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곰돌이 May 24. 2024

우주와 영혼의 조화,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인류 문학사에서 헤르만 헤세만큼 '자아를 찾는 여정' 을 섬세히 묘사하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사춘기 시절 스쳐지나가던 《데미안》이 그렇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융에게 치료를 받으며 쓴 《데미안》은 많은 청소년-청년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나 역시 그 울림에 감화되어 '아브락사스'에 매료되고는했다. 그외 또 다른 부처가 깨닮음을 얻는 《싯다르타》, 학창시절 가정과 학교의 종교적 전통에 맞서는 어린 소년을  다루는 《수레바퀴 아래서》 역시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독일 성장소설의 계보를 잇는다.



《황야의 이리》 역시 헤세식 소설에 속하면서도, 기존 헤세의 소설과 달리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큰 틀에서 주인공이 자아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같지만, 다른 소설과 달리 환상에 의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미안》에서 에바부인을 만나는 자연적인 환상이나 꿈이 아니라, 술과 약물에 의존하고 있는 점이 특히 기이하게 느껴졌고 이 지점에서 훗날 재평가되며 '히피의 성경'으로 불리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데미안》 역시 결코 쉬운 소설이 아니다. 보다 깊게 이해하려면, 분석심리학을 이해해야 하나 《황야의 이리》의 난해함에 비해 명확한 교훈을 주는 것 같다. 「황야의 이리」 의 낯선 묘사 방식과 환상의 배경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황야의 이리」에 대해 읽었지만 이해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황야의 이리」의 주인공 하리 할러는 50에 가까운 중년남성이다. 그 앞에는 두 개의 세계가 주어져있다.  하나는 질서있고 모범적인 '시민의 세계'이다. 또 다른 세계는 쾌락에 끌리며 방종조차 허용되는 '이리의 세계'이다. 하리 할러는 이리의 세계에 산다. 그래서 스스로 '황야의 이리'라고 부른다. 시민의 세계에서 보이는 정결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척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계속 쾌락을 따라 폭주한다. 무척 부르주아의 삶을 혐오하지만, 한편으로 동경한다. 그래서 그는 삶에 신물이 나있다. 그는 어느샌가 자신도 통제할 수 없었고 심지어  자살로 삶을 끝낼 계획을 갖고 있었다. 자살을 생각해오던 그는' 황야의 이리론’을 읽고 자신의 정체성이 수 만가지도 넘는 인격체들로 형성되어있다는 말에 이끌린다. 그 이후 매춘부 헤르미네와 악사 파블로를 만나 그의 인생이 이전과 달라지게 된다. 특히 헤르미네는 육체와 정신 모두 그를 사로 잡으며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또 다른 창녀 마리아로부터 육체적 사랑을 배우고 헤르미네로부터는 춤을, 악사 파블로로부터는 자아에 대한 생각을 나누던 그는 가면 무도회에서 열린 한 마술극장에 들어간다. 마술 극장에서 펼쳐지는 환상들을 본 그는 마침내 자기 자신에 대해 깨닫고 모차르트와 괴테의 환상 속에서 자아를 해체하는 동시에 우주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이해하게 된다.



무엇이라고 할까, 《데미안》의 성인버전이라고 할까. 단순히 섹스, 술, 마약이 만들어낸 환상 체험을 통해 쾌락에 눈뜨는 이야기인데,  신비주의적 요소가 겹쳐 영혼의 통일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모든 인간은 정신분열을 앓고 있지만 그 정신분열을 앓는 과정을 스스로 깨달은 인간만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아의 무한한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을 깨달은 자만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거인이 관조한 시인들의 상상세계 -김현문학전집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