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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Feb 17. 2024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청소년 시절, 조지 오웰 작품을 무척 좋아했다. 그래봤자 읽어본 책은 <동물농장>과 <1984>에 불과했지만,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좌파 아나키즘적 관점의 작품이라 그런지 매혹적으로 읽혔다. 그러나 조지 오웰이 냉전 당시 CIA와 협력했다는 점을 듣고 사회주의자가 된 이후에는 그의 책을 다시는 읽지 않았다. 어떻게 좌파가 제국주의 앞잡이를 하지? 빅브라더나 나폴레옹이 아닌 제국주의는 괜찮다는 것인가? 충격이었다. 그러다 세계 3대 르포 문학인 <카탈루냐 찬가>를 읽고자 다시 조지 오웰을 읽으려고 했는데, 1장도 넘기지 못하고 덮었다. 그러다가 문득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가 생각나 읽기 시작했다. <나는 왜 쓰는가>에 관한 학술적인 논문인줄 알았는데, <나는 왜 쓰는가> 외 그의 평생 동안 쓴 여러 단편 에세이들을 선별하여 실은 책이다. 인도에서 일할 때 썻던 일기 같은 회고록, 노숙자 쉼터나 서점에서 일했던 기억, 정치적 단상, 문학에 대한 단상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들이 문형을 이루어 그의 사상과 생을 엿볼 수 있다.



 사실 번역이라는 상징계의 차이로 인해 그의 사유를 온전히 받아들였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사유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여태까지 여러 에세이스트를 만나봤다. 사르트르나 알랭 바디우 처럼 붉은 꿈을 꾸는 작가나, 바르트처럼 산문의 꿈을 꾸는 작가도 봤다. 그러나 조지 오웰의 산문은 솔직함이 묻어난다. 괜히 현란하거나, 미학적이기도보다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현실적인 주체로서 펜을 들어 자국을 남긴다. 특히 <나는  왜 쓰는가>에서 나왔던 문단 중 일부는 마치 베일 하나 남겨진 나체를 드러내는 듯한 창피함-그로부터 오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쑬로 만드는 일이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나는 앉아서 책을 쓸 때 스스로에게 '예술작품'을 만들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부터였다."



이전까지 벤야민의 미학, 특히 베일의 미학에 현혹되어 시의 꿈을 꾼다는 믿음 하에 괜히 건방진 글을 써왔는데,  스스로 성찰해보자. 괜히 댄디한 척, 도도하게 굴지 말고, 정치적인 목적을 예술로 표현하라는 오웰의 명제에 충실해야겠다. 모든 글은 정치적이니, 나는 내 정치를, 신념이자 진리를 나만의 문장으로 담아봐야겠다. 정치에 대한 차이-서방 협력을 스탈린주의보다 나쁘게 봤던-멀어졌던 오웰에 대한 다시 호감이 생긴다. 투사이자, 작가였던 그처럼 글 위에 붉은 나의 세계를 구축해봐야겠다.

     

*밑에는 요약



 나는 왜 쓰는가



 어릴 때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한 작가의 동기를 헤아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다.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그는 작가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나름의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되며, 그것은 그가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무엇이다. 물론 그는 마땅히 자신의 기질을 다스려야 하고, 미성숙한 단계에 고착되거나 비뚤어진 심기에 매몰되는 경우를 피해야 한다. 하지만 일찍이 받은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버린다면,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생계 문제를 제외하면, 글을 쓰는 동기는 크게 네 가지다.(산문을 쓰면서) 이 동기들은 작가들마다 다른 정도로 존재하며, 한 작가의 걍우에도 시기별로 시대 분위기별로나 그 정도가 다를 것이다.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보고 싶고,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욕구를 말한다.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닌척 하는 건 허위다. 작가의 이런 특성은 과학자, 예술가, 정치인, 법조인, 군인, 성공한 사업가 등 최상층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특성이다. 사람들 절대다수는 이기적이지 않다. 그러나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언론인에 비해 돈에는 관심이 적어도 더 허영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2.미학적인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휼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을 찾는 기쁨이기도 하다. 자신이 체감한 바를 나누고자 하는 욕구는 소중하여 차마 놓치고 싶지가 않다. 미학적인 동기가 약한 작가들도 많긴 하지만, 팜플렛이나 교과서를 쓰는 저자라 해도 비실용적이지만 매력과 애정을 느끼는 문구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책도 미학적인 고려로부터 딱히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3.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



4.정치적 목적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해,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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