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가족>: '보통'을 꿈꾸는 신중간계급의 판타지와 균열
허진호 감독의 영화 <보통의 가족>은 신중간계급의 은밀한 판타지를 숨기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한국 사회의 신중간계급이 무엇을 열망하고, 그 열망이 좌절될 위기에 처했을 때 '가족주의'와 '도덕주의'가 어떻게 맹렬하게 충돌하며 허물어지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허진호 특유의 멜로 정서와는 거리가 조금 있지만, 서사만큼은 역시나 흥미롭다. 그 서사에는 신중간계급의 리얼리티와 그 욕망이 담겨져있다.
영화의 중심에 선 두 가족은 바로 한국 사회가 꿈꾸는 신중간계급의 이상적인 표상이다. 신중간계급은, 이명박과 같은 성공 판타지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오늘, 노동계급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다. 신중간계급의 아이는 부르주아 계급의 아이들로 불리는 청담동 키즈가 아닌 대치동 키즈들에 가깝다. 그들은 부모의 재산을 물려 받아 부모와 같은 생활을 영위할 수는 없지만, 부모와 엇비슷한 생활환경을 위해 교육 받을 수 기회는 있다. 그러니, 그들은 필사적으로 성적에 몰두한다.
작중 두 가정 모두 노동계급 출신 신중간계급 가족이라 할 수 있다. 한쪽은 대학병원 외과 교수인 동생 재규와 그의 지적인 아내이고, 다른 한쪽은 거대 로펌의 성공한 변호사 형 재완과 그의 젊은(일명 '취집'한) 아내이다. 이들은 모두 고학력, 전문직, 안정적인 경제력, 번듯한 자녀를 갖춘 인물들이다. 이들에게 '보통'이라는 것은 단순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곧 사회 상층부에 가깝게 위치한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고, 나아가 자녀들을 통해 그 부와 지위를 성공적으로 대물림하려는 필사적인 욕망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그들이 지키려 하는 '보통'이란, 사실상 '신중간계급 이상의 안정적인 삶'이라는 욕망이다. 하지만 어느 날 밤, 자녀들이 연루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 견고해 보이던 판타지에는 치명적인 균열이 생긴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가족의 안위는 물론, 자녀들의 미래까지 송두리째 뒤흔들 위협으로 다가온다. 여기서부터 ‘가족주의’는 순수한 혈연적 사랑을 넘어, 계급적 지위를 방어하기 위한 강력한 이기심으로 변질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녀의 명문대 진학, 안정된 직업, 그리고 궁극적으로 '더 높은 계급'으로의 도약을 의미하는 '성공'은 이들 신중간계급 판타지의 핵심 요소이다. 이 모든 것을 지켜내기 위해 이들 부모는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며, 심지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선택까지 서슴지 않는다. '가족을 위한 일'이라는 명분 아래, 자신들의 생활 양식을 세습하기 위해 부도덕을 일삼는다.
동시에 영화는 도덕주의의 불편한 위선을 드러내고 있다. 재규는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원칙과 정의를 강조하는 인물이며, 재완은 법이라는 도덕적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는 변호사이다. 이들은 각각 문이과 직업에 최고봉에 있는 직업으로, 사회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일조해야 할 위치에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자 그들의 고결한 도덕적 잣대는 한없이 유연해지거나, 아예 껍데기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재규는 사명감을 가진 의사라는 공적 페르소나는 '자식을 위한 부모'라는 사적 페르소나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의 고학력과 지식은 사건을 더욱 치밀하게 은폐하고 합리화하는 데 교묘하게 악용되는 도구가 된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도덕적 언사 뒤에는, 계급적 지위를 세습하기 위한 냉철한 계산이 숨어있었음이 폭로되는 셈이다.
<보통의 가족>은 '보통'이라는 단어의 모순을 통해 신중간계급 판타지를 신랄하게 파고드는 영화이다. 이는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갈망하는 동시에, 그 보통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비도덕적인 선택을 감수하는 신중간계급의 위선적인 민낱을 폭로한다. 내가 알던 허진호와는 조금 다른 결의 영화를 보여주지만, 여전히 시대의 판타지에 대한 성실한 리얼리스트임은 분명하다. 과거 그의 대표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외출>이 노동 계급의 에로스를 고찰한 작품이라면, <보통의 가족>은 격렬한 에로스 대신 신중간계급의 대물림을 위한 가족주의가 그의 영화에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