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티 담론의 정치학

그 분노는 맞고, 그 대상은 틀리다

by 꿈꾸는 곰돌이

진보 진영에서는 일명 이준석을 지지하는 '이대남'(이찍남)이 주된 타켓층이라면, 우파 진영의 공세는 '영포티(Young Forty)' 세대를 향한다. 이들은 마치 영포티 세대가 한 세대 위인 86세대와 함께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적폐'로 자리매김하는 듯한 담론을 펼친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 아래에는 치밀한 세대 갈등 조장과 우파들의 정치 공작이 숨겨져 있으며, 우리는 정치적 공세의 장에서 '영포티' 담론을 적극적으로 방어해야 한다. 이는 계급 분열을 야기하는 허구적 세대론이 반동적인 맥락에서 공격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전히 우파적인 것만은 아닌데, 기본적으로 젊은 세대들이 기득권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아주 나쁜 것으로만 보기엔 곤란하다. 즉, 분노는 맞으나, 영포티가 마치 사회악이라는 대상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우선, '영포티'로 지칭되는 집단에 대한 규정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Young'과 'Forty(40대)'를 결합한 이 신조어는 젊은 감각을 유지하며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40대 남성을 지칭한다.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될 때는 자기 관리와 변화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나타낼 수 있으나, 이 단어는 대부분 부정적이고 비하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소위 '스윗영포티'라 하여, 젊은 여성들에게 추근거리며 도덕적으로는 민주당을 지지하고 선민의식을 지녔으며 2030 남성을 '요즘것들'로 취급한다고 비하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미지 정치의 이면에는 사회의 병적인 욕망과 우파적 계급 분열 의도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복합적인 계급 관계와 사회적 위치를 단지 '영포티'라는 피상적인 세대 용어로 축소하여, 그들의 주체적 존재 양식을 '사물화'된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관계와 사회 구조가 마치 객관적인 사물처럼 취급되는 현상과 궤를 같이 한다.

이 담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세대론'이라는 본질에 있다. 특정 집단을 구분함에 있어 세대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계급이다. '영포티론'은 재벌 3세와 같은 부르주아 계급부터 하층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40대들을 단순히 '나이'라는 기준으로 묶어 프레임화한다. 이는 계급을 초월한 세대 간의 공통점이 있다는 허위적 인식을 주입하려는 시도이다. 세대의 특징을 피상적으로 프레임화하여 '세대론'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만 아니라, 총체성(Totality)을 상실한 파편적 시각이다. 루카치에게 총체성은 개별 현상을 전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방법론적 원칙이었다. 이러한 세대론적 접근은 사회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고, 세대 분열이라는 허구적 대립을 조장하여 궁극적으로 계급 의식의 발전을 저해하기에 마땅히 비판되어야 한다.

'영포티' 세대론은 계급 갈라치기 논리 속에서 영포티가 '선민의식'을 갖고 있다는 비난으로 확장된다. 우파들이 영포티를 비난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들의 용어로 '선민의식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선민의식'은 개념적으로 매우 모호하다. 이는 주로 민주당 지지자로서 상대적으로 우파적인 젊은 세대들을 훈계한다는 태도를 지칭한다. 민주당 지지자, 특히 특정 연령대 지지층에게 '선민의식'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행위는 대단히 교활한 우파적 공격 담론이다. 이는 그 자체로 개혁 염원 대중의 소망을 위선으로 프레임화하는 공격이다. 이런 프레임은 비판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사회적 문제 제기나 약자에 대한 공감대를 표하는 진보적 입장을 가진 이들에게 집중되는 이 비난은, 상대방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의 '태도'나 '마음가짐'을 문제 삼아 비판의 정당성을 훼손하려 한다. "너희는 잘난 척하는 엘리트들이니까, 너희 주장은 아무리 그럴싸해도 순수하지 않아!"라고 말함으로써, 정책적 비전이나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 자체를 봉쇄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 이는 진보를 염원하는 대중의 사회 개혁 목소리를 '고고한 위선'으로 매도하고, 지식인들의 비판적 역할을 깎아내리며,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한 '감정 싸움'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선민의식' 공격은 계급적 연대를 약화시키는 우파적 전략의 핵심 기제이다. 진보적 가치를 주장하는 영포티들을 '일반 대중과는 동떨어진 특권층'으로 규정함으로써, 대중과의 연대를 가로막으며 젊은 세대와는 괴리된 이해관계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민주당 지지층 중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고학력자들이 많다는 통계가 나올 때마다, '선민의식' 프레임은 더욱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그들이 너희를 이해한다고? 천만에,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잘난 척하는 거야!"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심는 효과를 낳는다. 결국 계급적 갈등을 세대 갈등이나 특정 계층에 대한 '감정적 반감'으로 치환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으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기제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진정한 연대와 공동의 노력을 저해하고, '저들을 증오하라'는 식의 대립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영포티들에게 지저분한 공격을 가해지는 것 역시 문제다. 2030의 젊은 여성들에게 일명 '추근'거리는 것을 문제라고 하는데 이것은 명확한 근거 없이 영포티 세대에게 허위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먀, 여성이 거부의사를 표했으면 모를까 단지 추근거리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여기는 보수적 견해를 같이 한다. 주작인지 의심되는 영포티들의 일명 '망상 연애'를 두고 조리돌림하는 것 역시 비겁하며, 겉으로는 진보적인척 여성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젊은 여성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진보적인 선민의식을 재단하는 굉장히 반동적인 공격이다. 첫째로 이런 공격은 진보 성향의 대중을 조롱하는 프레임이며, 둘째로는 나이 차가 많은 타인에게 성애적 감정을 가지면 안된다는 보수적 견해 역시 동반한다.

따라서 이러한 '선민의식' 프레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방어는 필수적이다. 우리가 이 허위의식의 프레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비판적 사유의 공간은 위축되고,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영포티' 담론이 조장하는 세대 혐오와 '선민의식'이라는 비난 뒤에 숨겨진 계급 갈라치기, 그리고 권력 유지를 위한 교활한 속셈을 명명백백히 드러내야 한다. 누가 진정으로 '계산'만을 일삼으며 사유를 회피하는지, 누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아닌 자신들의 특권만을 옹호하는지 역으로 질문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담론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고,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여는 시작점이다. 피지배계급은 이러한 우파적 프레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파편적 분열을 넘어선 총체적 이해와 연대만이 사회의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월, 수, 금, 일 연재
이전 09화'꾸안꾸' 미학의 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