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파멸의 이중주: <무뢰한>, 한국 느와르의 음울한 고전
느와르의 교과서적인 작품, 빌리 와일더의 <이중배상>은 치명적인 여인과 그녀에게 휘말린 남자에 관한 서사다. 느와르의 교과서가 되는 작품으로, 이후 팜므파탈(혹은 여성)에 의해 몰락(혹은 살인)하는 남성의 서사는 느와르의 고전적인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러한 특성 덕분에 페미니즘 비평가들에겐 다소 여성 혐오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 역시 21세기 한국을 무대로 현대의 ‘팜므파탈’ 신화를 거칠게 재해석하며, 우리 곁에 있는 또 다른 느와르 세계를 펼쳐 보인다. 냉혹하면서도 처연하게 그려지는 ‘비정한 형사’와 ‘살인 용의자의 애인’이라는 두 무뢰한의 얽힘, 그 불길한 사랑은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무뢰한>은 고전 느와르의 문법을 공들여 빚으면서도, 분명 자신만의 고집스러운 색깔을 갖고 있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예의도 없고, 붙잡을 데 없는 불량한 자’라는 ‘무뢰한’이라는 말은, 이 영화에서 모든 캐릭터를 꿰뚫는 묵직한 열쇠다. 살인범을 뒤쫓는 형사 정재곤(김남길)과 그가 쫓는 범인의 애인이자 룸살롱 마담 김혜경(전도연). 이들은 각자 살아남으려는 욕망 앞에서 도덕의 선을 서슴없이 허물어내며, 진짜 ‘무뢰한’의 얼굴을 조금씩 드러낸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쓴 감정과, 생존-직업이라는 냉정한 현실이 끊임없이 부딪히며, 두 인물의 관계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낯선 긴장감 위에 서 있다. 영화는 폭력적인 주제를 차가운 어조로 밀어붙이는 하드보일드 미학과, 멜로의 절망적인 열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 얼음장 같은 균형 위에서 느와르와 멜로가 음험하게, 그러나 매혹적으로 뒤섞인다.
무엇보다 김혜경이라는 인물이 흥미롭다. 느와르 세계의 영원한 화두, 팜므파탈을 새롭게 조명한다. <이중배상>의 필리스가 욕망에 이끌린 마녀였다면, <무뢰한> 속 혜경은 자신의 삶을 간신히 방어하며, 고통과 체념 사이를 오간다. 상황에 휩쓸리는 듯 보이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스스로 길을 선택한다. 그녀는 한 남자의 파멸을 부추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혜경은 재곤과 함께 바닥 인생의 고통을 함께 견디며, 서로에게 마지막 남은 안식처가 된다. 종종 비평가들은 클래식한 느와르 속 팜므파탈이 남성 중심적 시선에 갇혀 있다고 지적하지만, <무뢰한>은 이와 조금 다르다. 혜경은 사랑을 향한 애처로운 갈망과, 결국은 아무것도 손에 쥘 수 없다는 허무주의적 절망이 그녀를 이루고 있다. 혜경의 흔들리는 시선, 한숨과 눈빛, 그 모든 것이 관객의 마음을 길게 흔든다.
영화의 공간에는 끝도 없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룸살롱의 공기, 텁텁하고 뿌연 도시의 어두운 뒷골목, 그 안에서 인물들의 마음은 어둡고 끈적한 감정의 타르에 잠긴다. 절제된 미장센과 건조한 연출, 그리고 인물의 미묘한 표정이 얽히며 한국 사회의 음습한 이면이 흑백 사진처럼 선명하게 드러난다. 선과 악, 사랑과 거짓, 욕망과 체념이 한 덩어리로 엉겨붙는 이 도덕적 회색지대는, 느와르 장르 특유의 본질적 질문―‘사람은 무엇으로 구원받는가’―를 저벅저벅 다시 묻는다.
장르로 돌아가자면, <무뢰한>은 팜므파탈과 몰락한 남자라는 고전적 서사를 가져오되, 여기에 한국적 정서와 현실의 씁쓸함을 절묘하게 배합한다. 정재곤과 김혜경의 온도차 나는 감정선은 사랑이란 감정이 지닌 이중성과, 그 뒤에 가려진 인간의 고독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여성 캐릭터의 묘사조차, 이 영화를 밋밋한 장르물에서 한 걸음 끌어올린다. 치밀한 이야기 구조, 인물의 깊이, 그리고 끝내 음울하고 아름다운 공기로 감싼 한 편의 <무뢰한>. 한국 느와르의 오늘을 말할 때, 오랫동안 이 영화가 계속 거론될 이유는 충분하다. <낙원의 밤>, <마이네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길복순> 등 그 이후에도 여러 한국형 느와르 작품이 나왔지만, 장르적 충실함은 물론 완성도에서 하나 같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