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맹랑한 꿈, 거세된 영혼들의 자화상
<3-4x10월>: 허무맹랑한 꿈, 거세된 영혼들의 자화상
내겐 기타노 다케시란 이름은 단지 선호의 층위를 넘어 동경의 층위에 까지 도달한 몇 안되는 몇 안되는 영화 감독이다. 한마디로 난 다케시안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영화 감독이 누구냐고 묻거든, 그의 이름을 말하기보단 왕가위나 장 뤽 고다르의 이름을 빌린다 .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인간에 대한 이해부터 정치에 이르기 까지, 철학적으로는 그와 너무 다르다.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폭력 묘사와 급진적인 허무주의 세계관은 도저히 타협할 수는 없지만, 기타노 다케시의 매력은 이를 감안해도 너무나 매혹적이다. 그의 영화의 양대 특징은 마초적 남성성과 공격적인 허무주의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타노 세계관의 시원을 보여주는 작룸이 <3-4x10월>이다.
그렇다면 공허한 폭력 판타지에 매몰되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강함'이란 대체 무엇인가? 기타노 다케시는 역시나 답이 컴컴한 화장실에서 벗어나 야구장으로 향하는 마사키의 어딘가 넋이 빠진 표정. 첫 장면부터 이미 기묘하게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마치 관객을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으로 이끄는 듯하다. 마사키는 동네 야구팀에서 늘 대타로 남아 있는 힘없는 존재이자, 야쿠자에게 걸핏하면 시비를 당해도 어쩌지 못하는 그저 평범한 소시민이다. 한편으로 보면, 그는 청춘의 빛나는 시기를 주유소에서 보내며, 주변에 자주 무시당하는 인물로 비친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오늘날 ‘나’라는 존재가 사회로부터 지워진, 수많은 남성의 깊은 불만과 무력감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야구 시합에서 패배하고, 야쿠자들에게 당하는 굴욕, 한때 강함의 상징이었던 이구치 감독까지도 무력하게 무너지는 현실 앞에서 마사키의 내면 역시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현실은 그에게 어떤 ‘강인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소리를 지를 용기도 없고, 맞서 싸울 힘도 없다. 이때 감독의 복수를 위해 오키나와로 향하는 마사키의 선택은 단순 복수극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온갖 굴욕에서 벗어나, 폭력이라는 원초적인 수단을 통해 ‘진짜 남자’가 되고 싶다는 절박하고도 허망한 남성성 판타지의 시작이다. 현실에서 거세당한 그의 영혼이 꿈속에서나마 '전능한 폭력성'을 갈망하는 셈이다.
오키나와에서 만나는 야쿠자 행동대장 우에하라(기타노 다케시)는 바로 이 판타지에서 가장 폭력적이면서 원초적인 핵심을 맡는다. 조직에서 배신당해 손가락까지 잘릴 위기에 놓인 그지만, 오히려 통제할 수 없는 광기와 예측할 수 없는 폭력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여자친구를 수시로 폭행하고, 동료에게 내주기도 하며, 심지어 부하에게도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한다. 이 모습은 상식이나 윤리에서 한참 벗어난, 말 그대로 '해로운 마초'의 전형이다. 마사키는 이런 우에하라의 비이성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 이는 마사키가 스스로의 꿈속에서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진, 현실에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극단적인 남성적 폭력성에 대한 은밀한 동경을 보여준다. 그는 우에하라를 통해 자신이 놓쳐버린 남성성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대리 만족을 얻는다.
이처럼 거세된 남성의 판타지라는 면에서, 이 영화는 데이빗 핀처의 <파이트 클럽>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파이트 클럽>의 익명 화자 역시 자본주의 소비사회에 길들여진 부품처럼 살아가며, 점점 자신의 존재감을 상실해 간다. 그 또한 현대 사회에서 빼앗긴 '남성'의 힘과 의미를 되찾으려, 무정부 폭력의 화신 '타일러 더든'이라는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낸다. <3-4x10월>의 마사키가 오키나와 우에하라를 통해 폭력을 대리 경험함으로써 현실의 무력감을 보상받는다면, <파이트 클럽>의 화자는 타일러를 통해 파이트 클럽과 프로젝트 메이헴을 만들며, 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기파괴적 판타지를 실현한다.
마사키가 권총과 기관총을 들고 야쿠자 사무실에 난입하는 장면, 여자친구와 함께 탱크로리에 올라타 돌진하고 자폭하는 극단적 선택은, <파이트 클럽>에서 주인공이 도심 전체를 파괴하겠다고 나서는 '프로젝트 메이헴'과 맞닿아 있다. 두 영화 모두 파괴를 통해 잃어버린 남성성에 대한 복수를 시도하지만, 방식은 다르다. 마사키의 꿈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가장 극단적인 파괴를 거쳐 절정에 다다르지만, 결국 첫 장면처럼 다시 컴컴한 화장실로 돌아가 볼일을 마치고, 아무렇지 않게 야구장으로 향한다. 세상은 여전히 예전처럼 돌아가고, 야구 경기도 계속된다. 반면 <파이트 클럽>은 금융권 중심부에서 거대한 테러로 마무리된다. 정치적으로는 후자를 지지하지만,미학적으로는 <3-4x10월> 역시 기타노 감독 특유의 공격적인 허무주의 세계를 강렬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못지않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