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 박종철출판사, 1999
블라디미르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 박종철출판사, 1999, 최호정역
21세기에 쿠데타 시도라니! 설마가 상상이 되는 소설보다 소설같고, 영화보다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는 분명히 충격적이고 황당한 일이지만, 어쩌면 우경화된 주류 정치의 타락한 초상임을 보여준다. 단지 한국만의 문제인가?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당선되었고,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로니를 지지하는 파시스트가 총리이다. 게다가 독일에서는 극우 정당인 AFD가, 프랑스에서도 극우 파시스트 정당 국민전선이 거의 정권을 차지할 만한 세력을 확보했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상상하기 조차 힘든 일이 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위기는 한편으로 기회이다. “모든 순간은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는 작은 문일 수 있다,”라고 했던 벤야민의 말대로, 지배계급의 우경화 전력과 재난의 상시화는 한편으로 노동 계급의 투쟁의 자양분이 된다. 결국 이러한 위기는 노동 계급이 ‘비상 브레이크’를 당겨 폭주하는 역사의 기관차를 멈추게 할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변주하자면, 인류는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그대, 무엇을 할 것인가? 폭주하는 기관차가 뛰어드는 야만의 불구덩이로 갈 것인가? 아니면 기관차를 멈추고 스스로 메시아로 삼는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 갈 것인가? 적어도 세상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후자를 택할 것 같다.
차별과 천대에 맞선 모든 대중투쟁이 승리하길 바란다. 그렇기에 효과적인 전술과 전략이 필요하고 이를 바쳐주는 가장 선진적인 이론이 필요하다. 그 이론의 이름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요, 마르크스를 20세기 초반에 가장 효과적으로 풀어냈고, 가장 진실되게 적용한 혁명가는 레닌이라고 할 수 있다. 레닌의 총총히 빛나는 명작 중에서 4대 저작이라고 불리는 책들이 있는데, 그중 레닌 사상의 정수이자, 마르크스 혁명 조직 이론의 전범이 되는 책이 바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체프니셰프스키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팜플릿은 1901년 전후로 쓰였다. 당시 잘못된 정치 경향이자, 부상하던 ‘경제주의’에 대한 비판과 레닌의 당조직 이론, 혁명적 신문의 구실이 담긴 레닌의 혁명적 사상의 원형을 느낄 수 있는 명작이다. 최일붕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에 따르면, 이 책은 스탈린주의자들에게도, 반대로 반공주의자들에게도 곡해되어 해석되어왔다고 한다. 전자는 레닌 찬양을 위시한 스탈린에 대한 독재의 정당화로, 후자는 레닌마저도 스탈린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악마로 묘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단 한 번도 스탈린의 관료 독재를 정당화하는 ‘민중집중제’가 등장하지 않는다. 당시 잘못된 정치 경향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베른슈타인주의, 영국의 노동 조합주의, 그리고 러시아의 경제주의에 대한 레닌의 열과 성이 들어간 비판이 가득하다. 레닌이 말한 경제주의는 오늘 날 오해하기 쉬운 단어인데, 쉽게 말해 “노동계급 투쟁의 계급적 성격을 흐리고, ‘사회를 인정하자’는 무의미한 말을 늘어놓으며 이 투쟁을 약화시키고,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하찮은 개혁주의 경향으로 격하시키려” 했다고 썼다. 한 마디로 1만원에 1000원을 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제2인터네셔널 서문에서 밝힌 노동계급의 자력해방과 괴리되어 있는, 분명 어처구니 없는 기회주의였다. 이런 당시의 주류 경향에 대한 비판이 1장 비판의 자유에서부터 시작해, 자율성 문제와 혁명적 조직의 문제로 나아간다. 레닌은, 모든 사상을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말하며, 노동 계급의 경우 기존 부르주아 상식과 사회주의적 양식에서 저울질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율성을 핑계로, 단지 혁명적 조직이 아닌 노동 조합 관료에 의지해서는 안될 것을 말한다. 레닌은 사회민주주의자가(당시 사회주의자를 상징한 기표)가 노동조합의 서기가 아닌 민중의 호민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단지 노동조합 관료들의 이익이 아닌 진정한 억압 받는 사람들의 투사가 되어야 할 것을 말했다. 자율성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레닌이 말하는 혁명적 당은 스탈린의 오염된 공산당과 달리 진정으로 노동자를 대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 맞서 함꼐 투쟁하는 조직이다. 경제주의자들은 경제 투쟁에서 정치의식이 스스로 발전할 것으로 봤지만, 레닌은 자발적 투쟁을 통해 의식과 조직의 필요성이 두드러진다고 보았다. 즉, 혁명적 운동에 혁명적 이론이 필요하듯이, 혁명적 이론을 정비하고 혁명적 운동을 조직할 혁명 조직의 필요성을 말한다. 당과 계급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파악해 마르크스주의의 조직 이론에 기여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수단으로 마지막 5장에서 레닌은 신문의 중요성을 말한다. 신문은 단지 정보교환 수단이 아니라, 억압 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라는 점이다. 소식을 전한 뿐만 아니라, 혁명적 신문을 통해 묶여 있고 발간하고 배포하는 과정에서 사람들 간의 연대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구텐베르크 시대의 종언을 논하는 시대, 물론 SNS의 중요성이 높아졌을지라도 신문, 진정한 혁명가들이 펴낸 신문은 영원한 성좌가 되어 혁명적 조직을 인도할 것이다. <노동자 연대>, <Socialist Worker>를 비롯한 혁명적 신문이 더 많이 흥하길 바란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기란 참으로 고된 일이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한 줌의 좌파 세력들이 논쟁하기 위해 펴낸 소책자가 대박을 쳐서 사투(사상투쟁)의 원형으로 자리 잡은 셈이라 그렇다. 이 책의 역자 역시도 레닌의 문체가 문학적이기보다 논리적이고 간결하다고 말한다. 사실 편집자의 입장에서 1999년에 원어로 번역된 이 책의 편집과 형식이 가진 약점도 몇 개 보이긴 하나, 정말로 훌륭한 원저작에 찬사를 보낸다. 벤야민이나 아도르노 같은 강단 좌파들과 달리, 혁명적 사상이 아닌 혁명적 활동에 헌사하기 위해 저술한 이 책은 영원한 혁명적 활동가들의 고전이다. 재난이 상시화되는 지금, 재난을 멈추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물음에 이렇게 적어본다.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운동이 있을 수 없다.” 책을 읽고, 운동을 건설하자. 사상적 자위나, 자기만족적 운동이 아닌 진정한 혁명적 운동을 위한 독서와 실천의 유기적 결합이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광장을 위해 책을 읽어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