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포드, <수색자>
존 포드 감독의 1956년 작품 <수색자>는 서부극을 넘어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임에 틀림없다. 웅장하게 펼쳐진 모뉴먼트 밸리의 풍경과 존 웨인 특유의 강렬한 연기가 어우러져, '복수'라는 서부극의 전형적 이야기를 더없이 인상 깊게 풀어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연출과 각본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비평의 윤리'라는 렌즈를 통해 볼 때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안겨준다. 현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가자 지역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을 돌아보면, <수색자>는 우리로 하여금 불편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거울로 다가온다. 백인 정착민의 시선에서 인종 학살과 토지 약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재현하는 영화의 모습은, 지금 팔레스타인의 땅을 잠식하는 '정착자들'의 행태와 놀랍도록 닮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 에단 에드워즈는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다. 모든 것을 상실한 채 복수의 화신이 되어가는 그의 모습은, <택시 드라이버>의 '비클', <조커>의 '조커'에 앞선 '문제적 개인'의 선구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행적을 통해 인종주의와 식민주의에 오염된 서구 지배자들의 사고가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인디언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와 잔인함을 숨기지 않는다. 가족을 찾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후퇴하는 원주민에 대한 총격, 버팔로 떼에 대한 무분별한 사냥, 그리고 머리 가죽 벗기기 등은 단순한 개인적 복수심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다. 이 장면들은 '야만'으로 규정된 다른 존재를 폭력적으로 제거하며, 백인의 우월함을 확신했던 서구 식민주의 논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더욱이 존 웨인이 실제로 흑인 차별적 발언을 하고 매카시즘을 옹호하는 등 극우적이고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 역시, 그저 극 중 캐릭터의 한계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영화 속 인물의 세계관이 당대 사회 분위기와 뿌리 깊은 편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미국의 백인 정착민들이 원주민을 학살하고 문화를 파괴한 역사는 에단의 행동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이러한 모습은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고 그곳 주민들을 쫓아내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정의'라 내세우는 이스라엘의 정착자 논리와 소름 끼치도록 평행을 이룬다. 팔레스타인인들을 '없애야 할 장애물'로 바라보는 시선은 에단이 인디언을 대하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인디언에게 납치된 백인 여성 데비를 구출하는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 그러나 이 '구원' 과정 역시 폭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에단은 데비가 인디언과 함께 살며 그 문화에 익숙해진 것을 알게 되자, 그녀를 '오염된 타자'로 여기며 심지어 살해하려 한다. 이는 백인 여성의 정체성을 백인 남성의 시선과 필요에 따라 재규정하려는 가부장적 폭력일 뿐만 아니라, '순수한 백인 혈통'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당대 백인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순수성' 개념은, 오늘날 이스라엘 정착자들이 팔레스타인인의 존재와 역사를 아예 부정하고, 그 문화마저 지우려 하는 식민주의적 태도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데비의 구원은 그녀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백인 정착 사회가 자신의 지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내세운 명분에 가깝다. 영화는 '구원'이라는 미명 아래 숨겨진 식민주의적 통제와 차별의 이면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들뢰즈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라 말했지만, 그 말이 긍정적 맥락에서의 상상력 혁명으로 다가오기보다, 팔레스타인의 식민 지배와 인종 학살이라는 비극으로 현실화된 것은 아닐까. 사실 미국이라는 국가가 탄생하며 벌어진 원주민 학살 과정과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헤겔을 인용한 카를 마르크스의 말대로, "역사는 반복된다. 첫 번째는 비극, 두 번째는 소극(희극)으로"라는 문장이 섬뜩하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잘못된 역사를 인정하지 않으면 교훈을 얻지 못하고 결국 비슷한 비극이 되풀이되기에, 우리는 과거를 성찰해야 한다.
오늘날 다시 보는 <수색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저지르는 참혹한 현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전체를 옥죄는 식민 점령의 비극과 마주하게 한다. 영화 속 백인 정착민들이 자신의 '문명'과 '땅'을 지키기 위해 원주민을 위협으로 규정하고 폭력으로 내쫓으려 했던 장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국제사회의 비판 속에서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고 수많은 생명을 빼앗는 이스라엘의 현실과 고통스럽게 겹친다.
가자 전쟁의 참상은 '정당방위'라는 명분 아래 자행되는 인종 학살이며, 이는 마치 <수색자>에서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인디언들에게 자행된 폭력이 오늘날 다시 반복되는 듯 느껴진다.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시도는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비극이다. <수색자>는 이런 끔찍한 패턴을 서늘하게 드러내는 작품인 것이다.
<수색자>는 여전히 영화적 미학과 강한 서사를 지닌 명작이지만,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고통과 저항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무거우면서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예술 작품이 시대의 거울이라면, 이 영화는 서구 중심의 역사 서사에 가려져 있던 식민주의와 폭력의 본질을 드러내며, 지금도 계속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을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이 영화를 보며, 데비라는 인질 구출 작전에서 존 웨인으로 대표되는 서구 정복자들의 편이 아니라, 이들과 맞서 싸운 인디언의 편이 되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