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7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주민을 타자화하지 않기

존 버거&장 모르, 『제7의 인간』, 눈빛, 2021, 차미례역 ​

by 꿈꾸는 곰돌이

네가 이 세상에 나서려거든

일곱 번 태어나는 것이 나으리라

한 번은, 불타는 집 안에서

한 번은, 얼어붙은 홍수 속에서

한 번은, 거칠은 미치광이 수용소에서

한 번은 무르익은 밀밭에서

한 번은, 텅 빈 수도원에서

그리고 한 번은 돼지우리 속에서

여섯 아기들이 울어도 충분치 않아

너는 제 7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아틸라 요제프, <제 7의 인간> 중


존 버거를 다룬 다큐멘터리 <존 버거의 사계>(2016)에서 존 버거는 이렇게 말한다. "<제7의 인간>이라는 이주 노동자에 대한 책을 썻어요. 만약 내 많은 저서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면 하나만 살아남는다면 그걸 선택할 거에요." 부커상을 받은 『G』, 대중적인 미술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 편지 형식으로 쓰인 명작 『A가 X에게』 등 수많은 저서를 남긴 존 버거. 그런 그가 자신의 대표작이라 꼽은 『제7의 인간』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오직 인간을 위해 쓰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걸작이라 할 만하다.

책의 서두에 인용된 헝가리 국민 시인 요제프의 시처럼, 이 책은 시작부터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제목에 등장하는 ‘제7의 인간’은 타자로 소외된 이주 노동자를 뜻하는데, 이는 당시 유럽의 상황을 가리킨다. “독일 노동자 일곱 명 중 한 명은 이주 노동자”라는 통계에서 가져온 이 표현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함의를 담고 있다. 이 책은 그 숫자의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얼굴과 이야기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부제인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이 암시하듯, 『제7의 인간』은 겉보기에 사회학적 보고서나 르포르타주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객관적 데이터나 통계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쌍용차 파업 노동자를 심도 있게 다룬 르포르타주 『의자놀이』나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노동과 계급을 서술하는 사회적 기록의 성격을 띤다면, 『제7의 인간』은 이를 훨씬 더 깊은 감정적, 철학적 차원으로 가져간다. 이 책은 단순히 노동자들의 일상과 고통을 전달하는 데 멈추지 않고, 이주 노동자가 겪는 소외, 정체성 상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인간적 고뇌를 진솔하게 탐구한다.

특히, 존 버거는 시적인 문장과 섬세한 묘사를 통해 이주 노동자들의 여정을 그린다.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향하고, 입국 심사를 거쳐 허드렛일에 종사하며 쉽게 소진되는 그들의 삶은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기보다는 마치 ‘경제의 톱니바퀴’로만 여겨지는 현실이다. 하지만 버거는 그들의 이름 없는 삶 속에서 보편적 인간성을 발견하려 한다. 경제적 조건 아래 소외된 이주 노동자들을 단순히 희생자로 바라보는 대신, 그들 역시 꿈과 기억, 그리고 고향에 대한 상실감을 가진 온전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이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작업이다.

사진 또한 이 책에서 강렬한 역할을 한다. 사진작가 장 모르(Jean Mohr)의 흑백 사진은 단순한 시각적 자료가 아닌, 책의 핵심 주제와 결합된 하나의 예술적 장치로 기능한다. 그의 사진은 이주 노동자들의 어둡고 거칠며, 때로는 고요한 일상 속에 숨겨진 정서적 진동을 드러낸다. 예컨대, 낯설고 황량한 공장에서의 고된 노동, 좁고 삭막한 숙소에서의 쓸쓸함, 그리고 타지에서 느끼는 뿌리 뽑힌 듯한 감정을 사진 속에 담아낸다. 이를 통해 장 모르의 사진은 단순히 현실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독자에게 이주 노동자들의 고통과 침묵을 체감하게 만든다.

존 버거는 이 사진들에 글을 유기적으로 엮어, 시적 문장들 속에 사회적 비판과 감정적 호소를 함께 담아낸다. 그렇게 탄생한 『제7의 인간』은 그의 저작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리얼리티를 부각시킨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장 모르와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이 독창적인 형식은 단순히 이민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 스스로 ‘타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은 그들에게 고통을 강요하고도 무관심했던 유럽 사회를 비판하는 동시에, 이주 노동자가 겪는 내적 갈등과 존엄성을 조명한다. 이는 단순히 20세기 당시의 상황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이주민과 난민들이 여전히 경제적 이주, 정치적 망명, 전쟁과 빈곤의 피난 속에서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이는 『제7의 인간』이 시대를 초월해 울림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7의 인간』은 단지 이주 노동자의 삶을 기록한 텍스트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그것은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헌사이자, 그들을 한 명의 온전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하는 다리이다. 타자성을 뛰어넘어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하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우리가 공유하는 인간성과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실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