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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Jun 29. 2024

오! 반란과 죽음 속 사랑은 아름다워라! 《대위의 딸》

오, 반란과 죽음 속 사랑은 아름다워라!,
 푸시킨 《대위의 딸》

-격벽의 시기가 낳은 천재작가의 산문
 러시아 19세기는 분명 격변의 시기였다. 그러나 하늘은 그런 격변의 시기에 천재적인 작가들을 보내주었다. 인류 문학사에 손꼽히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고골, 체르니옙스키, 투르게네프 등 천재들의 향연이었다. 그중 작가들이 동경하는 작가들의 작가이자, 가장 러시아 문학스러운 러시아 문학의 시조는 '푸시킨' 이라고 할 수 있다. 푸시킨 덕분에 변방의 언어였던 러시아가 서유럽에 소개될 정도로 노문학의 위상은 상승할 정도였다. 오늘날에도 칭송받는 푸시킨이 쓴 유일한 장편 소설이자 마지막 소설이 바로  '대위의 딸'이다. 소설은 생사를 위협하는 반란의 위협 속 연애 서사가 이어진다. 기사도 정신을 가진 주인공의 숭고한 사랑을 느끼며 당시 척박한 시대 속 휴머니즘 정신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게 한다.

-역사적 연애 소설

  작중 배경은 18세기 예카테리나 여제 치하의 재정 러시아 시기이다. 예카테리나는 계몽전제 군주로, 후진적인 러시아를 발전시켰다고 알려져있지만 민중의 봉기 역시 상당했다. 작중 주요 사건인 푸가쵸프의 난이 대표적인 민중 봉기이다. 푸카초프는 귀족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예카테리나에 맞서 농노제 폐지를 선언하며 예카테리나에 의해 폐위된 후 의문사한 표트르3세를 자처한다.

 작중 주인공인 그리뇨프는 귀족 자제로, 소위보가 먼 지방에 파견된다. 타지에서 자신의 상사인 미로노프 대위 가족과 친해지며, 딸인 마리아에게 호감을 갖고 자신을 질투하는 연적 쉬바브린과 결투하기도한다.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지만 마리아의 간호를 받으며 본격적인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의 핑크빛은 길지 않다. 푸가초프 봉기가 요새를 침범하며 전투가 시작된다. 압도적인 푸가초프의 공세에 군대는 우왕좌왕하다 결국 패배했으며, 푸가초프를 황제로 받들지 않은 미로노프 부부와 장교들은 처형된다. 그리뇨프의 차려가 되자 그도 여제에게 충성을 다해 죽을 결심을 하나, 푸가초프의 얼굴을 보니 자신이 이전에 토끼가죽 옷을 벗어줬던 나그네였고 푸가초프는 이전의 은혜에 그를 풀어준다. 그러나 건강 상태가 나빠진 마리아는 사제 집에서 은거하며 함께 가지 못한다. 오렌부르크로 피신한 그리뇨프는 부하에게 쉬바브린이 마리아랑 강제 결혼하겠다고 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명을 어기고 반란군 요새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리뇨프는 푸가초프에게 사정을 말하고, 그를 인정한 푸가초프는 결국 마리아를 풀어준다. 그리뇨프는 마리아를 자신 부모님의 영지에 보내며, 진신은 다시 군대에 합류하나 이내 푸가초프와의 관계를 의심받고 체포된다. 이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여제에게 탄원서를 쓰기 위해 페테르부르크로 향하며, 그곳에서 우연히 한 부인을 만나 자신의 사정을 말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여제인 것이다. 자초지종 사정을 알게 된 여제는 그리뇨프를 사면하고 이 둘의 사랑에는 탄탄대로가 열리며 끝난다.
 
-소박한 사실주의
이 소설의 문법은 기본적으로 낭만주의 소설과 유사하다. 사랑을 위해 헌사하는 주인공의 심경 묘사가 강점이며 "내 심장은 불타올랐다. 머릿속으로 그녀의 기사가 된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처럼 낭만적인 서술이 인상깊다. 그러나 그리뇨프의 군입대 여정을 통해 당시 혹독한 러시아 정경과 열악한 서민들의 삶,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여유로운 귀족의 삶 역시 생생하게 그려진다. 훗날 고리키 등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보다 약한 메세지와 사회 묘사를 다루고 있지만, 이 소설은 낭만주의적이면서도 한편 러시아 사실주의의 시초가 되는 작품이다. 특히 역사소설의 형식속에서 개인의 연애 서사를 펼쳐가며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소박한 리얼리즘이라고 한다. 당연히 검열받던 시대에 반란을 지지하거나, 여제를 신랄하게 비판할 수는 없지만 푸가초프에 대한 인간적인 묘사를 통해 당시 시대를 뛰어넘는 묘사가 돋보인다.

-초기적인 소설
19세기 초반에 쓰인 소설이라 분명 소설의 형식을 띈 산문이지만, 오늘날의 소설에 비해 부족한 점이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결말이다.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서 정의하듯, 현대소설은 선험적 고향상실로서 독자에게 멜랑꼴리한 울림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핑크빛 결말은 별로 멜랑꼴리한 파문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나는 사건의 개연성이다. 현대소설이 개연성을 갖으려면 복선이 존재해야 한다. 그리뇨프가 만난 나그네가 푸가초프였다는 점, 마리아가 만난 부인이 예카테리나였다는 점에서 복선은 있으나 우연적 요소에 지나치게 치중되었다고 할 만하다. 특히 두 번이나 우연에 의한 구원은 소설운 단조롭게 만든다.
 물론 이 소설이 19세기 초반에 나온 소설이고, 소설이라는 형식의 개념이 제대로 잡히지 않던 시대에 쓰였다는 점에서 감안할 만하다. 오히려 서사시와의 결별을 하고, 문제적 개인인 그리뇨프의 내면에 집중하면서 러시아 산문을 소설의 범주에 끌어올렸다고 할 만하다. 해설자의 말대로, 훗날 톨스토이의《전쟁과 평화》도 이 소설 없이는 세상에 나오지 못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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