직'이라고 했다.


나는 인테리어, 특히 창문은 여닫을 때 말고는 관심도 없지만, 28살 나의 마음은 그저 정규직이 되고 싶었다.

꽤나 더운 날, 나는 북촌에 있는 그들의 사무실에 면접을 보러 갔다.


대표님은 프랑스 유학파, 뭔가 느낌 있는 분이 셨다.

프랑스 대기업이던 나의 회사를 알아보고 신기하게 쳐다보면서, 지금 돈도 많이 받을 텐데 (전혀 아니었다) 왜 지원했느냐고 물었다.


지금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나는 꽤 애드립에 강하기에 적당하게 대답하면서 마지막 한마디를 뱉었다.


정규직이라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면접을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그녀는 메일을 보냈고, 합격을 통보했다.

계약서도 같이 보냈는데, 연봉과 함께 이거밖에 못 줘서 미안하다고 했으며 (사실 그 당시의 나는 그 정도도 감지덕지 였다), 마지막 문장이 가장 크게 눈에 들어왔다 - 계약의 끝이 정해지지 않은 정규직 계약임.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서 '아 난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정규직 무새로써 덥석 여기를 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정규직 회사원이 되면 난 좀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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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처음 시작된 그해 여름은 특히 장마가 길고 습했다, 긴 한숨이 마스크를 뚫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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