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비좁은 한국 정치 지형과 기형적 우경화
연말 정치권 최대의 이슈는 이재명 정부의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이혜훈이 지명됐다는 소식이었다. 정치권은 물론, 대중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좋게 표현하면 파격적인 인사, 솔직히 말하면 뜬금없는 지명이라는 말이 돌았다. 친정부 인사들은 이 임명을 '제갈공명' 운운하며 실용과 통합의 제스처로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쿠데타 세력 청산과 진보적 개혁을 갈망해온 시민들에게는 이재명 정부가 제대로 '엿'을 먹인 명백한 개혁 배신이다.
이혜훈은 본래 보수 정당 내에서 온건파, 중도파로 분류된다. 경제민주화라는 깃발을 든 유승민계, 흔히 '친유의 좌장'이라 불리던 인물답게, 보수 진영 안에서도 온건 개혁, 경제민주화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새누리당이 쪼개진 뒤에는 바른정당으로 옮겨 짧게나마 당 대표도 지냈지만, 결국 비주류로 밀려나 원외 인사 신세로 전락했다. 국민의힘이 점점 우경화의 속도를 높여가던 시절, 이혜훈 역시 비주류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2025년 3월, 합리적 보수로 자처하던 유승민과는 거리를 두고, '윤어게인'과 부정선거를 내세우는 기독교 극우 단체 ‘세이브 코리아’ 집회에 참석해 윤석열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윤석열 탄핵 이후, 이재명 정부의 손을 잡고 장관직을 받아들인 건, 아무리 이 정부가 우경화로 방향을 튼다 해도, 윤석열을 비호하던 기회주의자를 예산처 수장에 앉힌다는 건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한 그림이었다. 이혜훈의 장관 지명은 정치적으로 보면 이재명 정부가 ‘선 넘는 우경화’에 돌입했다는 신호다. 그러나 문화평론의 눈으로 보면, 이 장면에서 한국 정치의 기형적인 양극화 현상 또한 포착할 수 있다.
극우의 색채를 띠던 인물이 자신을 ‘중도좌파’라 주장한 정부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현실. 이 얼마나 좁고 모호한 정치 스펙트럼인가. 2010년대 이후 유럽 역시 정치적 양극화가 거세지며 극우와 강경 좌파가 동시에 떠올랐다. 파시스트의 귀환을 알린 이탈리아의 멜로니, 독일의 AfD, 프랑스의 마린 르펜 등, 소멸된 줄 알았던 파시스트가 다시 정계로 돌아와 집권까지 노리고 있다. 좌파 역시 힘을 키웠다. 꼭 급진좌파는 아니지만, 영국의 제러미 코빈, 프랑스의 멜랑숑처럼 강경 좌파도 부상했다. 즉, 서구에서는 사회민주주의와 보수주의가 뚜렷이 싸우고, 강한 좌파와 우파가 판을 주도하며, 정치의 우경화까지 번져갔다.
한국이라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탄핵을 전후해 우파는 급격하게 우경화했고, 국민의힘은 이제 극우 정당이 됐다는 평가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김문수의 대선후보 선출, 장동혁의 당대표 당선은 극우화의 상징 같은 사건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의 양극화는 유럽처럼 좌파의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정통 보수당의 경쟁이 아닌, ‘지배계급의 최애 정당 대 차애 정당’이라는 틀이 두터웠다. 지나치게 좁은 정치 스펙트럼 탓에, 이혜훈 같은 이들이 양당을 넘나드는 광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 유명한 손학규에서 권오을, 허은아, 김용남의 더불어민주당 입당, 그리고 이번 이혜훈의 장관 지명까지.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이낙연을 필두로 한 민주당 내 수박세력의 김문수 지지는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며, 심지어 류호정처럼 사민주의 정당에서 보수 정당으로 옳기는 사례 역시 있다. 이런 일들은 지나치게 좁은 권력 지형에서, 진영을 옳기기란 결코 불가침한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혜훈의 임명은 한국 부르주아 정치판의 지나치게 비좁은 정치 지형을 보여주며, 기형적인 양극화를 보여준다. 잡아먹을 듯 싸우는 두 양대 정당이 얼마나 실제로는 이념적으로 가까운지 알 수 있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