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성 빚투 논란: 혈연주의가 가미된 도덕주의의 부조리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하고 돌아온 LA다져스 김혜성 선수. 환대받아 마땅한 귀국 현장에 뜻밖의 손님이 나타나 다시금 이른바 ‘빚투’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손님은 야구팬들에게 ‘김선생’으로 알려진 채권자로, 김혜성 선수의 부친 채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나섰다. 김혜성 선수의 부친은 16년 전 채권자에게 1억 2천만 원을 빌렸으나, 이를 성실히 갚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채권자인 ‘김선생’은 2021년부터 야구장과 공공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켓 시위를 이어왔다. 심지어 2024년에는 수위높은 문구의 현수막을 들고 경기장 내부까지 진입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벌여 고발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김혜성 선수의 부친이 보인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채권자의 절박한 심정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김혜성 선수와 부친 측은 채무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며, 공개적으로 변제에 합의했다고 하니,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이 일련의 소동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두 가지 이데올로기, 즉 혈연주의와 겉핥기식 도덕주의를 포착할 수 있다.
먼저 혈연주의, 이것은 엄밀히 따지자면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연정성에 있다. 부모의 채무는 당연히 부모 개인의 법적 책임이다. 독립된 성인에게 부모의 빚을 '도의적으로' 갚으라고 강요하는 행위는,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질서조차 무시하는 반동적인 연좌제적 사고의 발현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각자가 법적·경제적 주체로서 자신의 행위에 책임지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혈연의 이름 아래, 타인의 채무를 무조건 떠넘기려는 압력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강고한 혈연주의-'가족은 하나다'라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중의 이러한 분노와 요구는 복잡한 사회 문제를 손쉬운 선악 구도로 판단하려는 도덕주의적 편향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중의 분노가 언제나 도덕주의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정유라'나 '조민' 사태에 대한 분노는 엄연히 계급적 분노였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일탈을 넘어, 그들이 누렸던 '특권'과 그로 인해 발생한 '불공정'이라는 계급적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체제 내의 구조적 불평등과 계층 사다리가 무너지는 현실에 대한 좌절감이 그 기저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혜성 선수에게 향한 분노는 이러한 계급적 성찰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를 향한 비난은 대개 "돈 잘 버는 스포츠 스타가 가족 빚도 해결 못 하느냐"는 식의 도의적 목소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분명 스포츠 선수는 노동계급이다. 메시나 호날두처럼, 한 시대를 풍미해 이른바 '팀보다 위대한 선수'가 되어 구단과 리그, 축구계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는 이상, 고임금 노동자에 불과하다(고용 형태가 어떻든 말이다). 노동귀족이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듯, 스포츠 스타가 노동귀족인 것은 아니다. 김혜성 선수의 빛나는 성공은 오로지 개인의 피땀 어린 노력과 재능의 결과인데도 불구하고, 대중은 그의 스포츠 노동자로서의 가치보다는,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이라는 피상적인 이미지에 감정을 이입하여 그의 도의를 운운한다. 그러니 김혜성에 대한 공격은 부당하다. 정확히 말해, 그의 부친 채무는 김혜성 선수 개인의 책임 범주를 명백히 벗어난 일이다. 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도의적 책임'을 강요하는 것은 혈연주의가 침투된 도덕주의의 맹점이다. 김혜성 선수와 그의 부친은 별개의 인물이며, 선수에 대한 조롱과 비난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이러한 도덕주의적 공격이 통하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스타'라는 함정에 있다.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 중 인기의 정점에 오른 스타는 일반 선수나 동료에 비해 많은 부를 누리지만, 그들은 엄연히 대중 문화의 먹잇감이다. 연애설을 비롯해 늘 사생활을 감시당하며 한치의 허점이라도 보이면 비난받는다. 이들은 겉으로는 막대한 부를 누리지만, 체제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돌리는, 돈 많은 희생양과 같다. 연애설이 터지면 소속사의 주가가 떨어지는 아이돌 스타들, 피해자임에도 도덕적 비난을 받았던 손흥민, 심지어 외도와 마약이라는, 자본주의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도덕'을 저질러 피해자임에도 희생당했던 이선균까지. 스타의 부와 명성은 자본주의의 방패막이에 대한 대가이나, 등가교환이라 할 수 없다.
한편, 채권자인 ‘김선생’이 피켓 시위까지 불사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 행위 역시 단순히 도덕적 잣대로만 비난할 일이 아니다. 법적인 절차만으로는 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어려운 현실, 혹은 개인이 가진 마지막 저항 수단이 폭로와 공론화밖에 없는 자본주의적 현실이 빚어낸 비극적 상황으로 이해해야 한다. 김선생의 행동은 비록 사적인 복수의 형태를 띠었을지라도, 돈의 힘 앞에서 약자가 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자, 사회적 관심을 통해 문제 해결을 모색하려는 절박한 몸부림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즉, 김혜성 선수 '빚투' 논란은 한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치부하기엔 너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혈연'이라는 이름으로 법적·도의적 책임을 한 개인에게 전가하려는 대중의 집단 심리, 그리고 채권자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 구조는 결국 자본주의가 빚어낸 총체적인 문제의 한 단면이다. 그 해결책은 쉬운 도덕적 단죄가 아니다. 여러 스타들의 '빚투'가 반복되는 것처럼, 혈연주의가 가미된 도덕주의가 어떻게 스타를 공격하는지 보여준 김혜성 부친 '빚투' 논란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우리는 채무 관계라는 얼룩진 이 시스템의 본질을 꿰뚫고, 진정한 사회적 연대와 해방을 모색하는 비판적 사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