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시대의 영상작품

by 꿈꾸는 곰돌이

OTT시대의 영상작품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의해 영화가 발명된 이후, 영화의 시대는 여전하다. 하지만 그 존재감은 이제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한때 달려오는 기차를 스크린 속에서 마주한 관객들이 현실과 혼동하던 원초적인 놀라움은 없다. 그렇다는 점에서, 영화의 재현의 아우라는 상실되었다. 극장에서 보던 영화는 비디오 테이프, DVD를 걸쳐 이제는 OTT에서 쉽게 감상할 수 있다. 그러면서 돈을 주고 점차 극장에서 조용하게 보는 제의는 사라졌다. 그런 아우라 상실의 시대, 영화를 비롯해 서사가 깃든 영상 작품들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마치 마술처럼 신기했던 초창기 영화의 매력, 그리고 서커스장처럼 사람들이 한데 모여야만 볼 수 있었던 그 시절은 지나갔다. 요즘엔 집에서든, 혹은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든, 스마트폰 하나면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발터 벤야민이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예술이 기계적으로 복제될 수 있다는 점이 작품 특유의 아우라를 소멸시키며, 나아가 예술의 존재 방식을 새롭게 정의한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지금 21세기 OTT 영상물의 위상 또한 다시 생각해볼 시점에 와 있다. 넷플릭스, 디즈니+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은 단순한 콘텐츠 유통 도구를 넘어, 서사의 형식과 감상법, 그리고 성공의 기준마저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바로 이런 배경 속에서 『카지노』, 『메이드 인 코리아』, 『더 글로리』,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 같은 OTT 오리지널 드라마들이 전통적 서사 미학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들 작품은 OTT 플랫폼에서만 볼 수 있다는 특성만큼이나, 구조적으로 기존 영화와 다른 호흡을 지닌다. 대체로 빠르고 자극적인 스토리 전개, 그리고 눈을 뗄 수 없는 서사로 새로운 예술적 경험의 지평을 힘차게 열어젖힌다.

예전엔 극장 영화가 관객 수, 즉 티켓 판매 성적으로 ‘성공’을 가늠했다면, 이제 OTT 드라마는 시청 시간이나 완주율 같은 질적인 지표에 더 큰 가치를 둔다. 한때는 부가 수입 정도로 여겨졌던 온라인 판권 판매가 지금은 결코 주변적인 요소가 아니다. OTT 오리지널 시리즈 한 편의 흥행이 플랫폼 전체의 시청 시간을 좌우할 정도로, 이들 콘텐츠는 산업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이처럼 상영 플랫폼이 바뀌면서 서사 구조 자체도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제작자와 창작자들은 시청자가 한순간도 지루해하지 않고 모든 에피소드를 끝까지 보게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더는 길고 깊은 미장센이나, 천천히 캐릭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여유로운 호흡은 허락되지 않는다. 『오징어 게임』의 피 말리는 생존 게임과 매번 예측을 뒤엎는 반전, 그리고 시청자에게 다음 화를 강렬히 궁금하게 만드는 클리프행어(속이 타는 엔딩)의 예술이 대표적이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보여주는 치밀하고 복수에 가득 찬 계획 역시, 주인공의 아픔과 분노에 시청자를 철저히 몰입시키며 한 회도 거를 수 없게 만든다. 이처럼 ‘완주’에 대한 강박은, 영상 서사가 단순한 감상에서 벗어나, 일종의 중독적 시청으로 그 본질을 이동시켰음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이런 완주 유도의 압박 속에서, 이야기 구성은 더 자극적으로 변하고, 등장인물들은 화면에 강렬하게 표출되는 특징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영화의 작품성이라는 게 애초에 주관적 판단이라 해도, OTT의 급부상은 영화 산업 전체의 작품성 하락이라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한 번 고전 명작들을 떠올려보면 그 차이가 더 명확하다. 예를 들어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은 거대한 세트와 다양한 빛의 활용을 통해 인물의 삶을 웅장하게 펼치며 깊은 성찰을 유도했고,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는 비 오는 골목과 뿌연 담배 연기 속에서 서로 엇갈리는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파헤치며, 관객에게 인내의 시간을 선사했다. 불륜조차 아름답게 그려내던 그 영화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최소한의 대사로 우주의 숭고함과 인류의 기원에 대한 사유를 던졌고,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 이야기』는 잔잔하고 느린 미장센 속에 가족의 의미, 그리고 삶의 덧없음을 담담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느림과 여운의 미학은 OTT 드라마 속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이들은 첫 장면부터 강렬한 사건과 극단적 갈등을 내세워, 시청자의 시선을 순식간에 붙잡는다.이렇게, 변화의 파도 위에서 ‘영화’는 점점 조급해지고, 이야기의 속도에 맞춰 관객의 호흡도 바빠진다. OTT 시대에 영상 서사는 이제 다른 이름을 요구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카지노』에서 그려지는 차무식(최민식 분)의 파란만장한 삶, 그리고 그를 둘러싼 끊임없는 배신과 복수는 단 한순간조차 지루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시청자는 어느새 그의 유년 시절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예를 들어, 『메이드 인 코리아』는 자극적인 연출로 시선을 끌지언정, 현빈의 반듯하게 넘긴 포마드 머리 외에는 딱히 미학적인 깊이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결국 작품의 본질적 의미보다 시각적 효과에만 매달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 글로리』의 뼈아픈 학교 폭력 묘사와 『오징어 게임』의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은 폭력의 연출을 극한까지 몰아붙인다. 과거라면 검열에 가로막혀 은유적으로만 표현되던 폭력이 이제 OTT 플랫폼에서는 훨씬 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등장한다. 단순히 시청자에게 원초적 자극을 안기는 데 그치지 않고, 몇 분 안에 서사적 긴장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는 전략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검열과 방송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난 OTT 시대에 폭력은 더 이상 단순한 서사 도구가 아니다. 이제 폭력은 감각을 마비시키고, 때론 정신까지 황홀하게 만드는 리비도의 대상으로 격상된다.

나아가, OTT 시대는 관객이 수동적으로 관람하던 영화의 오랜 관습을 과감히 해체한다. 극장은 어두운 공간 속에서 모두가 한 몸처럼 숨죽이며 영화를 받아들이는 집단 의례의 장소였다. 하지만 OTT의 세계에서는 빨리 감기, 스킵, 정지, 재생 속도 조절, 심지어 두 배속 시청까지—시청자가 서사의 흐름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게 제어한다. 지루하다 느껴지면, 망설임도 없이 콘텐츠를 갈아타거나, 흥미로운 순간만 골라 본다. 『시민 케인』의 빛과 그림자, 앙각 촬영의 상징성, 『화양연화』의 아련한 카메라 움직임과 색채, 『동경 이야기』의 고요한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삶의 본질—이런 경험을 빨리 감기하며 소비한다는 건 극장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웠지만, OTT 시대엔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이제 서사는 철저히 시청자의 선택적 주의와 이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짜인다. 창작자는 언제든 시청자가 홀연히 떠날 수 있다는 불안과 함께, 매순간 시선을 붙잡을 장치를 고민하게 된다. 복선이나 인물의 미묘한 내면 변화처럼 오래 쌓아 올려야 하는 장치보다는, 즉각적으로 튀어나오고 폭발하는 사건과 감정이 쉼 없이 이어지는 산산조각난 서사가 선호된다. OTT의 서사는 이제 흐름보단 도약, 성장보단 충격을 택한다. 이야기의 시간성은 더는 일직선이 아니다. 오히려 시청자의 순간적인 욕망에 맞춰,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꾼다. 예술이 관객에게 요구하던 인내심과 집중력은 점점 빛바래고, 짧고 강렬한 자극을 신속히 소비하는 새로운 미덕이 예술적 경험의 중심이 되어간다.

벤야민이 기술 복제의 등장이 예술의 아우라를 희미하게 만드는 대신, 예술을 대중 속으로 해방시키고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열었다고 했듯, OTT의 서사 역시 전통적 미학의 아우라가 희미해지는 한편, 대중과의 거리감을 없애고 전 세계적 파급력을 손에 넣었다. 콘텐츠의 민주화라는 평가도, 분명 이 지점에서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벤야민의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 완주율에 사로잡혀 자극을 뿌리며 빠르게 달려가는 플롯이, 정말로 인간과 세계라는 커다란 화두를 계속 헤집고 파고들 수 있을까? 서사의 예술적 체험이, 자칫 서로 단절된 자극만 줄줄이 늘어선 나열로 퇴색해가진 않을까? OTT 시대의 서사는 이 빠른 속도, 강렬한 자극, 능동적 시청자의 손길 속에서 과연 새로운 '아우라'를 창조할 수 있을지, 아니면 끝없는 복제와 스펙터클의 놀음에 잠겨 사라질지 모른다. 이 고민은 창작자와 시청자 모두, 시대와 함께 성찰하고 떠안아야 할 묵직한 질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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