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맹수봉 Aug 15. 2022

우울증을 이해받는 일.

우울증 치료 136일


이해를 받는다는  뭘까.



이해되다 (理解되다)  
1. 깨달아져 알게 되다. 또는  알아서 받아들이게 되다.
2. 남의 형편이 헤아려져 받아들여지다.
3. 무엇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다. 또는 무엇이 어떤 것이라고 받아들여지다


아마 2번의 정의와 가깝지 않을까. 나 이외의 타인이 나의 형편이 헤아려져서 받아들여주는 상태. 그런 상태. 그러나 타인을 이해하기란 참 어렵다. 어렵고 또 어려워서 마음의 에너지가 참 많이도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합리화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울한 나는 타인을 돌아볼 여력이 더더욱 없다. 나를 돌아보기에도 큰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타인과의 멀어지는 병이라더니 , 막상 내가 겪어보니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여하튼 ,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중이다.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내 눈높이에서 제단 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살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방전이 금방 되는 나의 마음은 아이의 행동을 오해하고 윽박지르기에 딱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막상 내가 해보니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를 하고자 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이해'라는 건 타인이 나를 온몸으로 끌어안아주는 감정임에 온전히 아이들에게 그것을 알게 해주고 싶어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고 싶어 늘 어금니를 질끈 깨문다. (이러다 나중에 임플란트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말뿐만이 아니라 나의 행동으로도 너희를 사랑한단 다를 입증해주려는 노력? 정도라 보면 될 것 같다.


최근 미국에서 유행하는 (?) 이론 중 하나는 우울증 환자들에게 now and here을 살아가라고 이야기한단다. 우울증에 갇힌 뇌는 끊임없이 과거를 돌아보고 그 과거 중에서도 부정적인 사건과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때문에, 그곳에서 빠져나오려는 노력이 상당히 필요로 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싶어 끊임없이 되뇌인다. 지금을 살아내자고 , 내 눈앞의 반짝거리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바라보자고.


왕따를 당했던 트라우마는 지독하게도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지금까지도 어렵게 만들어놨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듯 , 몇 년 전 옆에 몇 분 이서 부추기기도 했고 또 좋은 마음으로 독서모임을 기획하고자 찾아갔던 교회 담임목사님에게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고는 도저히 목사님을 볼 자신이 없어 교회를 옮겼다. 그리곤 얼마 후 보란 듯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는 주일 설교시간에 날 농담거리로 삼으셨다. 아직도 그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목소리의 톤이 잊히지 않는다. 하하. (건너 건너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유튜브에 박제된 영상을 보게 되었다) 교회를 옮겼을 뿐인데 친했던 몇몇과는 척을 졌고 그때의 나는 호르몬이 날뛰는 임신 중이었다. 지금에야 돌아보니 안 그래도 날뛰던 호르몬에 이런저런 일들이 날 집어삼키기에는 충분했으리라 생각해본다.


럼에도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 그게  건설적인 방향이라는  알고 있다. 이따금 숨이 막히는  같고 , 분노와 우울감이  집어삼킬  같아도 오늘을 충분히 살아내야 한다.


우울증 치료에 있어서 가까운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난 늘 늦게 들어오는 신랑이 보고 싶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드는 날이면 슬그머니 옆에가서 안아달라고 한다. 넓고 따듯하다 못해 숨이 막히게 날 꽉 안아주면 불안감이 차츰 사그라든다. 한여름엔 코끝으로 쿰쿰한 땀냄새가 스쳐 지나가도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오빠 냄새라며. 아이들과 자다가도 잠이 깨서 쉬이 잠이 들기 어려운 날이면 신랑이 자고 있는 방으로 간다. 잠이 안 온다고 하면 긴 팔과 큰 손으로 끌어당겨 다독여준다. 무덤덤한 그의 반응이 고마울 따름이다. 충분하고 온전히 이해받는 것 같아 눈물이 날 만큼 고맙고 또 고맙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안쓰럽긴 하지만 , 지금의 우울한 내가 아마도 온전한 나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정말로 배려가 많은 분들이지만 배려와 이해는 같아 보여도 충분히 다름을 깨달았다.


배려 (配慮) 「명사」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주거나 도와줌.

이해심 (理解心) 「명사」 
사정이나 형편을 알고 받아들이는 마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라는 필터를 한번 걸쳐 상대를 바라본다. 그 필터는 거듭 연습을 통해 ‘나’를 점점 옅게 만들어 내 시선을 거두고 타인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준다. 부모님의 필터를 거쳐 바라본 나는 , 신랑은 바지런하고 가정적이며, 아이들은 건강하고 바르게 잘 자라고 있고 잠잘 곳이 있으니 큰 문제가 없음에도 왜 그러는지 이해하 되지 않으실 거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편하게 산다 , 우울증 그게 뭐냐, 삶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라’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건넨다면 내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 같아 생채기가 난다. 그러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신 건 알지만. 마음이 참 어렵다.


우울증 치료가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다. 지금 4개월을 치료받았고 앞으로 지금의 시간보다 곱절이 더 들 수도 있다. 그 기간 동안 생채기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의 사랑하는 부모님은 나 때문에 서로 싸우셨다 했다. 또 내 잘못일까. 웃으며 넘겼지만 부정적 감정이 회오리 친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병원에 갔던 날이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끙끙 앓던 이 이야기를 전했다. 우울증에 대한 이해가 없으시기 때문에 그러실 수 있고 , 딸이 그렇다는 걸 인정하려면 부모님들이 열심히 살아냈던 시간들을 부정해야 할지도 모르며 우린 어려운 시기를 정말 열심히 잘 살아냈다고 하는 생각들이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인데 그것이 어쩌면 딸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는것을 인지하게 되면 무너질 수 있다고. 그렇다면 나의 감정의 진실은 밝힐 수 있으나 부모님들껜 무엇이 남겼냐고. 그들에게 우울감이 찾아올 수 있는데 그걸 원하는지 물으셨다.


하하 K장녀는 또 그 꼴은 못 보지. 내가 아니라도 충분히 힘드신 분들께 더 큰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이미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아들과 딸의 존재만으로 그들은 버거우실지 모른다.


모두가 처음이라 여전히 어려운 것뿐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우울증 걸린 나도 내가 처음이고 , 우울증 딸을 둔 부모님도 처음이고. 그냥 다 처음이라 서툴고 어려울 뿐이라고. 정답은 없겠지만 이 처음의 것들로 서로 상처받지 않길 바랄 뿐이다.


괜히 말했나 싶기도 하고.


복용 중인 

에스벤 서방정 50mg , 폭세틴 캡슐 20mg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증 환자의 정신승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