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멘트를 장전한 헤드헌터의 한마디는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제 난 흑화했으니까, 돈만 많이 주면 어디든 간다고 맘먹자마자 연락을 주다니, 이런 우연이 있나.
그래도 무슨 일 하는 회사인지는 알아야 하니까, 물어봤다.
종이 만드는 회사에요, 제지회사.
이런 초초초 디지털 사회에 종이를 만드는 회사라고?
내가 마지막으로 프린트라는 걸 한 게 언제던가, 아 근데 이제 이런 건 내 알 바 아니다.
그냥 돈만 보고 가는 거니까.
지원해 보겠다고 했고, 바로 면접이 잡혔다 (뭔가 많이 급한 거 같았다).
1차, 2차를 거치면서 나는 해당 회사, 업계에 관심 있는 척을 오지게 했고, 그게 통했다.
마음을 비우니까 연기도 더 잘되는 거 같았다.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왔다, 최종 합격했다고.
9달 공백기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합격 소식을 듣고 그렇게 무감정이었던 건 처음이었다.
하나도 기분 좋지 않았다, 다시 돈 버는구나. 여기 다니면서 나중에 내 이름 걸고 뭐할지 생각해 봐야지 - 딱 이 정도.
그러다가 제안 연봉이 나왔는데 깜짝 놀랐다.
앞자리가 넉넉하게(?) 바뀌어 있는 게 아닌가.
내가 몸담았던 업계는 애초에 기본 연봉이 짠 곳이었다.
관심사가 영화, 뮤지컬 업계였던 것까지 고려하면 나는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피해 가는 놈인가 보다.
이런 나에게 이 정도 금액은, 아니 객관적으로 봐도 내 연차에 이 정도면 썩 괜찮다.
종이를 팔아서 이렇게 줄 수 있는 건가.
기분이 아주 조금은 나아졌다.
그렇다고 설렘이 생긴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금융 치료가 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세금 떼고 한 달에 얼마씩 받을까도 계산해 보고, 놀면서 신세 졌던 사람들에게 밥도 사고 했다.
하, 그냥 좀비처럼 다녀보자. 다니면서 다음 스텝 여유 있게 생각해 보자.
한 치 앞을 몰랐던 나의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