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과 레온 트로츠키. 너무 똑똑해서 불행한 삶을,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하면서도 죽는 날까지 낭만을 품은 이 둘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벤야민과 트로츠키는 20세기의 혁명의 지성 속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들은 마르크스라는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이고, 스탈린의 기계적 유물론에 맞서 진정한 혁명적 사상가였다. 물론, 다른 영역에서 활동했지만, 억압적인 현실에 대한 분석과 역사적 해방의 가능성에 강렬한 관심을 공유했다. 벤야민은 독일 철학의 전통 속에서 활동한 문예비평가이자 유물론적 철학자였으며,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의 실천적 지도자이자 이론가로서 맑스주의의 발전을 도모했다. 본고 두 사람의 핵심 개념들,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와 트로츠키의 '연속구혁명',그리고 그들이 바라본 역사적 시간, 혁명의 방식, 해방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비교한 글이다.
역사에 대한 시선: 벤야민과 트로츠키의 역사관
발터 벤야민의 마지막 글'로 알려진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에서는 그의 역사관으로 유명한 비유인 '역사의 천사'를 말한다. 파울 클레의 그림으로도 알려진 이 천사는 기존의 '역사는 진보한다'라는 환상을 거부하며, 과거의 고통을 응시한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고통을 잊고 앞만 바라보지만, 벤야민에게 시간은 단선적 흐름이 아니라 파열과 중단으로 이루어진다. 벤야민의 '메시아적 시간'은 억압받고 망각된 과거의 목소리를 해방시키는 순간에서만 온다. 그는 기존의 역사를 "승리한 자들의 기록"으로 간주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시각에서 과거를 되살리는 비판적 역사 쓰기를 강조한다. 즉, 민중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선언이다.
반면, 트로츠키의 시간관은 혁명의 연속성과 미래 지향성을 중시한다. 그의 '연속혁명' 개념은 단순히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 혁명의 지속적 과정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혁명은 특정 시점의 종결이 아니라, 국제적이고 끊임없이 심화되는 역사적 운동이다. 트로츠키는 벤야민의 파편적 시각과는 대조적으로, 역사를 세계적이고 연속적인 맥락 속에서 조망하며 혁명의 불가피성과 필연성을 주장했다. 마르크스의 사상의 원형인 헤겔 철학의 특징인데, 헤겔에 회의적인 벤야민과 달리 트로츠키의 기본적인 철학에는 헤겔 철학이 녹아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모두, 기존 구조에 의해 억압된 자들을 구원하거나 해방하려는 시각을 공유한다. 벤야민이 과거로부터 억압받는 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을 말했다면, 트로츠키는 현재와 미래의 구조적 변혁을 통해 자본주의와 착취를 종식시키는 데 관심을 두었다. 즉, 둘 다 혁명적 사상가로 같은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벤야민: 전략 없는 혁명의 몽상가 벤야민의 혁명적 사유는 철저히 철학적이고 비판적이다. 그는 <역사철학 테제>에서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이 가능한 메시아적 순간"에 대해 말하며, 혁명을 기존 시간의 연속성을 끊는 급진적 중단으로 보았다. 벤야민은 자본주의 문화를 거대한 착취의 체계로 이해하며, 이러한 체계를 폭로하고 '기억'의 힘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혁명을 실질적 전략이 아니라 철학적・미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다뤘다. 이로 인해 자유주의 및 보수주의, 파시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강했지만, 실제 정치적 실천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진 않았다. 그 유명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품>의 마지막 구절에서 '공산주의는 예술의 정치화'를 말하지만, 모호한 테제일 뿐 구체적 실천으로 재현되지 않는다. 더군더나, 그의 철학이 혁명적일지라도, 소련의 스탈린주의화 및 망명 실패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실천에서 증명하지 못 했기 때문에 혁명가라고 할 수 없다. 존 버거가 쓴 에세이에서는 <발터 베냐민: 골동품 연구가이자 혁명가>로 그를 부르는데, 명확히 말하자면 좁은 의미에서 그는 혁명가는 아니었다.
트로츠키: 실천적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학자 아이작 도이처에 따르면, 트로츠키는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마르크스주의자'이다. 우선, 트로츠키는 벤야민과 달리 혁명을 추상적으로 사유하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 혁명 이후 적군 조직, 혁명 정부 수립, 그리고 국제적 혁명 전략 구상이라는 실질적 행동의 중심에 있었다. 그의 '연구혁명론'은 당대의 러시아와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며, 특정 국가의 사회주의는 결국 국제적 혁명으로 확장되지 않으면 실패할 운명에 처한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혁명에는 글로벌 연대와 지속적 투쟁이 필수적이었다. 트로츠키는 벤야민과 마찬가지로 기존 체제를 비판했지만, 그의 모든 이론은 실천적 목적 아래 조직화되었다. 그가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충실한 계승자이자, 과학적 사회주의자인 이유이다.
벤야민: 해방은 불가능 속에서 발견된다 벤야민은 비관적 유물론이라는 독특한 지적 기반 위에 서 있다. 그는 역사적 조건 자체가 억압과 폭력의 구조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 해방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무력감 속에서도 현재의 틈에서 메시아적 가능성이 도래한다고 믿었다. 해방의 순간은 단번에 펼쳐지지 않은 채 도약적으로, 파편적으로 감각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의 사유는 "항상 패배 속에서 저항의 불씨를 발견하는" 혁명적 상상력을 제공한다.
트로츠키: 인간 해방의 전도사 트로츠키의 전망은 벤야민보다 훨씬 더 구조화되어 있고, 과학성을 담보한다. 그는 불평등과 착취를 이루는 자본주의 체제가 내부 모순에 의해 붕괴될 것이라고 보았으며, 해방은 이를 대체할 사회주의 체제에서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다. 트로츠키에게서 해방은 단순히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 인간 행동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 그는 혁명을 위한 구체적 조직화와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강조하며, 해방이 자발적 "메시아적 순간"이 아니라, 노동계급 투쟁 속에서 점진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을 위하여 두 사상가는 모두 지배 계급에 의해 억압받아온 민중들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공유한다. 벤야민은 기존 역사적 기록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자들의 서사라고 보았고, 트로츠키는 자본주의 구조가 대다수의 민중을 착취한다고 보았다. 이들은 민중들, 억압받는 자들, 망각된 자들의 시선을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공명한다.
차이점: 실천적 해법과 철학적 비관 트로츠키는 해방을 위해 빈약한 가능성을 넘어선 실질적 혁명 기획을 제안했고, 벤야민은 역사적 조건의 강고함 속에서 메시아적 순간을 기다리며 이를 철학적・미학적으로 사유했다. 벤야민은 혁명을 "가능한 순간"으로 간주했지만, 트로츠키는 그것을 반드시 조직화하고 실현해내야 할 필수적 과정으로 여겼다.
마치며: 전통과 대안을 넘어서
벤야민과 트로츠키는 모두 20세기라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지식인과 혁명가로 존재하며, 그 시대의 억압적 현실에 맞섰다. 한 사람은 미학적・철학적 통찰을 통해 과거의 억압받은 자들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자 했고, 다른 이는 실천적 혁명을 통해 미래의 해방을 구상했다. 이 둘의 교차점은 우리가 오늘날 역사를 바라보고 행동하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우리는 '역사의 천사'처럼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되, '연속혁명'처럼 현재와 미래를 구상하며 혁명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