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충분히 축하할 일이지만, 리얼리스트로서 가장 애정이 가는 한국 문단의 거장은 단연코 황석영이다. 청춘을 노동과 집필이라는 두 축에 두고,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온몸으로 체험한 황석영의 소설은 민중의 시선에서 한국 산업화의 리얼리티를 총체적으로 담고 있다. 황석영의 소설 속 인물들은 한국 산업화의 문제적 개인이자, 억압받는 계급으로서 혁명적 가능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루카치와 같은 정통 리얼리스트의 관점에서, 혹은 조지 오웰처럼 정치의 예술적 승화를 꿈꾸는 관점에서 황석영의 소설은 소설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황석영의 소설은 근대의 상실된 서사시로 다가오기에, 산업화 시대를 살아간 한국 민중의 초상을 총체적으로 그려낸 작가의 세계를 탐닉하는 것은 문학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역사적 여정이라 할 수 있다.
황석영의 소설은 루카치의 리얼리즘 관점으로 조망해야 그 안에 담긴 심연 속 황석영 세계의 시원을 포착할 수 있다. 루카치는 리얼리즘을 문학적 방식으로 현실의 총체성을 포착하여 사회적, 역사적 맥락 속에 인간의 구체적 경험을 담아내는 것으로 본다. 황석영의 작품은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각 개인의 삶을 녹여내며 이러한 리얼리즘의 본질을 잘 구현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중편 《객지》를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객지》는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인간 군상을 통해 사회적 부조리와 인간의 고뇌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황석영은 이 작품에서 현실 사회의 노동자 착취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그 과정에서 삶의 고난과 인간적 연대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루카치의 시각에서 이는 리얼리즘 문학의 중요한 특징인 '총체성'에 부합한다.
《삼포 가는 길》은 황석영의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또 다른 대표작이다. 이 소설은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정체성을 잃어가는 인간들의 방황을 그리고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끝없이 길을 떠돌며, 그 과정을 통해 현대 사회의 소외와 상실감을 체험한다. "꼭 내일이 아니어도 좋다."라는 일말의 낙관이 담긴 《객지》와 달리, 《삼포 가는 길》은 산업화로 인해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고향 삼포조차 산업화의 개발로 상실된 것을 그린다. 오히려 이 소설은 하이데거의 후기 사상에 맞춰 짜여진 듯하다. 산업화의 '착취와 인간소외'에 맞춰진 것보다 방랑하는 세 인물의 괴로운 대화는 근대를 '고향 상실의 시대'로 이해하는 하이데거의 반문명주의와 닮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화의 병폐를 그려낸 작품으로, 총체성을 상실한 근대인의 '선험적 고향 상실'을 드러낸다. (하이데거의 후기 사상에 대한 내용은 박찬국 교수의 해석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몰개월의 새》에서는 한국 사회의 모순과 고통을 다루며, 황석영은 복잡한 군인과 매춘부의 기묘한 관계와 베트남 전쟁이라는 제국주의가 잉태한 불안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그는 이 작품에서 시대와 이념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개인의 삶을 조망하며, 독자로 하여금 사회적 이슈의 맥락에서 개인의 운명을 반추하도록 한다. 이는 루카치의 관점에서 리얼리즘이란 시대와 사회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인간적 고찰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돼지꿈》 역시 도시 소외 계층을 긍정과 부정의 시선에서 묘사한다. 현진건의 리얼리즘이 아이러니로 채색된 처절한 어둠이었다면, 황석영의 리얼리즘은 깊은 연민으로 소외된 자들과 함께 꿈을 꾼다. 아들은 손가락이 잘리고, 딸은 임신한 채 돌아와도 오늘 하루만큼은 즐겁다.
《한씨 연대기》는 한국 전쟁과 그 이후의 분단 상황 속에서 인물들의 개인적 사연과 민족적 비극을 다룬다. 황석영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개인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를 극적으로 묘사하며, 인간적 고뇌와 회복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를 통해 황석영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고유한 경험을 현실적으로 재현하며, 리얼리즘 문학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
이처럼 황석영의 소설은 그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으며, 인물들의 실존적 고뇌와 사회적 맥락을 복합적으로 아우르는 서사로 루카치의 리얼리즘 이론에 부합하는 측면을 다수 보여준다. 황석영은 한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인간의 다양한 실존 상태를 탐구하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의 소설은 단순한 현실 묘사에 그치지 않고, 사상적 깊이와 감정적 진정성으로 독자의 사고를 자극한다. 이러한 점에서 황석영의 작품은 루카치가 말하는 리얼리즘의 참된 역할, 즉 사회적 문제와 인간 문제를 문학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개인과 사회, 역사와 현실이 복합적으로 얽힌 인간 삶의 실체를 재현하며, 이를 통해 문학이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자 시대의 기록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황석영의 작품 세계는 루카치가 지향하는 리얼리즘의 이상에 부응하여, 현실 속에서 인간의 고유한 모습을 드러내고, 그 속에 내재된 진리를 탐구하는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깊은 인식의 전환을 제공한다.
루카치가 사망한 해는 1971년으로, 황석영의 초기작 《객지》가 발간된 해와 같다. 만일 루카치가 황석영의 소설을 보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저기 리얼리즘이 걸어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