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 엘리스의 합리적 정서행동치료
(우울증치료134일)
약을 변경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노에피네프린계열 + 세로토닌계열 + 도파민계열 아주 골고~루 약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약을 먹으면서 문제가 조금 발생했다. 도파민계열의 약은 기분을 요동치지 않게 유지시켜준다 했건만 , 문제는 요동은 치지 않지만 약간 둔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생각보다 예민한 몸뚱이라 스스로의 작은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런 둔한 느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글을 써 내려가고 싶어도 머리가 몽글몽글 멍~~~~ 해서는 이야기를 이어가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더불어 자전거를 탈 때도 운동감각에 약간의 둔함이 있어서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탈 때 모자가 바람에 날아갈 것 같았다.
이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1. 한 손으로 핸들을 잘 잡는다 2. 모자를 꾹 눌러쓴다.
혹은
1. 자전거를 세운다. 2. 모자를 다시 쓴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저게 묘하게 섞여서 한 손으로 모자를 잡고 , 다른 한 손으로는 브레이크를 잡아서 자전거를 세우려는 시도를 했다. 그렇다는 건 자전거가 지그재그로 가면서 모자를 한 손으로 잡게 되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해버렸다. 그럼 바로 모자를 냅다 버리고 양손으로 자전거를 타던지 세우던 해야 하는데 약간의 버퍼링이 생겨서 2-3초 정도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병원에 연락을 했고 , 먹고 있던 약 중에 도파민 계열의 약을 뺐다. 이젠 먹었을 때의 기분을 아니까 뺏을 때의 기분을 비교해보면 될 것 같다. 선생님은 그렇게 세게 약을 준 게 아니라며?_? 이런 반응을 보이셨는데 , 나도 내 몸뚱이가 왜 이런 반응을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뭐 사람마다 다 다른 거니까. 자전거를 타면서 너무 신나서 도파민 분비가 몹시도 많이 나왔나 싶기도 하고? 우울증 치료 전에도 그럭저럭 좋았던 부부 사이가 이제는 더 좋아지면서 사랑의 호르몬이 더 솟아나서 그런 건가? ㅋㅋㅋㅋ 모르겠다.
어쩌면 삶에는 희로애락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 같다. 날이 덥고 힘든 일이 있으면 기분이 안 좋은 것이 당연한 것일 텐데, 그런 것들을 겪고 싶지 않았던 회피 반응이었을까? 불편했던 일들과 열사병을 크게 겪고 났으니 몸이 처지고 힘든 것이 당연한데 그저 괜찮은 기분을 유지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 욕심이 지나쳤나 보다.
매일이 평온하고 괜찮았음 하는 나의 욕심.
이제 그만 힘들고 싶다는 나의 소박한 욕심.
슬플 땐 슬플 줄 알고, 힘들 땐 쉬어갈 줄 알고 , 몸이 아프면 거지 같은 컨디션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충분이 잘 쉬어낼 줄 알아야 한다. 난 정신과 약을 거의 만병통치약쯤으로 생각했던 걸까?
그날 저녁 , 마음이 힘껏 평온해지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 잘 쉬어가는 것도 하던 사람이 잘하지(?) 나는 그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생산적인 일을 해내지 않으면 오늘 하루를 쓸모 있게 보내지 못한 것 같아 쿰쿰한 기분이 자리 잡는다. 어딘가 좀 자기에게 가학적인 성격이랄까. 그렇기 때문에 잘 쉬어가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선풍기를 틀고 앉아서 달콤한 빵에 상큼한 와인을 때려 넣었다. 드라마는 재밌었고 마음이 조금씩 풀려가고 있었다. 그래도 이럴 시간에 책일 좀 더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는 했다. 그래도 이 시간에 좀 더 집중해보기로 했으나 애타게 엄마를 찾으며 나온 둘째에게 연행되어 자러 들어갔다.
이렇게 귀하신 몸이 직접 모시러 나올 줄은 몰랐네(ㅋㅋ) 하루가 귀엽게 마무리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이 개판 오 분 전이었다. 첫째를 등원시키고 둘째와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집으로 걸어오는 사이 덥고 습한 날씨에 된통 당해서 땀으로 샤워를 하곤 컨디션이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보통사람(?)이라면 '아, 어제 와인을 마셔서 컨디션이 이렇게 개똥이 된 건가? 날씨도 덥고. 오늘은 좀 쉬면 나아지겠지. 내일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의 흐름이 이어질 텐데 우울증 환자인 나는 '아침 컨디션이 왜 이러지?? 좀 힘들더니 우울증이 깊어지나? 내일도 이러면 어쩌지?'라는 미래에 대한 활기차고 밝고 긍정적인 흐름이 아닌 꽤나 깊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진다.
오늘은 무리하지 않고 쉬엄쉬엄 하루를 보내며 저녁에 잘 자고 일어난다면 분명 내일은 괜찮을 텐데 그게 어렵다. '숙취 , 이 자식! 날 이렇게 만들다니! 좀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괜찮아지겠지' 이런 내일은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기엔 부정적인 생각의 흐름이 날 압도하고 있는 것 같다.
우울증 환자에게 정신승리가 가당키나 한 소리일까?
우울증이 많이 나아진 것 같이 느껴지지만 , 아직 내 머릿속의 부정적 회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 이제는 정신승리를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약을 먹어서 어느 정도 기분을 좀 끌어올렸다면 , 정신승리는 나의 몫으로 남겨진 것 같다.
최근 심리상담 공부를 시작했는데 , 정신승리를 하고자 하는 노력이 꽤나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문제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경험이나 트라우마가 성인기 정신질환의 원인이라는 이론에 의문을 갖는 학자들이 늘어났다. 그중 한 명이 미국의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 1913~2007)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하고 정신분석가가 된 엘리스는 1940~1950년대에 본격적으로 환자들을 진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거 무의식의 기억을 깨달은 후에도 여전히 증상이 남아 있는 환자들이 있었고, 비용과 시간의 문제가 현실적인 장벽이 되어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던 중 생각의 방식이 문제라는 아이디어를 갖게 되었다. 즉, 현재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엘리스는 우울증과 같은 정서적인 문제가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에서 온 것이라 생각했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그 원인을 찾거나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결론을 미리 내리는 사람의 경우, 반복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어느덧 자동적으로 판단하는 버릇이 생기고 결국 감정까지 우울해진다. 점점 비합리적으로 빠르게 반응하는 자동적 사고가 무용하고 부정적인 방향의 습관적 사고방식을 만들어, 자신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확고하게 하는 것이다.
앞의 예와 같이 어떤 환자가 “앞으로도 나에게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내가 다니는 회사는 모두 망할 것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비합리적인 신념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검토하면서 논박(disputation) 해 본다. 정말 그런 생각이 합리적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사실은 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음에도 아예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알아본다. 왜냐하면 “물론 해봤지만 좋은 일은 절대 생길 리 없다”라고 혼자 믿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흑백논리를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나 하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그 대상이 될지 안 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만일 해고당한다 해도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회사에 금방 들어왔듯이”처럼 가능한 한 객관적인 생각으로 바꿔주면서 합리적인 신념을 갖게 한다. 엘리스는 이런 식의 치료를 합리적 정서행동치료(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라 불렀다. 그는 수동적으로 환자의 말을 듣기만 하는 정신분석과 달리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태도를 취했다. 엘리스의 치료법은 실용적인 면이 많아 1970년대 큰 인기를 끌었고, 정신분석으로만 마음과 정신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던 서구사회에서 새로운 문을 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서에 대한 과학적 접근, 인지치료 - 우울증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치료할 수 있을까? (정신의학의 탄생, 2016.01.15, 하지현)
나 스스로에게 계속 말해줘야지.
"야! 너 그거 숙취 때문에 기분이 거지 같은 거야! 그러니까 내일은 괜찮을걸? 대신 어제 맛있다고 오늘 와인 또 마시면 내일도 거지 같을 테니 잘 알아두도록!"
정신승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