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진짜 올해 안에는 어디라도 가야지

9월의 첫째 날, 나는 일본 히로시마에서 눈을 떴다.

갑자기 무슨 여행이냐고? - 몇 달 전에 '이 정도면 어디라도 입사를 확정 짓고 마지막으로 놀기 좋은 타이밍이겠다' 싶어서 정해 놓은 스케쥴이다.

직전 회사를 나올 때 최대한 넉넉하게 잡은 타임라인이었는데 이때까지도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을 줄은 몰랐다.


인터뷰 과정 내내 분위기가 좋아서 기대했던 U사는 그냥 마음을 접었다.

'오늘은 연락이 오겠지'라는 희망 고문은 사람의 피를 마르게 한다.

(그 회사는 면접 본 지 한 달이 훨씬 넘어서 메일 한 통으로 불합격을 통보했다, 그게 뭐라고 40일도 넘게 걸렸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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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늘 그렇듯이 즐거웠다.

근데 마음속에서는 현실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있는 돈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 모은 돈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다시 사회생활하고 싶었는데.

돈이 사람의 행복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여유라는 항목에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나는 다짐했다 - 무조건 올해 안에는 어디라도 간다.


사람들이 공백기를 어떻게 볼까가 두려워 조급해진 게 아니고,

그냥 정말 다시 돈을 벌어야만 했다, 난 일찍이 경제적 독립을 했기 때문이다.


오퍼가 계속 있긴했지만 이정도 되면 이게 가장 힘들다.

정말 관심도 없는 회사라 면접조차도 보기 싫어도 '그래도 해야된다'라고 스스로 가스라이팅 하는 일.


아직 얼마 안산 인생이지만, 내가 원하는 상대가 나를 좋아해 주는 일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런 곳 면접 가면 내가 할 일은 열심히 연기하는 것, 그거 하나뿐이다 - 이 회사에 너무 관심이 있어서 입사하고 싶다는 절절한 연출, 이게 진짜 비참하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면접을 보던 중에, 한 헤드헌터에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올해 위메프 사건으로 이커머스 경력자가 쏟아져 나와서 이쪽으로는 경쟁이 너무 빡세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경력을 보니까, 마케팅 직무도 잘할 것 같은데 V사 디지털 마케팅 포지션은 어때요?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그리고 V사면 내가 꽤 진정성 있게 임할 수 있었다. 난 한때 이곳의 신발을 빤질 나게 신고 다녔던 적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원하겠다고 했고, 이력서를 전달했다.

권고사직 이후 5달이 지난 백수는 한 번 더 기대를 가져보기로 했다.


이왕 마지막 회사로 생각하고 가는 거면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데를 가는 게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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