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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나가'의 정치학
축구는 정치적이다. 세계 최고 인기를 자랑하는 스포츠인 만큼, 특히 광범위한 노동계급이 열광하는 대중문화의 정점에 서 있다. 단 한 경기의 승패는 해당 팀과 지역에 소속감을 느끼는 노동계급의 사기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축구는 표면적으로는 정치와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문화라는 거대한 상부구조에 속하며, 그 자체로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라 단언할 수 있다. 그저 '그라운드 위에서 벌어지는 공놀이'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축구의 본질적 의미를 간과하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한국 축구계를 뜨겁게 달구는 '정몽규'와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대중의 분노는 불필요한 가십거리가 아니라, 심도 깊게 주목해야 할 문화적 현상이다. 이 분노는 축구계 내부의 비리와 부패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힌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축구협회를 향한 날 선 비판에 그치지 않고, 이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적인 구조에 대한 분노로 확장하여 문제에 더 깊이 천착해야 할 것이다.
찬란했던 2022 카타르 월드컵 전후로 국가대표팀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했지만, 이후 연이은 경기 매진 실패는 팬들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하게 했다. 슈퍼스타 손흥민은 여전히 건재하며, K리그나 해외 축구에 대한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독 국가대표팀 경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현저히 줄어들고 분노로 바뀌었다는 현상은 면밀한 분석을 요구한다. 이처럼 급작스럽게 돌아선 대중의 마음 뒤에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 대중의 뇌리에는 이미 선명한 '공공의 적'들이 각인되어 버렸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홍명보 감독,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축구협회가 바로 그 대상이다. 축구 팬들의 날카로운 비판과 분노는 경기장 곳곳에서 "정몽규 나가!"라는 구호로 터져 나오며 강렬한 메아리를 이룬다. 이는 카타르 월드컵 이후 대표팀 경기를 향한 팬들의 반응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를 확고히 뒷받침한다. 이제 국민들의 국가대표팀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은 끝났다. 대중은 그동안 억눌려 있던 한국 축구를 둘러싼 '진실'을 꿰뚫어 보려 한다. 이 절규 같은 외침 속에는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기득권에 대한, 재벌에 대한, 그리고 불공정한 시스템에 대한 은밀하면서도 강력한 계급적 울분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축구를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인간의 잠재된 욕망을 분출하는 은유이자, 동기, 그리고 매개로서 여러 층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기호 체계"로 독해했다. 특히 프로이트 이론을 빌려 축구를 "억압된 욕망의 정신병리 현상"으로 파악하며, 관중의 시선을 '관음화된' 행위로 분석하기도 했다. 즉, 팬들은 경기장 안팎에서 펼쳐지는 드라마를 통해 대리 만족을 얻거나, 승리의 환희를 맛보며 무의식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더 이상 단순한 관음증적 즐거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과거에는 애국심이라는 허위의식이나 스타 플레이어들의 화려한 활약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며 억압된 욕망을 해소하곤 했지만, 이제 팬들은 경기장 밖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와 불공정의 배후를 냉철하게 파헤치려 한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이후 클린스만 감독 선임과 사퇴, 그리고 홍명보 당시 울산 현대 감독이 국가대표 축구 감독에 오르는 과정에서 축구협회의 비민주적인 운영 방식과 끊이지 않는 잡음은 대중에게 생생히 목격되었다. 이처럼 '그들만의 리그'처럼 작동하는 축구 행정에 대한 환멸은 대중이 축구 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터뜨리는 결정적인 지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셸 푸코의 권력 이론을 소환한다. 푸코에게 권력은 단순히 개인을 억압하는 것을 넘어, '지식'과 '담론'을 통해 은밀히 생산되고 행사된다고 역설한다. 푸코의 권력 이론은 약점이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는 권력이 단지 국가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분포해있으며, 권력이 고정된 사물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관계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축구협회는 자신들만의 전문성과 경험, 오랜 전통을 방패 삼아 '한국 축구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지배적인 담론을 구축해왔다. 이 담론은 특정 인사들의 권력과 결합하며 그들의 결정을 정당화하고, 외부 비판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축구협회는 자신들의 '합리적인' 판단과 '전문적인' 시각을 강조하며 대중의 우려를 잠재우려 했다. 하지만 축구협회를 이끄는 소위 축구 엘리트들의 얕은 꼼수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정보의 대중화가 큰 역할을 했다. 유튜브와 같은 뉴미디어를 통해 여러 축구 전문가들이 홍명보 선임 과정의 불공정함을 폭로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턱이 높았던 축구계라는 견고한 성벽을 허물어 준 '축구 커뮤니테이커'들 덕분에, 홍명보 선임과 정몽규 축협의 문제점이 여실히 폭로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축구협회는 국내 최고의 축구 해설위원인 한준희를 부회장으로 선임하며 여론을 무마하려는 방패막이로 쓰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중은 그 기만을 알아채며, 분노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그 결과 2025년 이후 대표팀 평가전 만원 관중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몽규 나가'라는 구호는 대중의 분노이자 정치적 발화이다. 이는 매우 정치적인 선언이며, 그 지향점이 전적으로 옳다. 정치권에서조차 축구팬들의 분노에 주목하는 이유 역시 이 대중적 분노가 결코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현상을 비평하는 비평가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역할은 무엇인가? 바로 경계를 잇는 일이다. '정몽규 나가'라는 외침을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 담론과 비민주성을 폭로하는 더 큰 서사와 연결하는 것이다. 한국 축구협회에 대한 비판을 넘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한 권력 구조와 기득권층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상징하는 강력한 구호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제 대중은 축구를 둘러싼 '예외상태'의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터트리고 있다. 축구는 더 이상 '3S정책'의 일환으로서 대중을 길들이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대중은 축구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직시하고 비판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형성하는 강력한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정몽규를 향한 분노가 사회 전반에 이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