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베르렌, <거리에 비 내리듯>
11월에 내리는 비에게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 내린다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이 슬픔은 무엇일까?
속삭이는 비 소리는
대지 위에, 지붕 위에!
울적한 이 가슴에는
아, 비 내리는 노래 소리여!
역겨운 내 맘속에
까닭없이 눈물 흐른다
웬일일까! 배반도 없었는데?
이 슬픔은 까닭이 없다
사랑도 미움도 없이
내 마음 왜 이다지 아픈지,
이유조차 모르는 일이
가장 괴로운 아픔인 것을!
- 폴 베르렌느, <거리에 비 내리듯>
이 시는 랭보의 연인으로 유명한 폴 베를렌이 멜랑콜리, 즉 깊은 우울감의 본질을 탐구한 작품이다. 비가 내리는 날, 그 고즈넉한 소리는 무의식에 잠재된 감정들을 일깨우며 존재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이때 느껴지는 이유 없는 슬픔은 현대적 우울의 전형적인 모습과 닿아 있다.
멜랑콜리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 존재의 심연을 잇는 다리와 같다. 그 속에서는 자아의 혼돈과 고독이 교차하며, 이는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자극한다. 사랑과 미움의 부재 속에서도 느껴지는 이 고통은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심리적 굴곡을 반영한다.
베를렌의 시는 비 오는 날의 정서적 풍경을 통해 현대인의 고단한 심리를 은유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비가 대지를 적시듯, 멜랑콜리는 내면 깊숙이 스며들어 우리로 하여금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하게 만든다. 이처럼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은 인간으로 살며 겪는 필연적인 여정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지상을 강타하는 비가, 조금 더 모질게 혼내주길 바라며..
-11월의 마지막 비, 혹은 첫 눈을 맞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