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내셔널리즘 비판

자본주의, 스포츠와 정치와의 관계

by 꿈꾸는 곰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애국심은 평소에는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다. 일상에서는 국익이라는 먼 가치보다 사익이 훨씬 더 절실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4년에 한 번,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국제 스포츠 행사가 다가오면 이 내재된 애국심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때만큼은 언론과 정부가 한몸이 되어 이 감정을 의도적으로 자극하고, 국민 대중을 ‘국가’라는 이름 아래 묶어내는 장치가 작동한다.


영화 <남쪽으로 튀어>에서 최해갑이 던진 “뭔 놈의 애국심이 4년에 한 번씩 오냐”는 말은 마치 이런 현실을 정확히 꿰뚫은 듯하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애국심은 평상시에는 먼 이야기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특정 시기가 오면 갑자기 당위가 되고 강요되는 감정이 된다. 월드컵, 올림픽은 큰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정치와 경제의 이해관계가 얽힌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다. 청와대부터 정치권 전반이 관심을 쏟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이런 행사에 대해 비판적이다. 심지어 한국 선수단의 패배를 바라는 마음마저 있다. ‘매국노’로 비난받을지라도, 나는 깊이 국제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국가주의를 강요하는 이런 스포츠 내셔널리즘의 구조에 맞선다. 스포츠가 정치적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경기장에서 터져 나오는 열기는 때로는 민족 간 긴장과 분열을 심화시키기까지 한다.


반면 스코틀랜드 셀틱, 이탈리아 AS로마 같은 좌파적 이념을 품은 축구팀의 승리를 응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경기는 단지 국가 대 국가의 대결을 넘어선, 연대와 저항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런 팀들의 승리는 스포츠가 가진 진정한 정치성과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는 스포츠에 대한 테제를 두 가지라고 규정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약소국의 승리를 바라며, 자국의 패배를 바란다. 특히 식민 지배의 경험이 있는 나라가 식민 지배를 한 국가를 승리하는 것이 통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자의 경우, 넓은 범주에서 반제국주의라 할 수 있겠고, 후자의 경우, 혁명적 패배주의의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스포츠 내셔널리즘은 국민을 하나의 집단 정서로 묶으려는 국가 권력과 언론의 전략이다. 승리의 기쁨 뒤에는 감추어진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계산이 있다. 이 감정의 동원 방식은 결국 국민 개개인의 비판적 사고를 무력화시키고, 국가주의라는 색안경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같이 의도된 애국심과 내셔널리즘을 의심해야 한다. 스포츠가 국경과 이념을 초월하여, 진정한 평화와 교류의 장이 되려면, 우선 자본주의를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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