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 유행: 피로 사회의 달콤 쫀득한 도피처

by 꿈꾸는 곰돌이

두쫀쿠 유행: 피로 사회의 달콤 쫀득한 도피처


오늘날 SNS의 파급력은 실로 굉장하다. 더 이상 SNS라는 온라인 공간은 현실의 특수한 반영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도 강력한 영향을 주는 특수한 공간이다. 정확히 말하면, SNS는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현실에 영향을 주는 상호작용을 한다. 흔히 ‘기득권’의 꼰대 같은 소리 중 하나로 치부되는 “SNS가 한국을 망쳤다”는 주장 역시 이 층위에서 살펴볼 만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로 치장하고 싶은 현실의 욕망이 SNS에 투영된 것도, SNS의 투영이 소비주의를 부추긴 것도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음식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행하는 음식은 특정 욕망을 반영하는 동시에, 이것을 현실에 강하게 퍼트린다. 주변을 둘러보면 SNS를 타고 유행한 식품들은 분명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한 가지 특성을 담고 있다. 마라탕, 탕후루에 이어 두바이쫀득쿠키까지, 강렬한 자극적인 맛들이 연달아 유행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 현상은 단순히 먹거리의 변화라기보다 더욱 자극적인 것에 중독된 사회의 이면을 보는 듯하다. 번뜩이는 개성이나 깊이 있는 미식 경험보다는, 쉽고 빠르게 만족을 주는 자극적인 맛을 찾는 모습은 이 사회의 '피로감'과 분명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리엔탈리즘과 원초적 자극감의 결합

'두바이 쫀득 쿠키'라는 이름은 듣기만 해도 어딘가 모르게 특별하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마치 처음 마라탕이 등장했을 때 이국적인 향신료와 매운맛으로 소비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듯이 말이다. 두쫀쿠 또한 '두바이'라는 명칭과 카다이프 면 같은 낯선 재료를 내세우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런 이국적인 요소들이 과연 맛의 깊이나 독창성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때로는 그저 '새롭다'는 피상적인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바쁜 일상 속에서 맛의 개성이나 음식에 담긴 문화적 배경을 깊이 들여다볼 여유를 잃어가는 경향도 관찰된다. 이는 그저 눈에 띄고, SNS에 '인증샷'으로 남길 만한 '핫한 아이템'으로서 이국적인 맛을 소비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이름만 '두바이'일 뿐, 막상 맛을 보면 예상 가능한 강렬한 단맛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쫀쿠의 성공 뒤에는 탕후루처럼 강렬한 단맛과, 마라탕처럼 중독적인 자극이 주는 짜릿함이 있다. 쫀득하고 꾸덕한 식감, 그리고 입안 가득 퍼지는 폭발적인 단맛은 뇌의 보상 시스템을 직접 자극해서, 짧지만 강력한 만족감을 준다. 이러한 자극적인 맛은 가장 원초적이고 즉자적인 쾌락으로 다가온다.

카페인을 비롯한 각종 각성제의 축적으로 만성피로와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복잡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해, 이러한 '강렬한 당분'이나 '혀를 얼얼하게 만드는 매운맛'에서 작은 해방감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이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통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소비를 택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자극은 일시적인 도피처가 될 수는 있어도, 계속해서 미각을 무디게 만들고 결국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섬세하고 깊이 있는 맛을 음미하는 '미식의 교양'이 점점 사라져 버리는 현상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마라탕, 탕후루, 그리고 두쫀쿠로 이어지는 이러한 유행의 반복은 현대 사회의 피로감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바쁜 일상과 심리적인 압박 속에서, 사람들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복잡한 여정보다는, 손쉽게 유행을 따르면서 '모두가 좋아하는 것'에 동참하며 작은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개성을 살리고 깊이 있는 경험을 추구하기보다는, 대다수가 열광하는 것을 소비함으로써 자신도 그 흐름 속에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경향이 나타난다. 겉보기엔 '새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자극적인 맛에 의존하는 반복적인 소비는 결국 지쳐있는 현대인이 쉽고 편안하게 쾌락에 다가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음식에 있어서도 즉작적인 ‘정보’가 아닌 우회가 필요하다. 마치 시적인 음식. 단순하고 절제된 맛으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음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시적인 음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라 경쟁에서 도태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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