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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Aug 30. 2023

위대한 혁명가들의 세 가지 전통

스무살, 사회주의 이정표 프로젝트1

 위대한 혁명가들의 세 가지 전통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지배자는 피지배자를 늘 지배해왔고, 계급이 생긴 이후 이름만 바뀌었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사라진 적은 없다. 그러나 과거 동서고금 민중의 역사를 살펴보면 억압이 있는 곳에는 투쟁이 있었고, 그 투쟁은 일부 성과를 냈지만 결국 패배로 돌아갔다. 중국에서는  진나라의 강압적 통치에 맞선 진승-오광의 난이 있었고, 로마에는 프롤레탈리아의 진정한 대변자 스파르타쿠스의 난이 있었다. 근대에 들어서 1871년 파리 코뮌의  저항들, 1917년 위대한 러시아 혁명이 있었다. 위대한 반란의 핵심은 아래로부터의 변혁이었다. 설령 그 과정에서 폭력과 야만적인 모습이 있을 지 언정, 피지배계급을 위한, 의한 과정이었다. 나는 좌파와 우파라는 이분법적 구별에서 좌파란 피지배계급의 대변자라고 규정한다. 엥겔스처럼 자신은 지배계급 출신일지라도, 피지배계급의 이익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바로 좌파이다.

      

 역사는 특정 권력자나 이론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따라 변화하며, 다양한 혁명과 저항 역시 그 일환이다. 그럼에도 사상이나, 특정 인물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선행되는 것이 경제적 구조일지라도, 특정 시기에서 혁명적 조직과 인물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면 패배하게 된다. 그렇기에 세계를 변혁하려면 세계를 변혁시킨 사람들, 즉 혁명가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세계를 (피지배계급을 위해)변혁시킨 사람들, 즉 역사 속 위대한 좌파들을 분석해봤을 때 세 가지 공통적 특성을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휴머니스트이다. 

오늘날 휴머니즘이란 용어는 학계뿐 아니라 일상에서까지 사용되며, 특히 여러 의미가 혼재되어 있다. 보통 휴머니스트라고 말하면, 마음 따뜻한 사람 정도로 해석되는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휴머니즘은 결국은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인간다움이란 논쟁은 인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랑을 하는 존재이다. 에리히 프롬의 명저 <사랑의 기술>에 나왔듯이 인간은 실존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랑을 한다. 사랑의 종류에는 기독교적 사랑인 형제애, 자식에 대한 사랑인 모성애, 연인에 대한 사랑인 성애, 자신에 대한 자기애, 신에 대한 사랑 등 다양하고, 질적인 수준에서 차이를 보일지라도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존재이며, 사랑이야말로 실존에 대한 해답이다. 프롬은 사랑의 모든 형태의 바탕에 놓여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랑을 ‘형재애’로 보았다. 성서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처럼, 역사 속 혁명가들은 형제애를 가졌다. 고대 이슬라엘 민중의 대변자인 예수는 그런 인류 초기의 주목할 좌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기독교의 형제애 사상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역사적 인물이며, 약자와 빈자에 대한 형제애적인 사랑을 베푼 휴머니스트이다.  


두 번째는 반골 기질이다.

 반골 기질은 피억압자들의 원형적 기질이다. 기존 체제에 반대하는 것, 바로 반골 기질을 갖는다. 혁명가들은 기존 체제에 대해 반대하여 맞선다. 그런 점에서 혁명가의 몸에는 체제를 거스르는 단단한 뼈가 박혀있다. 다만 여기서 반골 기질이 무조건적인 반대, 정치적 용어로서 기계적인 ‘야당 본성’과는 다르다. 문명 이후의 인류 역사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대립 역사였고, 아주 맹아적 단계 외에 피지배자들이 권력을 잡은 적이 없다. 즉, 반골 기질은 피지배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지배계급에 맞서는 기질을 의미한다.


 불의를 겪었을 때 좌절에 그치지 않고 맞서 싸우기 시작해야 혁명가가 될 기본이 된다. 맞서 싸움으로써 혁명가의 영웅적 여정은 시작된다. 좌파는 불의를 겪을 때 좌절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맞서 싸워야 한다. 앞서 언급한 인간다움, 즉 무엇보다 형제애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인물이 바로 예수라면 반골 기질을 대표하는 인물은 스파르타쿠스이다. 로마에서 노예 반란은 스파르타쿠스 이전에도 드물지 않았고, 인류사에 억압받는 민중의 반란은 흔히 볼 수 있다. 즉, 스파르타쿠스는 수많은 반골 기질의 민중을 대변하는 아이콘이다. 고대 반란사에서 가장 이성적이었고,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이끈 스파르타쿠스는 자유를 갈망하여 투쟁하는 반골 기질을 띈 혁명가의 아이콘이다.

     

 마지막으로 능동적 주체로서 참여이다. 

세계를 변혁하려는 혁명가들은 기계적 숙명론을 조심해야 한다. 어차피 인류는 진보하게 되있다는 믿음은 너무나도 반혁명적이다. 특마르크스가 자본주의가 무조건 붕괴될 것이라는 숙명론적인 태도를 가졌다고 오해하거나, 플레하노프처럼 자본주의가 지나고 알아서 사회주의자가 온다는 숙명적론적인 태도는 좌파에게 있어 늘 경계해야 한다. 특히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봐야 한다. 카우츠키처럼 말은 혁명적일지라도 행동에서는 반동적일 수 있고,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처럼 말은 좌파적일지라도 행동에서는 소극적일 수 있다. 레닌의 명작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는 이런 말에만 그치는지, 아닌지를 볼 것을 말한다. 

 플레하노프를 비판하고 능동성을 강조한 레닌처럼! 카우츠키를 비판하고 사회주의를 주창한 로자 룩셈부르크처럼! 스탈린의 기계적 단계론에 맞선 트로츠키처럼! 단계론, 기계론, 낙관론, 숙명론에 맞서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투쟁을 하는 능동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능동적인 주체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로자 룩셈부르크를 들 수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 사민당 주류가 말로는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지만, 숙명론적인 태도를 취해 혁명에 반대하는 것에 맞써 스파르타쿠스당을 창설했다.


혁명가들은 이 세 가지 특성이 모두 잘 조화되어 있다. 러시아 10월 혁명을 이끈 레닌은 기본적으로 인민을 사랑해서, 인민을 억압하는 체제에 맞섰고, 무엇보다 자신의 사상적 스승인 플레하노프와 달리 숙명론에 빠지지 않고 능동적으로 혁명 조직에 섰다.

 예수도, 스파르타쿠스도, 로자도 저마다 어느 특질이 강했느냐는 다를지라도 형제애, 반골 기질, 능동적 주체로서 참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휴머니즘만 있으면 혁명가가 아닌 몽상가가 되고, 반골 기질만 있으면 스탈린처럼 인간 백정이 될 것이다. 즉, 진정한 혁명가의 전통은 휴머니즘과 반골 기질을 가진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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