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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Aug 29. 2023

고도를 기다리며

-당신이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인가?

고도를 기다리며 

-당신이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인가?     


 부조리극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문학사에서 부조리극이란 최후의 모더니즘 극 장르로, 인간의 상황이 근원적으로 부조리하다는 실존주의적인 경향을 보인다. 그중 부조리극이라는 단어를 창시한 작품이자 가장 중요한 부조리극으로 평가되는 작품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과거 산울림 극장에서 계속 상영한 작품으로, 이번에는 대학로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관람했다. 사실 극본 자체는 읽은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우울하고 희망도 없으며, 기존의 극과 다르게 별다른 플롯도 없어 지루하게 느껴져 이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러나  연극으로 보니 달랐다. 주진모 배우가 블라디미르 역을 맡은 이번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희곡의 무미건조한 대사들을 잘 소화냈다. 그럼에도 극본을 읽었을 때 해소되지 않은 한 가지, “과연 고도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 역시 해소 되지 않은 체 머리를 맴돌았다.     


 극 중 묘사된 고도의 특징은 아직 오지 않는다는 점 외에 다른 특징이 없다. 두 주인공은 고도를 기다릴 뿐이다. 오지 않는다는 것, 특히 그것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무언가 부재함을 느낄 때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존재가 부재할 때 괴로움을 느낀다. 주인공들은 고도를 기다리지만 특별히 파멸적인 괴로움을 느끼지도 못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고도는 적어도 ‘사랑’은 아닐 것이다.     

 

거시적으로 고도라는 존재를 해석하기 위해 부조리극이라는 특징을 봐야 한다. 카뮈의 실존주와 부조리라는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짚었을 때, 부조리한 인생을 사는 이 둘이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도는 적어도 부조리를 해결하는 존재, 즉 실존에 대한 해답이라고 해석된다. 실존에 대한 해답이 무엇인지는 실존주의자들마다, 철학자들마다 상이하다. 유신론적 실존주의는 신이라고 생각하고, 프롬 같은 휴머니스트들은 사랑이라고 한다. 베게트는 고도를 신으로 환원하여 해석하지 말라고 한다. 고도라는 존재에 대해 독자마다 해석이 갈릴 수는 있으며, 굳이 작가가 신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한다는 점에서 신을 배제한 독자 자신의 실존에 대한 해답이 바로 고도의 정체이다.     


 그렇다면 나의 고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숙명론에 근거한 초월적 메시아가 아니다. 아직 온 적은 없지만 올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존재, 바로 혁명이다. 디디와 고고가 하염없이 혁명을 기다렸다. 이것은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에서 맹렬히 비판한 숙명론적 태도이다. 역사는 정해진 방향도 없고, 결정된 것도 없다. 오직 현존재가 어떻게 가느냐에 달려 있다.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서 황지우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에게 가는 것처럼, 우리는 고도를 기다릴 뿐 아니라, 고도에게 다가가야 한다. 실존에 대한 해답을 주는 존재, 그것이 고도이고 고도는 곧 혁명이다. 우리는 혁명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2023.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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