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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Dec 20. 2023

불행한 책읽기를 시작하며

 1.김현 선생님의 《행복한 책읽기》는 독서를 통한 사유의 도안이 스케치되어 있다. 비평이라기보다 짤막한 단상을 적어둔 메모에 가까운 글이지만, 때로는 아포리즘처럼, 때로는 사전처럼, 때로는 신문처럼 다채롭게 열려있는 텍스트다. 그래서 거기에서 다룬 책들을 많이 접해보지 못 했을 지라도, 어쩌면 내게는 한 권의 인생책으로 읽혔다.


2. 다른 이야기로 인생의 사상가인 발터 벤야민을 말해보고자 한다. 벤야민이 이념은 영원한 성좌라고 말했다면, 나에게 벤야민은 영원한 성좌다. 적어도 내가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는 성좌처럼 길을 밝혀준다.

 벤야민을 읽으면서, 나에게도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텍스트를 남기는 것. 벤야민처럼 좌파 아웃사이더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으며, 타협 없이 구원을 위한 글을 남기는 것이다.

 내 인생을 뒤흔든 두 권의 책, 《일반통행로》와 《역사 개념에 관하여》처럼, 유물론과 신학을 넘나들며 구원의 텍스트를 남기고자 한다. 내가 글을 쓰려는데는 구원의 가능성을 추적하는 것도 있지만 인격적 성장을 위한 측면도 있다. 《일반통행로》로 어른이 된 벤야민처럼, 글을 통해 어른이 되고자 한다.


 

 3.그러니 앞으로 매일 독서 일기를 남기고자 한다. 발터 벤야민의 아포리즘으로 알을 깨었다면, 나는 독서 일기로 알을 깨고자 한다. 제목은 불행한 책읽기다. 김현 선생께서 《행복한 책읽기》를 하셨다면(물론 메모집을 사후에 편집해서 출판한 책이라,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불행한 책 읽기를 하고자 한다.

 독서가 취미인 사람은 불행하다는 말이 있다. 분명 취미로서 독서는 불행한 독서다. 행복한 사람은 사랑을 하고, 불행한 사람은 독서를 한다. 유능한 사람은 자기계발서를 읽고, 무기력한 사람은 인문학을 읽는다. 그러니 불행하고, 무기력한 나는 인문학을 읽는다. 누가 뭐래도 무소의 뿔처럼 간다.

 서평이나 요약이 아닌 짤막하면서도 날카로운 아포리즘적 단상으로, 책을 읽은 흔적을 남긴다. 그 기억을 재조립해, 구원에 다가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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