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마 나기사 <전장의 크리스마스>

제국주의를 무너뜨리는 에로스

by 꿈꾸는 곰돌이

제국주의를 무너뜨리는 에로스, 오시마 나기사 <전장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하면 생각나는 작품들이 있다. 내겐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ost가 머릿 속에 아른거리며, 이 영화의 엔딩장면이야말로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아있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본능적 욕망과 제국주의적 폭력이 서로 어떻게 부딪히는지 깊이 파고든다. 이 작품은 단순한 전쟁 드라마를 넘어서, 억압적인 ‘상징계’로 작동하는 제국주의와 그것을 뒤흔드는 원초적 ‘에로스’의 관계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포로수용소라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는 서구의 합리적인 제국주의와 일본 군국주의가 뒤엉켜 한층 더 엄격한 질서를 강요하는데, 이런 환경 자체가 제국주의적 상징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요노이 소령과 하라 병장 같은 일본군 인물들은 이 상징계를 완강하게 지키는 집행자다. 이들은 군율과 무사도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감정이나 윤리,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인간 본성의 비이성적 면모까지도 냉정하게 억누른다. 그 안에서 감각적 쾌락이나 인간적인 유연함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가오만이 지배하는 차가운 질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런 억압과 통제의 분위기 덕분에 일본 제국주의가 내포한 폭력성 역시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견고해 보이는 상징계에 처음으로 균열을 내는 인물이 바로 영국인 포로 셀리어스다. 그는 어떤 규범이나 상징으로도 길들여지지 않는 신비로운 매력과 거부할 수 없는 에로스의 에너지를 지닌 인물이다. 요노이 소령이 아무리 차가운 이성과 엄격한 규율로 자신을 무장하려 해도, 셀리어스의 비이성적이고 감각적인 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셀리어스가 지닌 에로스야말로 제국주의 질서를 뒤흔드는 가장 강렬한 무기다.


이 영화가 가장 치닫는 순간은 요노이 소령이 셀리어스의 목을 베려는 순간이다. 셀리어스가 요노이의 두 눈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곧장 그의 두 뺨에 입 맞추는 장면은 강렬한 시각적 반란이라 할 수 있다. 감정을 드러내 지금껏 일본군은 ‘응시하는 주체’로서 영국 포로들을 ‘대상’으로 전락시키며 권력을 휘둘렀지만, 셀리어스의 이 두 번째 시선과 입맞춤은 자신을 수동적인 대상으로만 두지 않고, 오히려 그 응시를 되돌려주며 폭력적인 구조에 정면으로 저항한다. 한마디로, 이는 시선과 감각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이 도발적인 입맞춤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이전 작품들에서 볼 수 있던 성적인 제스처와 닿아 있다. 그 유명한... <감각의 제국>이 그렇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는 그 의미가 훨씬 깊어진다. 오랜 시간 쌓아 올린 군국주의 상징계를, 비합리적이고 압도적인 에로스의 힘으로 단숨에 무너뜨린다. 감각의 제국과 달리, 노골적인 거세보다 훨씬 낮은 수위로... 규율과 무사도로 스스로를 보호하던 요노이의 세계는 이 짧고 격렬한 접촉 한 번에 산산이 부서진다. 셀리어스의 도발적인 시선과 입맞춤을 통해 요노이의 내면은 근본적으로 와해되어버리고 만다.

오시마 나기사는 이 ‘두 번째 시선’과 ‘입맞춤’을 통해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의 솔직한 감정, 다시 말해 언어나 상징으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타인과의 비이성적인 교감, 그리고 질서와 규범만으로 절대 다 설명하지 못하는 본능적인 에로스의 힘이야말로 군국주의라는 폭력적 구조를 철저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에로스의 파괴적인 힘으로 해체하려는 시도를 통해, 인간성의 근원적 가치를 수호하고자 한다. 사랑은 중력보다 총체적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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