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하먼의 새로운 제국주의론》을 읽다가 1장 고전 제국주의를 다룬 부분에서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다룬다. 힐퍼딩의 영향을 받은 이 저작은 레닌이 카우츠키와 결별하며, 비로소 진정한 우리가 알고 있는 레닌주의자로서 레닌을 완성하는 저작이기도 하다. 의의와 약점을 잘 서술했지만, 많이 압축되어 있어 조금 더 자료를 찾아 레닌의 제국주의론 노트를 완성해본다.
1. 레닌의 《제국주의론》 배경
1916년에 쓰인 《제국주의론-자본주의의 최신 단계》는 레닌의 가장 주요한 작업중 하나이다. 망명 중에 취리히에서 쓰인 이 저작은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을 비판하기 위해 쓰인다. 당시 마르크스주의의 교황으로 불린 카우츠키는 기회주의적 행보를 보인다. 그가 이끌었던 제2 인터내셔널에서 괴상한 강령을 채택한 것이다.
1914년 8월, 소속 정당들이 이전의 반전 결의와 완전히 상반되는 입장을 취해 자국 정부를 지지하기로 함에 따라 붕괴했다. (최일붕, 격주간 '다함께' 32호(2004.5.29) "평화를 위해 투쟁하라. 전시가 아닌 때 계급투쟁을 하라."라고 하며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카우츠키의 행보는 도저히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할 수 없는 곡해였다. 이러한 기회주의는 선거중심주의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카우츠키는 이전 로자와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논쟁에서 로자의 편을 들어줬지만, 여전히 '사회주의로 가는 의회의 길’을 믿고 있었다. 카우츠키는 전쟁을 자본주의의 고질적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면 평화적 제국주의의 시대가 도래할지 모르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주장한 ‘초제국주의'이다. 카우츠키는 초제국주의론을 통해 사회주의로 가는 의회의 길을 정당화했다.
분명 카우츠키는 마르크스주의의 교황으로 평가되었지만, 레닌은 《제국주의론》을 기점으로 카우츠키를 맹렬히 비판한다. 즉, 레닌이 카우츠키의 지도에서 이탈한 것도 이때이다.
레닌은 카우츠키가 제국주의의 정치학과 제국주의의 경제학을 분리시켰다고 비판하며, 자본주의와 전쟁의 관계를 주목한다. 평화는 자본주의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
오늘날 흔히 사용되는 제국주의의 정의는 두 가지이다.
1) 강대국의 약소국 강탈과 괴롭히는 초역사적인 제국주의 (페르시아 왕조, 진나라, 로마처럼)
2) 고전적 의미로서 식민지 수탈
(팔레스타인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그래서 많은 숫자의 한국 좌파들은 제국주의를 단지 '미국 제국주의'로만 이해한다. 이러한 분류는 총체적이지 못하다. 오직 총체성을 확보한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제국주의만이 세계 체제로서 제국주의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는 제국주의의 시대가 아니었다. 제국주의라는 것의 맹아만 있었다. 그 시절은 자유경쟁의 시대였지, 자본축적이 덜 되었고 무엇보다 아직 독점이 진행되지 않았다. 레닌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쓸 당시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자유경쟁을 ‘자연법칙’으로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생산과 자본의 집중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독점이 자유경쟁을 대체했다고 지적했다.
레닌 제국주의론의 다섯 가지 특징
첫째, “생산과 자본의 집적이 고도의 단계에 달해, 경제 생활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독점체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둘째, “은행 자본이 산업 자본과 융합하여 ‘금융 자본’을 이루고, 이를 기초로 하여 금융과두제가 형성된다.”
셋째, “상품 수출과는 구별되는 자본 수출이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넷째, “국제적 독점 자본가 단체가 형성돼 세계를 분할한다.”
다섯째, “자본주의 거대 열강에 의한 전 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완료된다.”
-박혜신, 「제국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예리하게 관찰하다」, 마르크스21 43호
자본은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이윤을 재투자하며 규모를 확대해 나갔다. 더 강하고 효율적인 기업들이 약한 기업들을 흡수해 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거대 독점 기업들이 경제를 장악하게 되었으며, 산업 자본과 은행 자본이 융합된 '금융 자본'(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자 힐퍼딩의 용어로,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다)은 이전에 없던 수준으로 경제력을 집중시켰다. 이것이 바로 독점자본주의이다
독점자본주의가 도래했다고 해도 자본주의 속 경쟁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자국 경제를 넘어 해외 시장으로 진출해 경쟁하려고 한다. 그래서 독점 기업들은 시장과 원자재 등을 놓고 세계시장에서 필사적으로 경쟁했다. 그래서 레닌은 이 시기에는 자본 수출이 중요해진다고 주장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흔히 말하는 제3세계 지역-저발전 지역이 대기업들의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되었다. 그곳은 원자재 공급원이자 투자 기회 제공처가 돼 줬다. 그래서 강대국의 자본가들은 잉여 자본의 상당 부분을 저발전 지역으로 수출했고 막대한 이윤을 얻었다. 즉, 해외 진출이 시장 확대를 통해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기에, 필사적으로 자본가들이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경쟁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들 사이에서도 나타났다. 국가 관료들에게도 자국 수입을 늘리려면, 해외 진출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지리적-군사적 경쟁으로 나타났고 그 결과,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세계를 분할하게 됐다.
이러한 분석은 부제처럼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최신 단계이며, 내재적 동학이라고 봤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 체제로서 제국주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석에는 레닌이 마르크스의 주요 개념인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통해 제국주의 현상을 분석했기 때문이다.
주요 개념들-불균등 발전, 혁명적 패배주의, 민족자결권
-불균등 발전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은 강대국들이 영토를 분할해 평화롭게 통치가 가능하다고 봤지만, 레닌은 불균둥 발전 개념을 통해 카우츠키를 비판한다. 자본주의 국가는 불균등하게 발전하기 때문에, 성장 속도에서 다른 국가들을 추월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평화롭고 질서 있게 발전하지 않고, 힘으로 분할되며 지배된다. 그래서 휴전이나 평화는 일시적인 것이지, 세계는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전운이 감도는 것이다.
-혁명적 패배주의
또한 레닌은 제국주의의 발본적 문제가 자본주의의 문제이므로, 실천에서 제국주의와 맞설려면 개혁주의적 해결책이 아닌 혁명적 반자본주의가 필요하다.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는 실천에서 개혁주의로 빠질뿐 아니라, 노동계급 투쟁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이와 달리, 레닌은 계급 투쟁을 제국주의에 맞설 핵심 요소로 보았다. 그래서 제국주의 전쟁을 수행하는 부르주아 중 특정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르주아에 모두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르에 맞선 성전을 운운하며 애국주의를 강조했던 카우츠키와 달리, 레닌은 정부에 맞선 반제국주의를 말한다. 레닌이 독일의 첩자 소리까지 들으며, 러시아 차르 정부에 맞설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제국주의에 관한 관점에 대한 부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혼란으로 나타난다. 자민통 경향의 스탈린주의자들은 서방 제국주의에만 반대하며, 무비판적으로 제국주의 국가인 러시아를 지지했다. 반대로 개혁주의자나 사회진보연대 같은 좌파들은 우크라이나의 침력에만 집중해, 서방의 무기지원 마저도 옹호했다. 이들은 서방 제국주의가 러시아 제국주의보다 나은 것으로 본다. 그러나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따르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양대 부르주아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어야 하며, 특히 자국의 부르주아에게 대항하는 혁명적 패배를 외칠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혼란은 초유의 전쟁에도 제대로 된 반전 집회가 열리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민족자결권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당시에 무척인 중요하고, 오늘날에도 유효한 민족해방의 개념에도 영향을 준다. 레닌은 억압 받는 민족이 원한다면, 그 권리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민족 해방이 가능해야 국제 노동 계급의 단결에 이롭기 떄문이다. 특히 제국주의 열강 본국에 맞선 식민지 국가의 저항이 벌어질 때, 본국 노동계급이 반제국주의 저항에 연대하는 것이 민족해방의 주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커다란 세 가지 약점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뛰어난 마르크스주의 고전이지만, 분명 약점도 있다. 먼저 지적되는 것이 바로 노동귀족론인데, 제2인터내셔널 주요 정당들이 왜 전쟁을 지지하는지를 분석하고자 이 개념을 말한다. 레닌은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지에서 거둔 초과 착취로 노동자 일부를 매수해 이들이 전쟁을 지지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근거가 없다. 실제로 착취율을 계산해보면 본국에서 착취율일 높았으며 (마르크스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아프리카 채석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보다 선진국 IT노동자의 착취율이 높다.), 초과 이윤을 노동자가 누린다는 근거 역시 없다. 이러한 분석은 선진국 노동자들이 특혜를 받는다며, 도덕적으로 비난하기 쉽다.
또한 힐퍼딩에게서 빌려온 '금융자본'역시 정확하지 않다.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이라는 개념인데, 당대 독일의 경제 상황에는 맞았지만, 영국 등 다른 제국주의 국가의 경제 상황에는 알맞지 않는다. 이러한 분석은 금융자본을 과대평가하는 오류로 빠진다. 금융의 비대화 등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내 자본에 반대해야 한다.
또한 분석 역시 오류가 있다. 자본수출과 식민지 확장의관계에서 레닌은 제국주의 국가가 자본 수출을 한다고 보았지만, 실제로는 자본 수입국이었다.
*참고 문헌
박혜신, 「제국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예리하게 관찰하다」, 마르크스21 43호
김영익,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신 단계다, 노동자연대 221호
최일붕, 카우츠키 ‘초제국주의론’에 대한 레닌의 비판, 〈격주간 다함께〉 32호
이원웅,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 노동자연대 458호
크리스 하먼, 『크리스 하먼의 새로운 제국주의론』, 책갈피,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