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런 성향이 있다.
중요한 일에 관해서는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진짜 여기까지만 해보고 아니면 단념하자 - P지만 나도 나름 계획을 가지고 산다.
이맘때쯤이 내가 생각한 그 마지노선이었다.
재구직이후 6개월 차에 접어들었고, 가고 싶은, 원하는 회사는 손에 꼽는다.
인생에서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그냥 이렇게 이냥 저냥 시간을 보낼 바에는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안되는 걸 붙잡고 있는 거만큼 멍청한 것도 없다.
V사가 진짜 마지막이다.
헤드헌터를 통해 지원하자마자 1차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하필, 다른 모 회사와 면접 일정이 겹치는 날인데 오전에 몸 풀고(?)가면 좋을 것 같았다.
(그 회사엔 다소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래도 난 면접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테헤란로에 있는 그들의 오피스.
쌀쌀한 초가을의 오후였던 것 같다.
나의 풍부한 인터뷰 경험에 비추어, 이런 회사들은 너무 포멀하게 입고 오면 안 좋아한다. 스트릿 패션 아닌가.
비장한 마지막 도전에 나선 나는 그들의 신발을 사서 신는 열정까지 보여줬다 - 사실 중고등학교 때 이후로 사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1차 실무진 면접, 팀 매니저와 1:1이었다.
능력 있어 보이는 좋은 인상의 남자분이셨다.
그의 첫 마디는 이랬다.
어, 저희 같은 회사였던 거 아세요? 이메일에서 성민 님 이름 본 것 같아요.
이런 무드로 시작하는 면접은 그냥 술술 풀린다고 보면 된다.
30분간 무난하게 봤다.
그는 나가는 길에 이런 말까지 해줬다.
다음 단계 팁을 주자면, 지금 보다 좀 더 캐쥬얼하게 입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야.
그는 나를 미래의 팀원으로서 썩 맘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하고 나왔다.
여기는 붙으면 정말 가야지.
만약에 안 되면 진짜 다른 길 찾아본다.
솔직히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당장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는 일은 영어 강사라는 걸.
다만, 매달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월급과 회사의 이름값이 주는 안락함을 내려놓기에는 아직 마지막 한고비의 용기가 부족했을 뿐이다.
다음 날 아침 최종 면접 일정을 잡자고 바로 연락이 왔다.
11월에 쇼부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