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복수는 나의 것> 1979

요즘 들어 일본 영화의 깊은 매력에 점점 더 빠져들고 있다. 이전에는 일본 영화라고 하면 ‘라쇼몽’이나 지브리 작품 정도만 떠올렸고, 그 외엔 딱히 땡기는 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연히 기타노 타케시 감독의 건조하면서도 서정성이 묻어나는 폭력 미학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일본 영화사에 손꼽히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찾아 보고 있다. 그러던 중, 전후 일본 사회의 가장 어두운 이면을 파헤친다는 평을 듣는 고전 영화 하나와 마주하게 됐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1979년작 <복수는 나의 것>이다. 같은 제목의 박찬욱 감독 영화가 더 익숙해서, 혹시 패러디나 오마주가 많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막상 보니 살인을 다뤘다는 점 빼면 겹치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 이 영화는 연쇄 살인마 에노키즈(오가타 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취조실에 앉아 있는 에노키즈의 과거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광기에 자연스럽게 압도당하게 만든다. 시간이 제멋대로 흐르는 듯한 불친절한 연출과 놀라울 만큼의 몰입감 역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에노키즈는 자신을 이해해주거나 사랑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도 가차없이 칼날을 겨눈다. 예측 불가능한 폭력의 화신인 셈, 좀 더 노골적으로 검은 머리 짐승이다. 교수로 신분을 위장하며 전국을 떠돌며 여러 여성들과 관계를 맺지만, 그 모든 만남의 끝에는 파멸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더 무서운 점은 그러한 잔혹한 행동 대부분이 뚜렷한 이유 없이, 충동적으로 터져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단순한 사이코패스를 보여주는 것 같은데, 과연 이 영화가 걸작이라고 할 만한가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아버지 시즈오와 며느리가 함께 아들의 유골을 뿌리는 장면에서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섬뜩하고 불쾌한 감정이 남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의문은 바로 제목인 <복수는 나의 것>이다. 에노키즈의 살인에는 특별한 원한이나 개인적인 복수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과연 ‘복수’가 누구의 것인지 헷갈린다. 혹시 사회가 에노키즈에게 복수하는 형국일까? 아니면 인간의 파괴 본능을 ‘복수’라는 단어로 치환한 걸까. 영화는 이런 물음을 끝까지 던져놓고 명확한 답은 주지 않는다. 살인 장면조차 지나치게 담담하고 건조하게 그려지니, 오히려 폭력이라는 게 얼마나 덧없고 공허한가를 더 강조하는 느낌이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현실적인 잔인함은, 결국 사회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쓸쓸하게, 그리고 아주 거칠게 던지고 있다. 만약 이 영화를 해석해 본다면,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리얼리즘이고, 또 하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이 두 분석틀은 영화 평론에서 워낙 자주 등장하지만, 이만큼 불쾌하게 두 가지를 엮어버린 영화는 흔치 않은 것 같다. 먼저 ‘리얼리즘’이라는 키워드로 보면, 에노키즈란 인물은 전후 일본 사회의 어둡고 썩어가는 구석을 상징적으로 품고 있다. 그는 전쟁, 점령, 혼란기를 모두 겪었지만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뿌리째 흔들리는 존재다. 영화 속 인물들도 다들 각기 다른 결함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특히 에노키즈가 살해한 여성 ‘하루’에게서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을 암시하는 대목에선, 전후 일본 사회가 외면해온 소수자 문제까지 미묘하게 드러나는 듯했다. 에노키즈의 폭력은 단순한 한 사람의 범죄라기보단, 모순과 불안이 섞인 시대 분위기가 낳은 비극의 산물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리얼리즘 영화라 부를 만하다.

이 에노키즈의 방황하는 심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맞닿아 있다. 영화 초반에는 어린 시절 에노키즈가 존경하던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굴욕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살던 아버지가 결국 천황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며, 아이였던 그는 자신이 믿어온 이상적인 아버지상을 한순간에 잃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은 오랫동안 지울 수 없는 유년기의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성인이 된 뒤에는 감옥에서 아내가 아버지와 동침했다고 비난하는데, 그 순간 역시 아버지에 대한 해소되지 않은 적대감과 어머니 혹은 그 대리자인 아내에 집착하는 뒤틀린 감정이 여전히 내면을 지배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자신에게 호의를 보인 여성들마저 잔인하게 살해하는 그의 폭력성은, 어머니를 향한 욕망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뒤섞여, 결국 억누르지 못한 채 무차별적으로 분출되는 비극적인 결과처럼 보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남자는 여성을 두 가지 분류로 나눈다고 한다. 어머니로 대표되는 성녀와 그 외 여성들은 창녀로 말이다. 에노키즈 역시 자신에게 성녀였고 진정으로 좋아했던 자신의 아내가 아버지를 사모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이 콤플렉스에 시달려 매춘부를 비롯한 여성들과 잦은 관계를 맺지만, 진정으로 사랑을 못느끼고, 창녀였던 하루 역시 살해한다. 겉으로는 세상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속에 남아 있던 오이디푸스적 갈등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과정이었다. 단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영화의 결말은 이 모든 비극의 정점을 찍는다. 에노키즈가 사형을 당한 뒤, 그의 아버지와 아내가 에노키즈의 유골을 산 정상에서 강물에 뿌리려 한다. 그런데 세찬 바람 때문에 유골은 강물에 닿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다 풀잎에 걸리거나 흙먼지처럼 흩어져 버린다. 이 장면은 일본 영화사에서도 손꼽히는 충격적인 결말로 남아 있다. 에노키즈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한순간에 사라지는 허무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유골을 뿌리는 순간, 아버지와 아내의 표정에는 해방감도 진한 슬픔도 아닌, 무력감과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담겨 있다. 인간이 비극 앞에서 느끼는 근원적인 허망함이 그들의 표정에서 읽힌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제목 역시, 끝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파괴된 한 존재의 영원히 풀리지 않는 질문, 그리고 그 질문 자체가 가장 잔혹한 복수였음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