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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Apr 09. 2024

스포트라이트! 《세계경제와 제국주의》, 부하린

《세계경제와 제국주의》, 부하린


제국주의 하늘에 쏘아올린 한 줄기의 스포트라이트     

"이념은 영원한 성좌이다" 독일 마르크스주의 미학자 발터 벤야민의 말이다. 그는 박사 논문집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이념은 영원한 성좌이다. 요소들이 일종의 점들로서 그러한 성좌 속에서 파악됨으로써 현상들은 분할되는 동시에 구제된다."라고 말한다. 창공에 있는 수많은 별들은 있는 그대로 총총히 빛을 비춰오지만, 우리는 그것을 사유하며, 의미를 붙일 때 별을 넘어 별자리, 즉 성좌가 된다. 즉, 세계는 이념을 통해서 성좌처럼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벤야민에게 영원한-절대적 진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유를 통한 성좌화 작업은 한편으로 구제작업이기도 하다. 내게 마르크스주의란, 인류가 계급 사회의 하늘 아래 놓여있는한 영원히 유효하며, 그런 하늘 아래 성좌화 작업을 통해, 의미를 붙이고 분석해야 구제, 더 나아가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자본주의, 그리고 그 최신 단계에 있는 제국주의의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을 별자리로 만드는 방법론은 마르크스주의이고, 특히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을 통해서 정교하게 구제될 수 있다. 니콜라이 부하린의 《세계경제와 제국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을 정립한 책 중 최고봉에 위치해있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전쟁과 혁명과 혁명의 시기에 쓰였으며, 당시 세계경제 뿐 아니라 오늘날 세계경제를 분석하는데 있어서도 유효한 책이라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의 탁월한 정의

 이 책의 목적은 마르크스주의를 난도질하는 베른수타인의 사민주의, 정통 마르크스주의 운운하며 자본주의가 평화로울 수 있다고 말하는 카우츠키류의 초제국주의 비판에 있다. 부하린은 레닌처럼, 고즨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바라본다. 자본주의에서 영구적 평화는 결코 불가능하며, 계급간, 국가간 갈등으로 점철된 체제로 본다는 점이 중요하다. 부하린은 자본주의를 단지 시장화 경향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자본주의는 서로 모순된 두 경향인 자본의 국제화와 국가화(국가자본주의화)가 동시에 일어나며, 이 둘이 결합한 것이 바로 제국주의라고 말한다. 즉,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강대국의 전략인 동시에, 자본주의 전체의 시스템을 아우르는 말이다. 그래서 제국주의를 단지 식민지 정복 정책으로 보며, 제국주의가 끝났다고 보는 견해에 대한 반박을 한다. 바로 이것이 부하린의 제국주의론이 유효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본의 국가화:집적과 집중

부하린이 이 책의 전체를 아우르는 주요 작업은 자본의 국가화 경향에서 집적-집중의 분석이다.

부하린은 자본의 국가화 경향을 두고 “자본의 집적과 집중 과정의 논리적·역사적 귀결로 본다. 자본들이 굉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끊임없이 이윤의 일부를 재투자하는 '집적'과 강한 자본이 약한 자본을 흡수하는 집중'의 과정을 미국과 유럽 주요 강대국들의 사례와 통계를 들어 설명한다. 집적과 집중이 되어갈수록 경제력도 집중되어 가는데, 그 과정에서 작은 기업들은 융합되어 소멸하며 결국 대기업으로 합쳐진다. 이때 자본주의 국가와 대기업의 유착 관계는 더욱 거세지고, 그 결과 국가자본주의가 출현한다.     

이 때문에 갈수록 경제력이 소수의 대기업들에 집중된다. 이 과정에서 국가와 대기업들은 점차 유착하게 돼, 국가자본주의가 출현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경은 소멸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나, 덩달아 국가화 경향 역시 강해진다. 결국 기업이 경쟁하듯, 국가들도 경쟁에 돌입하여 각종 분쟁과 전쟁이 일어난다. 즉, 세계는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들의 경쟁의 각축장이 된다. 지금 중동과 우크라이나의 전쟁과 각종 분쟁 역시 여기서 기인하며, 결코 평화로운 자본주의-더 나아가 윤리적 자본주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 없이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이며, 팔레스타인의 비극처럼 모든 세계의 악의 근원은 자본주의-제국주의 체제라는 것이다.      


결론:희망을 어디에서 오는가

 자본주의는 군국주의의 힘을 극도로 발전시켰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계급이 피를 흘렸지만, 혁명기 러시아처럼 예외는 있다.     

"자본주의는 무장한 수백만의 사람들을 역사의 각축장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그 무기는 이제 자본주의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 처음에는 얌전하고 온순했던 대중이 정치에 눈을 뜨며 점점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들은 강요당한 전투에서 단련되고 모든 순간 죽음을 들여다보는 것에 익숙해진 뒤에, 대담하게도 제국주의 전쟁의 전선을 깨고 제국주의 전쟁을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내전으로 전화시키려 하고 있다."는 부하린의 결론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 이 점에서 이 책의 의의가 있다. 단지 현실을 분석해 성좌화 작업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구제할 방안을 마련한다. 이점에서 부하린의 저서는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거대한 계급 충돌 속에서 금융자본의 독재를 대신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를 이야기한 부하린의 서술은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유효하다.           


 신형철 평론가에 따르면, 훌륭한 소설은 거울이 아니라 위장이라고 한다. 현실을 비추는 것이 아신 현실을 과감히 먹는 것이다. 나는 이 책도 위장의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싶다. 단지 이론이 아닌, 현실을 삼킬 수 있는 전략으로 체화하고자 오늘도 현실을 먹어 치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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