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 영포티 발언에 숨겨진 성의 권력
친민주당 유튜버 중 양대산맥이라고 불리는 이동형 작가의 '영포티' 발언이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우리(영포티)는 너희(이대남)보다 섹스를 100배 더 했다."는 무척이나 유치하기 그지없는 발언인데, 이를 두고 일명 '긁힌' 디시와 펨코 등 우파 성향의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동형 작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니, 언론에서 다루며 논란이 커지는 듯하다.
이 발언이 옳냐, 그르냐의 여부를 두고 이어지는 정치 토론은 까다롭다. 이동형 씨의 발언은 유치하며, 더 나아가 정치적으로는 세대론적 발언이다. 세대론은 일반화의 오류는 물론, 그보다 심각한 정치적 약점이 있다. 이 사회의 발본적인 문제를 계급이 아닌 세대로 본다는 점에서, 인문좌파의 시각으로서 동의할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동형 씨의 발언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세대론보다 부차적인 '섹스'에 있다. 이동형 씨 발언의 전제는 40대 진보적인 영포티가 이대남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지점은 우월의 기준을 '성관계'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발언의 파급력에 주목해보면 새로운 문화 비평적 담론을 포착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의 렌즈를 빌려와보자면,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행동과 사고를 무의식적 성적 욕동, 즉 리비도(libido)의 발현과 억압의 관계로 설명한다. 이동형 씨의 발언에서 '성관계 100배'라는 표현은 기성세대의 억압된 혹은 과시하려는 성적 리비도가 발화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사회가 개인의 원초적 성욕을 억압하고 통제함으로써 문명이 형성된다고 보았지만, 이 억압된 리비도는 결코 소멸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이동형 씨의 발언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원초적인 '성적 우월감'을 자극적인 형태로 표출함으로써, 발언자 자신의 무의식적 욕구를 해소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왜 '우월함'의 지표로 하필 '성관계 횟수'가 호출되었는가이다. 유치하다고 치부하기 쉽지만,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성적 능력이야말로 개인의 자존감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나아가 생물학적 우월성과 연결되는 깊은 무의식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게 '너희보다 우리가 더 성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메시지는 단순히 팩트 폭격이 아니라, 그들의 '남성성'과 '욕망' 자체를 부정하며 자존감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일종의 상징적 거세의 협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20대 남성들이 이 발언에 '긁혔다'고 표현되는 현상은, 프로이트가 말한 자아가 이드의 원초적 욕망과 초자아의 사회적 금지 사이에서 겪는 불안과 유사하다. 즉, 사회적 억압으로 인해 성적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젊은 남성들은 이 발언을 통해 무의식적인 성적 열등감을 자극받게 되며, 이는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로 표출될 수 있는 것이다.
미셸 푸코는 프로이트의 성 담론이 서구 사회에서 성을 해방시키기보다, 오히려 성을 '말하게 함으로써' 통제하고 규정하는 권력의 메커니즘을 생산했다고 비판한다. 푸코는 그의 저서 <성의 역사>에서 유물론적으로 성에 대해 접근한다. 이동형 씨의 발언, 즉 '섹스 100배'라는 발언은 '성적 능력'과 '성적 경험'이라는 담론 자체가 어떻게 권력의 도구로 작동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근대 사회가 일차원적으로 성을 억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을 끊임없이 말하고 분석하고 분류하며 규율화했다고 주장한다. 성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을, 유능과 무능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 이동형 씨의 발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섹스'를 통해 세대 간의 '규율적 차이'를 만들고, 이를 권력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40대 진보를 '섹스를 많이 한 유능한 주체'로, 20대 남성을 '섹스를 못 한 무능한 주체'로 위치시키며, 특정 세대가 더 많은 성적 자본을 축적했음을 과시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성적 우월성'이 사회적, 정치적 우위를 점하는 일종의 지배 담론으로 기능하는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특히 푸코는 '생명 권력' 개념을 통해 국가나 권력이 인구의 삶 자체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이때 '성'은 인구의 생식과 재생산을 규율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이동형 씨의 발언은 개인의 성생활 영역으로 보였던 '성관계 횟수'를 세대 간 우열을 가리는 공적인 지표로 끌어올리면서, 젊은 세대의 '성적 능력'을 공론장에 올린다. 이는 젊은 세대가 더 많은 성적 활동을 해야 한다는 '규범적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그들의 성적 박탈감을 권력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동형 씨의 발언의 근원적인 문제는 이러한 성관계의 우월을 자랑하는 것이 환원주의적이란 것이다. 말 그대로 섹스가 권력이며, 섹스를 더 많이 한 우리는 너희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은 "권력을 가진 우리가 너희보다 낫다"는 우파적 인식과 맞닿아있다. 단지 유명한 셀럽을 넘어, 말 그대로 민주당 지지 성향의 시청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인플루언서가 한 발언에는 (비록 지배계급의 차애 정당일지라도 개혁을 외치는) 민주당의 가치와는 다른 우파적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물론, 우익 커뮤니티에서 가하는 이동형 씨에 대한 공격에 합세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동형 씨의 인식 자체가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성인지 감수성 같이 거창한 말 없이도, 너무나 꼰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