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무식과 '윤버지': 한국 사회의 스트롱맨 판타지
2010년대 이후 세계 정치 지형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강력한 지도자, 이른바 '스트롱맨'들이 부상했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중반까지 '제3의 길' 노선을 걷던 토니 블레어나 게르하르트 슈뢰더 같은 중도 자유주의자들은 젊고, 부드러우며, 합리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판도가 바뀌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을 시작으로,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 조르자 멜로니나 자이르 보우소나루 같은 스트롱맨 타입의 지도자들이 연이어 권력을 거머쥐었다. 이는 반서방 진영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원조 스트롱맨이라 할 수 있는 푸틴은 여전히 건재하고, 중국 역시 국수주의 성향이 강한 시진핑이 집권을 공고히 하고 있다. 집권에 이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리 르펜, 자라 바겐크네히트처럼 강력한 '스트롱우먼'이 부상하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흐름이다.
이러한 전 세계적 흐름은 한국에서도 예외 없이 이어졌다. 19대 대선에서 온화한 이미지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지만, 이후 20대 대선은 사뭇 다른 양상을 띠었다. '어퍼컷 세리머니'로 검찰 탄압을 견뎌낸 강한 스트롱맨 이미지를 가진 윤석열과 '전투형 노무현'을 내세운 이재명 후보가 맞붙었다. 분명 이재명 후보가 19대 대선 경선 시절과 달리 '우경화'하면서도 강경한 이미지를 유지했던 것 역시, 이러한 스트롱맨 담론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한국 사회는 복잡한 문제를 단칼에 정리하고, 흔들리는 질서에 강력한 규율을 세울 수 있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를 간절히 원해왔다. 이 무의식적인 갈망은 종종 대중문화 속 인물을 통해 투영되는데, 드라마 <카지노>의 차무식은 바로 그 판타지의 정점에 서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이러한 '판타지 리더십'의 발현을 시도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례는 그 기대와 현실의 간극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특히 윤석열 지지층 사이에서 불렸던 '윤버지'라는 별명은 아첨을 넘어, 강력한 지도자를 향한 갈망이 얼마나 깊은 심리적 층위에 뿌리박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그 별명이 비아냥거리기 위해서도 사용되었다는 이중성마저, '아버지'라는 이미지가 가진 복합적인 권위를 드러낸다.
정신분석학을 빌려오자면,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 '아버지'란 혈연을 넘어 권위, 금기, 그리고 사회적 질서를 대표하는 원초적인 상징이다. 혼돈 속에서 안정과 보호를 갈구하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할 때, 강력한 아버지상은 대중에게 무의식적인 안정감을 제공한다. 자크 라캉은 이러한 아버지의 기능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확장하여 설명한다. 이는 개인이 상징계로 진입하는 문턱이자, 사회의 법과 질서, 언어의 규칙을 각인시키는 핵심적인 표상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강력한 검찰총장'이라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윤버지'로 불리던 시절, 대중이 그 별명에서 희망했던 것은 어쩌면 복잡한 사회적 갈등과 무력감 속에서 길을 제시하고, 명확한 법과 원칙으로 흔들림 없는 질서를 세워줄 '아버지의 이름'으로서의 강력한 주권자였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소망하는 스트롱맨, 즉 '아버지'의 캐릭터상은 대중문화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카지노>의 차무식은 이러한 판타지적 아버지상을 스크린 위에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뻔한 오락 드라마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의 엄청난 흥행은 최민식이 연기한 '차무식'이라는 압도적인 캐릭터성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었다. 필리핀이라는 낯선 땅에서 맨주먹으로 시작하여 거대한 카지노 제국을 건설한 차무식은 폭력과 협박, 때로는 유려한 언변과 압도적인 통찰력으로 조직을 장악한다. "내 식구는 내가 챙긴다"는 얼핏 의리 있어 보이는 태도는 그의 권위와 카리스마를 더욱 강화한다. 그는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의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보여
주는 냉철한 판단력과 실행력은 대중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후보 시절과 임기 초기 윤석열의 리더십은 어떠했는가? '검사 출신'이라는 배경에서 "권력에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하며 '법과 원칙'을 앞세운 강경한 이미지는 분명 차무식이 연상시키는 '결단력 있는 스트롱맨', 즉 '윤버지'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게 했다. '윤버지'라는 별명 속에는 아첨을 넘어, 아버지와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갈망하는 지지자들의 염원이 깊이 스며 있었을 것이다. '정의 실현'이라는 명분을 전면에 내세워 기존의 정치 문법을 거부하고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 또한, 칼 슈미트적 '주권자'의 역할, 즉 예외 상황에 대한 결정권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려는 시도와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이러한 리더십은 판타지처럼 작동하지 않았다. 차무식이 폭력과 위계로 만들어낸 질서가 그의 카지노 왕국에서는 효력을 발휘했지만, 대중의 분노는 '윤버지'의 시도를 여지없이 좌절시켰다.
'아버지의 이름'이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던 법과 질서는 오히려 '예외 상태의 정상화'라는 비판에 직면하며 권위가 약화되었고, 라캉적 의미에서 상징계적 질서를 확고히 세우기보다 기존의 상징계를 혼란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후는 극 중 차무식의 허무한 결말과 섬뜩하게 겹쳐 보인다. 작중 감정적인 성급한 판단으로 권력을 잃고, 부하에게 배신당해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 차무식처럼, 비상대권을 꿈꾸며 일으킨 비상계엄은 시민들의 용기와 야당의 빠른 대처로 좌절되고 만다. 결국 믿었던 부하들의 증언에 힘입어 그의 내란 시도가 인정되어 탄핵당하고 말았다.
화무십일홍. 젊음이나 권력은 한때에 불과하다는 이 말은 <카지노> 초반 차무식이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작중 주제이기도 한 이 말은 비상대권으로 영원한 붉음을 노린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도 적용되었다. 광장에 모인 대중의 힘으로 좌절시킨 화무십일홍이지만, 그의 비상계엄 시도는 공식 정치의 우경화를 불러일으켰다. 그렇다면 지지기반이 단단해진 극우의 '아버지'가 집권한다면, 불행하게도 영원한 붉음으로 이어질 것 같아 두렵다. 영원한 붉음으로 광장이 피로 얼룩지지 않으려면, 극우의 아버지의 부상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