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병대 판타지와 현실

해병문학의 역겨운 '리얼리티'

by 꿈꾸는 곰돌이

대한민국 해병대 판타지와 현실: 해병문학의 역겨운 '리얼리티'


대한민국 사회에서 해병대가 지닌 아우라는 특별하다. '무적 해병',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거대한 신화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의 서사에 기대어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치밀하게 직조된 판타지다. 이는 분명 국방부의 노련한 프로파간다 덕분에 해병대가 강력한 남성성과 국가 수호의 상징으로 단단히 자리 잡게 된 결과다.

하지만 포장된 신화의 이면에는 추악한 그림자가 늘 존재했다. 강인함이라는 이름 아래 은폐된 군대 내 부조리가 하나씩 알려지며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해병대 특유의 경직된 기수 문화와 외부에서는 과하게 비칠 수 있는 자부심은 때때로 대중에게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거만한 집단으로 비치기도 했다. '개병대'라는 비하적 은어가 생겨난 것도 여기에 있다. '개'라는 접두어가 내포한 비하적 의미처럼, 이는 대중의 의식 속에 각인된 해병대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럼에도 제국주의적 동력학에 의해 군대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필요한 이 사회에서 해병대는 공식적으로 '개병대'가 아닌 '귀신 잡는 해병대'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해병대 신화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하위문화가 인터넷 공간에 등장했으니, 그것이 바로 '해병문학'이다. 해병문학은 해병대를 역겨울 정도로 기괴하게 조롱하는 일련의 텍스트들을 일컫는다. 이 기이한 현상은 인터넷 키치 문화에 뿌리를 두고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 억압된 남성성, 그리고 금기시된 목소리들이 뒤엉켜 분출되는 양상을 보인다. 해병대라는 군 조직에 내재된 부조리와 폭력을, 역설적으로 가장 역겹고 불쾌한 방식으로 재현하며 해체하려는 급진적인 시도인 것이다. 단순한 인터넷 커뮤니티 놀이로 치부하기에는 그 역겨움 속에 스며든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리얼리즘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해병문학이 단순한 우발적 조롱을 넘어 사회적 병폐를 고발하기도 한다는 뜻이다.

해병문학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바로 '역겨움의 미학'이다. 인분을 먹고, 성적 가혹 행위를 자행하며, 기괴한 의식에 매몰되는 등의 극단적이고도 혐오스러운 묘사는 독자에게 노골적인 불쾌감을 유발한다. 언뜻 보면 원색적인 조롱으로만 읽힐 수 있는 이러한 표현 방식은, 현실의 해병대 내부에 존재한다고 알려진 폭력과 부조리의 잔혹성을 역설적으로 부각하는 장치가 된다. 가령 '새끼 기열'과 같은 내부 용어를 기괴하게 변형하는 것은 외부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군대의 폐쇄성을 상징하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비상식적인 일들을 암시하는 일종의 '시뮬라크르적 재현'이다. 실제보다 더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통해 해병문학은 기존 권위가 꽁꽁 숨기려던 추악한 현실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발가벗기고 있다. 현실의 부조리가 만들어낸 시뮬라크르적 이미지들을 다시금 더욱 과장된 시뮬라크르로 재창조함으로써, 해병문학은 오히려 그 기저에 깔린 현실을 해부하는 역설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로 디시인사이드 '해병대 갤러리'를 비롯한 남초 커뮤니티에서 해병문학을 생산하고 향유하는 이들은 대다수 젊은 남성으로 보인다. 이들은 딱히 정치적으로 급진적이거나 페미니즘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해병대를 조롱하는 과정에서 게이를 비하하는 표현이 노골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해병문학은 '상남자 집단'을 표방하는 해병대를 '남성 간의 성관계를 즐기는 게이 집단'으로 묘사하며 비틀고 있다. 이렇다 보니 공식적인 담론보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주로 다루어지며, 페미니스트나 진보적 인사들 또한 해병문학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병문학에서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남성성 상징을 전복하려는 시도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바로 여기에서 해병문학의 독특한 정치성을 찾을 수 있다. 해병대는 '대한민국 남아라면 한 번쯤 가봐야 할' 강력하고 통일된 남성 집단의 표상으로 군림해왔다. 하지만 해병문학 속 해병대원들은 강인함의 상징 대신, 병적으로 뒤틀린 성적 행위의 주체이거나 대상이 되며, 기이한 집단주의에 매몰된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이는 '군대'와 '해병대'라는 이름 아래 덧씌워진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스트롱맨 판타지'가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폭로하는 급진적인 해체 작업이다. 군사 문화가 숭배하는 '강한 남성'의 이미지를 역겹고 취약한 존재로 변모시킴으로써, 해병문학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폭력적인 남성성이 실제로는 얼마나 병리적이고 하찮은가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는 젠더 역할을 고정시키는 사회적 압박과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무의식적 혐오라 볼 수 있다. 다만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만은 아닌데, 이 과정에서 게이는 물론, 여성 혐오적 스탠스가 가미된 지점은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할 키치 문화의 어두운 단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해병문학은 온라인 익명성의 공간에서 태동하고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이 현상이 국가주의가 숨어든 해병대라는 곳에 대중적 분노를 표출하는 강력한 성격을 지닌다는 점은 분명하다. 기존 제도권 언론이나 학술 담론에서는 제대로 발화되기 어려웠던 군대 내 부조리와 그로 인한 개인의 트라우마가,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서 자유롭게 표출되는 해방구가 바로 해병문학이다. 여기서 사용되는 날것 그대로의 언어와 상상력은 기존의 비판적 담론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검열과 순화 과정을 거부한다. 이는 권력에 대한 냉소와 불신, 그리고 기득권과 계급적 분노가 혼재된 대중의 목소리가 자기표현의 기이한 형식을 찾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해병문학은 억압받는 자들의 불만이 사회 전반에 대한 풍자와 결합하여, 역겨움을 통해 더 큰 역겨움을 폭로하는 문화적 투쟁의 전선이 된다. 해병문학에게도 아쉬움이 하나 남는데, 이는 바로 해병대를 비판한 것보다 해병대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데 그친 점이다. 이들이 풍자하는 해병대의 비판 지점은 두 부분이다. 1) 비인간적인 부조리 2) 해병대 출신이라는 강한 자부심(일명 꼴깝 혹은 가오). 이는 어쩌면 해병대라는 군대의 근본적인 성격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해병문학이 인터넷 키치 문화라는 점을 고려할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해병문학의 비판은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부조리한 현상에 대한 비판이지, 현상 이면에 숨은 발본적인 이데올로기 비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해병문학은 불쾌하고, 자극적이며, 때로는 정치적 올바름에 위배되는 저급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역설적인 '역겨운 풍자'를 통해 한국 사회의 특정 집단이 은폐하려던 부조리와 권위의 허상을 폭로하고 있다. '귀신 잡는 해병대'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국가 기관의 신화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냉엄한 리얼리즘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국가는 '국민을 방위하는 강력한 집단'이라는 환상을 현실이라 주입하지만, 오히려 판타지 문학에 가까운 해병문학이 그 환상을 깨고 현실의 밑바닥을 들추어내는 아이러니를 선보이는 것이다. 이 기이한 문학적 현상은 분명 해병대를 조롱하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대중의 무의식적 저항과 비판 정신이 어떻게 표출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해병문학보다 더한 현실을 두고 '해병문학을 뛰어넘는 해병비문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해병문학이 단지 판타지인 것만은 아니다. 진정한 판타지는 해병대가 국민을 지키는 집단이라는 거짓된 명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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