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것도 문화 비평이다

by 꿈꾸는 곰돌이

프롤로그: 이것도 문화 비평이다


"마르크스는 혁명이 세계사의 기관차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쩌면 사정은 그와는 아주 다를지 모른다. 아마 혁명은 이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인류가 비상 브레이크를 잡아당기는 행위일 것이다." ─ 발터 벤야민


‘세계’라는 열차의 종착지는 정말 ‘파국’인 걸까? 광기 어린 폭주가 위태롭게 이어지는 지금, 인류의 양심을 시험하는 아픈 문제들은 좀처럼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끔찍한 식민통치와 인종학살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수괴인 네타냐후는 유엔 연단에서 버젓이 연설을 이어간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으며,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귀환하며 노골적인 극우 정책과 제국주의적 탐욕을 드러낸다. 당장 시급한 기후 위기 문제도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해결은커녕 논의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유럽 전역에서는 극우의 주류화가 현실로 닥쳐오고 있고,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다른 서방 국가에 비해 극우화의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으나, 윤석열의 집권과 우경화 정책, 그리고 결정적으로 12.3 비상계엄 선포는 극우화의 가속페달을 맹렬히 밟았다. 비록 계엄 시도는 좌절되었지만, 아스팔트 극우의 부상은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고, 한때 보수를 표방했던 ‘국민의 힘’은 이미 극우 세력의 정당으로 변질되어 언제든 반격을 해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심어주고 있다.


그렇다. 우리 모두를 태운 이 ‘세계’라는 이름의 열차는 벤야민의 경고처럼 파국을 향해 폭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이성적 분석조차 허용하지 않을 만큼 기이하고 끔찍하며, 한편으로는 '당연한 것'처럼 우리에게 강요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그저 열차의 속도에 몸을 맡긴 채 침묵해도 괜찮을까? 나는 단연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대학 생활은 윤석열 집권이라는 악몽과 함께 시작되었다. 끔찍한 현실은 나를 자연스럽게 '운동권'으로 이끌었고,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조우했다.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세례를 받은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완전히 달라졌다. 마르크스를 시작으로 엥겔스, 레닌, 룩셈부르크 등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계승한 혁명가들의 책은 물론, 죄르지 루카치, 발터 벤야민, 테오도르 아도르노 등 마르크스 철학의 계승자들이 남긴 위대한 저작들을 탐독하며 나는 오롯이 세계를 해부하는 방법과 리얼리티를 익혀나갔다. 대학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좌파 서적과 학생 운동, 그리고 음주는 나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다. 그러던 중, 자연스럽게 '문화 비평'의 세계로 발을 들였다. 롤랑 바르트, 그리고 나의 영원한 멘토인 발터 벤야민 같은 좌파 비평가들의 저작은 물론, 결정적으로 이택광 교수님의 작업들이 나를 매료시켰다. 전공 수업에서 '장르 비평'이라 할 수 있는 '문학 비평'을 배웠지만, 문학은 현실의 특수한 반영에 머물 때가 많았고, 직접적으로 현실을 꿰뚫는 날카로움은 아쉬웠다. 진정한 비평은 현실의 특수한 반영을 넘어 현실 자체를 해부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바로 이때, 문화 비평의 역할은 더욱 막중해진다. 우리는 이 열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그리고 왜 이런 속도로 달리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단순히 창밖 풍경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열차의 엔진룸이 어떻게 가동되는지, 객실마다 어떤 위계와 불평등이 존재하는지를 해부해야 한다. 이택광 교수가 강조했듯, "문화비평이란 언제나 전체의 관점에서 개별 문화 현상들을 바라보는 방법론을 고수한다." 즉,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두운 지점’을 포착해야 하는 것이 바로 비평가의 임무다. 단순히 즐기고 소비되는 문화의 표피를 걷어내고, 그 안에 숨겨진 자본의 논리와 이데올로기를 밝혀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시대를 향해 비상 브레이크를 잡아당기는 첫 번째 행위가 아닐까?


나 역시, 이 열차에 탑승한 한 명의 ‘이대남’으로서 이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진보 진영에서는 '문제적 세대'로 간주되는 이십 대 남성들은 지난 21대 대선에서 네 명 중 세 명이 보수 표를 던질 만큼 표면상으로는 보수화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이 단순히 오른쪽 지지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더욱 급진적인 왼쪽으로, 혹은 파괴적인 에너지로도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런 또래 집단의 복잡한 심리를 알기에, 그 지점을 파고들어 문화 비평을 해보고자 한다. 죄르지 루카치의 말을 조금 변주하자면, 이십 대 초반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토끼'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마르크스주의라는 히말라야의 산맥 위에 서서, 이 차가운 산꼭대기에서 길어 올린 시선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문화적 풍경들을 재조립하려 한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의 정수인 변증법적 유물론이 핵심이지만, 다양한 사상가들의 견해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문화는 결코 정치나 경제와 분리된 자율적인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이 기계적으로 반영되는 곳도 아니다. 오히려 자본의 논리와 이데올로기가 가장 은밀하고 매력적인 형태로 스며드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나는 문화 속에 반영되는 은폐된 사회의 리얼리티를 발굴하고자 한다. 영화와 드라마뿐만 아니라 인터넷 밈과 유행어 등 유행하는 모든 것을 포착하려 한다. 그것을 단지 현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원리를 발본적으로 포착하는 것 말이다. 나는 여러 사상가들의 저작을 읽었지만, 스스로를 '비평가'라고 칭하기에는 아직 내 철학의 깊이가 너무나 얕음을 고백한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젊은 감각'이다. 그렇기에 이론적 깊이를 맹목적으로 좇기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대남으로서의 젊은 감각으로 문화 현상을 분석하고 그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고자 한다.


우리는 이 기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듯 착각하며 계속 달리고 있지만, 실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파국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익숙함이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문화적 기제들을 폭로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움직이는 힘의 실체를 밝혀내고자 한다. 작가로서, 그리고 혁명적 개인으로서 나는 침묵을 거부한다. 내 작은 목소리가 이 기차에 탄 당신에게 닿아, 창밖 풍경을 넘어 이 기차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함께 질문을 던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침묵하지 않을 때, 비로소 기차는 멈추지 않을까?


달리는 기차 위에서, 침묵은 없다. 이 책은 그 선언의 첫 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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