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뤽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와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최근 영화 <누벨바그>의 재개봉으로 누벨바그의 상징적인 감독, 장 뤽 고다르의 삶과 작품 세계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영화를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시대의 징후와 감독 개인의 사유를 포착할 수 있는 문화비평적 수단으로 보는 시선에서,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강력한 분석의 대상이다. 시네필의 교과서라 불릴 정도로 거대한 고다르의 작품 세계에서 어떤 작품을 택할지는 조심스럽지만,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1962년 작 <비브르 사 비(Vivre Sa Vie: My Life to Live)>는 특히 문화비평의 시선으로 꼭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배우를 꿈꾸던 여성 나나(안나 카리나)가 매춘부로 삶이 몰락하는 과정을 12개의 장면(tableau)으로 나누어 담담하면서도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프랑스의 가장 자본주의적인 도시,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는 발터 벤야민이 평생을 바쳐 탐구한 미완의 역작,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벤야민의 미완의 대작이자 '20세기 서사시'라 불리는 이 작품은 자본주의가 우리의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까지 어떻게 파고드는지 날카롭게 해부하는 전설적인 문화비평적 텍스트이다. 벤야민이 19세기 자본주의 파리를 연구한 것처럼, 고다르 역시 20세기 파리의 거리에서 나나라는 인물을 통해 자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순수한 '자기 삶(Vivre Sa Vie)'이 얼마나 요원한지 드러내며, 궁극적으로는 이 글의 제목인 '자본주의란 거대한 매춘굴'이라는 의미를 통렬하게 조명한다.
벤야민에게 아케이드는 단순히 상점가를 넘어 자본주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응축한 장소였다. 화려하게 진열된 상품들, 욕망과 매연으로 가득한 도시의 공기, 복잡하게 오가는 군중의 시선,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매춘의 모습까지, 자본주의의 삼라만상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19세기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집단적 환상'이자 '허위 의식'의 총체로 파악했다. 벤야민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 방식이 사람들의 의식적인 판단을 넘어, '비자발적 기억'과 '무의식적인 사고'의 형태로 우리에게 깊이 박힌다고 보았다. 도시 곳곳에 흐르는 자본의 논리는 겉으론 의식되지 않지만, 우리의 욕망과 행동 방식, 심지어 정체성까지도 은밀하게 빚어낸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나의 비극이 심층적으로 시작된다.
나나가 매춘을 선택하는 모습은 처음엔 어쩔 수 없는 경제적 결정처럼 보인다. 돈이 필요해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팔기로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고다르의 연출은 이 '선택'조차도 자본주의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짜놓은 구조 안에 이미 포섭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한때 배우가 되고 싶었던 나나의 꿈, 그리고 매춘부로서 자신을 대상화하고 연기하듯 삶을 영위하는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 자신'마저도 상품으로 내놓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강박을 보여준다. 나나는 돈이 있어야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논리에 순응하고, 그러는 사이 그녀의 몸과 감정, 관계마저도 수치화 가능한 '교환 가치'로 끊임없이 변한다. 그녀가 품었던 주체적 욕망도 결국 자본의 매트릭스 안에서 이미 비틀리고 포획돼 버린 것이다.
영화 속 파리 풍경은 벤야민이 탐구했던 아케이드의 모습과 놀랍도록 이어진다. 고다르는 나나의 시선으로 파리의 거리를 배회하고, 카페와 호텔의 단조로운 일상을 비춘다. 이러한 도시 공간은 겉보기엔 자유로운 개인들이 드나드는 장소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엔 모든 것이 돈에 의해 움직이고 거래되는 자본의 거대한 순환이 도사리고 있다. 나나가 우연히 한 지식인과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에드거 앨런 포의 글을 통해 존재의 이중성을 고민하는 장면들은, 그녀가 상품화된 자신의 삶 속에서도 어떻게든 자아를 지키려 애쓰는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주체적 사유 시도마저도 '특별한 매춘부'라는 또 다른 상품적 가치를 더하는 아이러니로 되돌아올 뿐이다. 이는 자본의 무의식이 개인의 내면까지 얼마나 철저히 파고들어 장악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섬뜩한 예시이다.
나나의 삶은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폭로하고자 했던 20세기 자본주의의 허위의식을 생생하게 구현한다. 그녀가 스스로를 해방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자본의 논리가 심어 놓은 무의식적인 강요와 지배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나나의 파멸적인 운명을 차갑게 포착하는 고다르의 브레히트적 연출은,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에게 은밀하고도 무의식적으로 가하는 폭력의 한 단면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성의 상품화, 나아가 인간 존재 자체의 상품화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자본주의란 거대한 매춘굴'이라는 비유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다르와 벤야민의 비판적 시선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 시대에 진정한 해방이 가능한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