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야수의 알레고리

영화 <테이큰>과 미국 제국주의의 부성애 환상

by 꿈꾸는 곰돌이

상처 입은 야수의 알레고리: 영화 <테이큰>과 미국 제국주의의 부성애 환상


"상처 입은 야수가 더 위험하다"는 니체의 말은 미국 현실에서 적확하게 드러난다. 트럼프가 복귀하며 분출되는 미국의 강경한 국내외 정책은 우연이 아니라, 과거 초강대국 시절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하나의 정상화 프로젝트다.


미국의 최전성기는 언제였을까? 명확히 특정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레이건 정부에서 빌 클린턴 정부(1980년대 말~2001년)까지가 그러하다. 냉전의 승리자, 명백한 일극 강대국으로서 자리 잡은 시기다.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이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고, ‘팍스 아메리카’라는 용어가 팍스 로마나에 비견되어 사용되던 시대였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두 차례를 치르며 미국은 경제적·군사적·도덕적 타격을 입는다. 2008년 개봉한 <테이큰>은 이 쇠퇴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 작품이다. 단선적 권선징악 전개에도 불구하고, 리암 니슨 주연의 이 영화는 21세기 복수극의 상징적 이미지가 되었다.


영화 줄거리는 초인적 능력의 전직 특수요원 브라이언이 납치된 딸 킴을 파리에서 무자비하게 구출하는 이야기다. 브라이언은 법의 한계를 넘어 타국 영토를 유린하며 범죄 조직을 싹 쓸고, 무고한 사람까지 희생시키는 과잉 폭력을 행사한다. 부성애의 전형적 이미지로서, 아버지의 책임감과 보호 본능, 딸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관객에게 감정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적으로 부성애는 권위와 질서의 심리 구조이며, 프로이트가 말한 ‘아버지의 상징계’는 가족 안에 법과 권력, 안전과 억압의 이중 구조를 만든다. <테이큰>에서 부성애는 곧 미국 제국주의 권력 논리의 상징과 맞닿는다. 브라이언은 은퇴했으나 여전히 무자비하게 적을 도살하는 ‘상처 입은 야수’인 미국 제국주의의 페르소나다.


미국은 군사적 개입 시 두 가지 명분을 내세운다. 하나는 ‘세계 도덕 경찰’ 역할, 다른 하나는 ‘자국민 보호’다. 그러나 이 명분들은 엄밀히 나뉘지 않으며 본질적으로 변명에 가깝다. 세계 경찰 역할은 1990년대 걸프전과 코소보 분쟁에서 적극 활용됐는데, 소련 붕괴 이후 베트남전 시절과 달리 노골적 색깔론 없이 도덕적 명분으로 패권을 행사했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세계 경찰 역할에 큰 타격을 줬지만, 2011년 리비아 카다피 제거 침공 때에도 이 명분은 유지됐다. ‘자국민 보호’ 명분은 1908년 스페인 전쟁에서 2026년 베네수엘라 침공까지 지속적으로 활용됐다. 미국은 스스로를 아버지로 설정하며 전지적 보호자 역할을 자임한다.


<테이큰>은 2000년대 초·중반 이라크 전쟁의 실체가 드러난 시기에, 쇠퇴하는 미국이 “우린 여전히 살아 있다”고 외치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브라이언이 낯선 파리에서 과잉 무력을 휘두르는 장면은 미국의 군사·정치적 해외 개입과 ‘질서 회복’, ‘보호’ 명분의 시각적 은유다. 이 보호 본능은 국가 폭력과 주권 침해를 가리는 허울로 전유된다.


라캉의 상징계에서 아버지는 법과 질서를 세우는 절대자다. 미국 제국주의가 내세우는 ‘미국적 정의’는 이 절대 권력의 대리이며, 타국의 주체성과 주권을 무시한 채 자신만이 ‘보호자’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국제 무대에서 무력 개입을 정당화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파괴와 폭력은 부성애적 책임이라는 신화에 가려진다.


브라이언의 딸에 대한 사랑은 관객 몰입의 동력이지만, 이 감정적 판타지는 제국주의 자기합리화에 기여한다. ‘아버지가 가족을 지킨다’는 서사는 국가 단위에선 ‘강력한 제국이 세계를 보호한다’는 위장된 침략 논리로 전이된다. 부성애는 개인적 사랑과 국가 권력의 교묘한 중첩이며, 침략의 포장지 역할을 수행한다.


문화비평의 관젬에서, <테이큰>은 보편적 부성애를 매개로 미국 제국주의 침략 메커니즘의 알레고리를 포착할 수 있다. 브라이언의 딸 구출 서사는 ‘보호’라는 명목 아래 벌어지는 제국주의적 침입과 권력 확장의 축소판이다. 이 플롯은 1980년대 <람보 2>나 <코만도>의 논리를 계승한다. 과거 냉전 시대 미국 제국주의 사고를 반영한 이 영화들과 달리, <테이큰>은 쇠퇴한 초강대국의 분노와 울분을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개봉 이후 미국은 여전히 쇠락 중이다. 트럼프의 당선과 낙선, 그리고 다시 복귀한 그의 노골적 행동들—그린란드와 캐나다 땅을 두고 벌인 맹수 같은 태도—는 <테이큰>에 투사된 미국 제국의 섬뜩함을 실감케 한다. 가족, 곧 미국인을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피비린내 나는 폭력을 감행하는 제국주의 정책의 단면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문화비평은 익숙한 가족 서사를 통해 미국 제국주의의 실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부성애라는 감정이 어떻게 국가 권력의 폭력적 침략 논리를 은폐하는지 집중조명한다. ‘가족을 지키는 아버지’의 신화 뒤에 숨은 폭력과 권력관계를 해체하지 않는 한, 현실은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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