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에서 -기타노 타케시, <기쿠지로의 여름>
여름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와 음악이 있다. 기타노 타케시 감독의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과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Summer'가 떠오른다. 그럴 때면 잠시 묵혀두었다가 여름의 끝자락에서 보곤 한다.
어렸을 때 이 영화를 처음 본 이후로, 여름의 중반보다는 후반에 영화의 색채와 음악이 더욱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웃집 토토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유년의 순수함을 영원히 간직하게 해주는 특별한 영화다. 단순한 모친 찾기 여정이라는 구조 속에 소년의 성장과 중년남성의 순수함 회복이라는 섬세한 주제를, 기타노 타케시 감독 특유의 청량한 색채와 경쾌한 OST를 통해 아름답게 그려낸다.
사실 기타노 타케시 감독의 영화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그의 작품 중 매우 독특하게 느껴질 것이다. 평온한 푸른 배경 속 잔인한 살상을 그려온 기타노 타케시 감독의 영화들 중 유일한 전체 관람가 작품으로, 오히려 지브리 영화의 실사화에 가깝다. 주인공 기쿠지로가 전직 야쿠자라는 설정이 있지만, 죽음이 아닌 '성장과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여름의 색채 속에 숨겨진 오이디푸스적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마사오와 기쿠지로는 세대를 넘어선 우정을 보여주지만, 사실 둘 다 어머니의 외도로 인해 버림받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다. 기타노 타케시 감독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여행을 통해 서로 치유하는 과정으로 영화를 구성했다.
영화의 핵심 소재는 마사오와 기쿠지로의 모성에 대한 갈망이다. 영화는 방학 중 할머니와 단둘이 지내던 마사오가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을 해소하고자 어머니를 찾아 나서며 시작한다. 이는 프로이트가 언급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적인 발현으로, 어머니에 대한 강렬한 애착과 재회에 대한 상징적 열망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갑작스럽게 여정에 합류한 기쿠지로 역시 어머니의 외도로 인해 버림받은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아내의 권유로 여행에 참여하지만, 그의 거칠고 때로는 폭력적인 행동 뒤에는 어린 시절의 상실감, 어머니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기방어의 미숙한 메커니즘이 숨겨져 있다. 기쿠지로는 마사오의 이상화된 어머니상과 정면으로 맞서며, 도박과 비상식적인 행동을 통해 마사오에게 현실의 가혹함과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행동들은 아마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냉소적 자기방어이자, 마사오에게 현실의 냉혹함을 미리 가르치려는 서툰 시도일 수 있다. 마사오가 어머니를 직접 만나 그녀가 이미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영화의 분위기는 급변한다. 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핵심인 상징적 거세가 이루어지는 지점으로, 비현실적인 모성에 대한 욕망이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좌절되고 환상이 무너지는 과정이다. 이 지점에서 기쿠지로는 마사오에게 "엄마가 이사 간 모양"이라며 어설픈 위로를 건넨다. 이는 현실도피적인 위로가 아니라, 자신이 겪었던 어머니와의 이별이라는 가혹한 '상징적 거세'의 고통을 마사오만큼은 겪지 않게 하고 싶었던, 혹은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를 마사오에게 투영하여 간접적으로 치유하려는 기쿠지로의 무의식적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실감은 마사오에게 성장의 계기가 된다. 환상이 걷힌 자리에 불완전하지만 인간적인 '아버지 대리인' 기쿠지로와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기쿠지로가 마사오를 위로하며 손을 잡고 '천사의 종'을 선물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이 장면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상징적인 순간으로, 마사오가 이상화된 어머니로부터 벗어나 현실의 남성 부모 대리인과 동일시하며 건강한 관계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동시에 기쿠지로 자신도 어린 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따뜻한 돌봄과 연대를 마사오를 통해 경험하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치유해나간다. 처음 본 커플, 방랑 시인, 홀쭉이와 뚱뚱이 등을 만나며, 여름 자연 속 성장을 향한 제의적 의식을 마친다. 마사오는 이 여행을 통해 독립된 자아를 찾을 준비를 마치고, 기쿠지로 역시 성인으로서의 유년 시절에 남겨졌던 어머니의 외도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숙한 어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한다.
<기쿠지로의 여름>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히사이시 조의 OST 'Summer'이다. 'Summer'는 피아노와 현악기가 주를 이루는 곡으로, 듣는 이에게 아련한 향수와 함께 따스한 위로를 건네며 마치 마사오와 기쿠지로의 불완전한 여정을 온전히 감싸 안는 듯하다.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애잔하게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마사오의 순수한 동심과 기쿠지로의 비루함 뒤에 숨겨진 서툰 부성애, 그리고 두 인물 모두에게 존재하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상실감을 동시에 표현한다. 유쾌한 멜랑꼴리의 선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의 내면에서 공명하는 상실의 아픔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나는 작은 희망을 느낀다. 이 음악은 여름의 강렬함 뒤에 숨겨진 향수와 성장통을 어루만져 주는 영혼의 동반자로서, 영화가 가진 치유의 메시지를 극대화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문학 비평의 관점에서, <기쿠지로의 여름>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심리적 극복 과정을 '여름'이라는 시각적, 정서적 배경과 'Summer'라는 음악적 서사를 결합하여 한 편의 아름답고도 현실적인 동화로 구현해낸다. 마사오의 여정은 상실을 통해 현실을 직면하고, 기쿠지로라는 거울 같은 존재를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간접적으로 치유하는 상호적인 성장기다. 그 선율에 매료되어 제3자인 관객 역시 여름 여행을 통해 치유하게 되는 마력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