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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Aug 03. 2022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우울증 치료 128일.

아빠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도 이따금 내게 하는 말이 있다.


“네 동생은 머리가 비상해. 그런데 너는 노력을 좀 해야 되는 노력파야"


어렸을 땐 들을 때마다 내 머리가 안 좋다는 이야기인가 싶어 기분이 별로였는데 지금은 ‘노력파'라는 단어만큼 나를 잘 표현하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노력을 좋아한다.


노력 (努力)   
[명사]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씀.
어떤 일을 이루기 위(爲)해 어려움이나 괴로움 등(等)을 이겨 내면서 애쓰거나 힘쓰는 것.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쓰니 ,  노력은 어떤 것으로도 좋은 결과를 내어놓을 수밖에 없다. 타인이 보기엔 실패한 것 같은 결과물일지라도 내겐 노력했던 과정이 남고 또 다음번엔 더 잘 해낼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남는다. 아쉬움이 남을 수 있지만 그건 다음을 위한 좋은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괴로움 등을 이겨내야 하니 , 36년간 노력하는 과정에서 쌓였던 응어리들이 어쩌면 우울증을 빚어냈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 중간만큼은 하는 엄마 , 그리고 괜찮은 아내가 되고 싶었다. 외유내강 , 우아하고 단단하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몸의 근육과 마음의 근육을 늘리고자 ‘노력'했다.


6살 된 아이에게 하고 있는 몇 가지 훈련(?)이 있다. (강아지 훈련을 연상시키는 것 같아 좀 어감이 그렇지만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첫째로는 아이가 유튜브로 ‘페파 피그 , wolf family, bluelay , baby bus’등 영어 콘텐츠를 하루 20분~1시간 구글 타이머로 시간 약속을 하고 시청한다. 내가 지시하는 것보다 본인이 시간 약속을 정하면 큰 반발심없이 지키려고 노력을 하기 때문에 더 보고 싶은 날엔 구구절절 본인의 상황을 설명한다. ‘엄마 내가 지금 보는 게 있는데 이만큼 남았어 , 나 이거만 더 보면 안 될까? 5분만!!!!' 하곤 5분의 타이머를 더 돌리고 영상을 보다가 알람이 울리면 미련이 남지만 유튜브를 끈다. 아,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울고불고하는 과정도 있었고 , 20분 보겠다고 돌려놓고 몰래 시간을 더 돌렸다가 걸려서 다음날 10분밖에 못 본 날 도 있었고 그런 숱한 날들이 1년 정도 지속되었다.


시간 개념과 조절 능력을 향상해주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어린이집을 7월부터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주중엔 어린이집 가기 전에 10-30분 정도 어린이집 차량이 오기 전까지 시청을 한다. 어제는 어린이집 차량이 없는 날이라 친정엄마가 데려다 주기로 했고 , 유튜브를 틀어주면서 할머니 전화가 오면 꺼야 함을 고지했다.


그리곤 15분 후 ,

띠링띠링 전화가 왔다.

아이는 갑작스레 화를 냈다.

“나 너무 화나!!!!! 더 보고 싶단 말이야!!!” (사실 이것도 대단한 게 본인이 화난 사실을 말로 표현했다는 것. 물건을 던지거나 나를 밀지 않았다.)


“엄마는 좋은 마음으로 유튜브를 같이 본 건데 , 네가 다 보고 나서 그렇게 화를 내면 엄마는 앞으로 엄마 아이패드로 너와 유튜브는 못 보겠는데?”라고 하자 아이가 마법 같은 말을 했다.


“다음에 볼 때는 시간 맞추고 볼래요. 그게 영상을 끌 때 화가 덜나요.” 영상 시청을 정리할 마음의 시간이 아이에게도 필요했나 보다. 그렇게 아이와 1년여간 했던 훈련은 (ㅎㅎㅎ) 이제야 순항 중이다. 5분 10분 15분 등 5분 단위로 시간 개념도 알게 되고.



또 다른 하나의 훈련은 마시멜로 실험인데 ,

지금 당장 먹으면 하나를 먹을 수 있지만 정해진 시간을 잘 기다리면 두 개를 먹을 수 있는…. 아이는 아토피가 있어서 시중에 판매되는 것들은 대부분 먹을 수가 없다. 다 먹을 수 있게 놔두면 마음은 행복하겠다만 야 온몸이 난리가 날 수 있다. 어렸을 때야 내 품 안에 자식이니 내가 원하는 것만 먹일 수 있었지만 일요일엔 교회학교를 가고 , 주중엔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이상 이제 아이가 먹는 것을 조절하는 법을 알려줘야만 했다. 아예 못 먹게 하고 조금이라도 먹었을 때 너무 다그치면 아마 아이는 용돈을 받고 본인이 스스로 무언가를 살 수 있을 무렵 걷잡을 수 없이 사 먹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회학교에서 간식 봉지를 받아 오면 함께 성분표를 확인하고 먹을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대부분의 것들은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아이가 잘 참으면 생협에 가서 비슷한 종류의 것들로 아이가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미안스럽게도 가급적이면 버터 , 탈지분유가 들어있는 않은 종류로 유도한다.) 어린이집에서 핫도그가 나온 적이 있는데 (6세가 된 아이는 아직도 햄을 먹어본 적이 없다) 이건 아이에게 물었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으니 어떻게 하고 싶니?라고 하자 ‘엄마 나 이거 한 번도 안 먹어봤어요. 한 개만 먹어볼게요' 그래서 그날은 핫도그 한 개를 먹었고 며칠 뒤 핫도그가 또 나왔을 때는 다른 대체 간식을 보내줘도 되겠냐 물으니 ‘엄마 핫도그 먹어봤으니까 오늘은 이거 먹을게요'라고 했다.


그 외에도 아이 선생님께 듣게 된 바로는 다른 친구들이 간식을 종종 가지고 오면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고 맛이 궁금하니 한 입만 맛을 보고 더 이상 먹지 않는다고 했다. 뭐 또 어떤 날은 더 먹기도 하겠지만서도 , 아이가 자제력을 가지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런 이야기를 건네들은 날들에는  한살림(생협) 플렉스를 해준다. 롤케이크를 하나 큰 거 사서는 '너 먹고 싶은 만큼 잘라서 먹어!!!!!'라고 하면 아이는 정말 행복해하면서 크게 자르곤 먹다가 남긴다 ㅋㅋㅋ. “나 남은 거는 내일 먹을게요"라며.



아이와 함께 했던 노력들은 아이가 살아가는데 좋은 자양분이 될 거라 확신한다.

(너무 아들자랑을 했나? 껄껄껄..)


나 또한 지금 이 시기를 잘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 힘듦이 쌓여서 우울감이 왔다고 해놓고는? 또 이걸 이겨내겠다고 노력한다는 말이 좀 웃기긴 하지만 ,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역시나 ‘노력'밖에 없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엔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정보수집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정보수집에는 역시 ‘책'만 한 게 없고. 우울증에 관련된 책들을 정말 많이 봤고 지금도 보고 있다. 처음엔 에세이 형식의 책을 봤고 이제는 ‘how to’에 대해 적혀있는 것들에 대해서 보기 시작했다. ‘how to’를 보다 보니 또 영역이 확장이 되어 우울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책들도 탐닉하고 있다.


약을 먹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초점을 맞춰 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우울감이 짙어지는 날들에도 예전처럼 화가 많은 우울한 공룡이 되지 않는다. 다만 , 잠을 좀 많이 자고 냉장고가 좀 엉망이 되고 한 그릇 밥을 자주 해주기는 하지만. 우울증에 대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나아지고자 노력을 하고 있으니 결과가 어찌 되었던 , 결코 나는 헛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나는 나아질 것이고 , 나아지고 있으며 , 혹여나 또 어느 미래에 우울증이 찾아올지라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덧 1

앞베란다의 내 한평남짓한 아지트.

어제는 2주간 힘들었던 내게 보상을 해주던 날이었다. 고생했다고 내추럴 와인 반잔과 과자 한 봉지를 놓고 노래를 진득하게 듣다가, 우영우를 보면서 한참을 웃었다 울었다. 여름밤의 공기는 제법 선선했고 얼마 뒤부터 내리던 비는 충분히 나를 감성적으로 만들어주기에 딱이었다. 감성이 차오르니 오늘 하루가 제법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 2

아침에 먹는 것이 내 하루의 세로토닌을 결정하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본 이후로는 입맛이 없더라도 , 과일에 통밀빵 정도는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커피는 그 이후에 :)

첫째는 어린이집, 둘째는 낮잠. 글을 써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롤케이크를 잔뜩 잘라서 가지고 왔다. 흐흐 이것이 행복 아니겠는가.



덧 3.

생리통으로 십여 년을 응급실과 친구를 했었는데 , 환경호르몬 회피를 하는 노력들로 이제는 생리통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러니 내 인생에서 '노력'이라는 키워드를 빼면 뭐가 남을까.


https://blog.naver.com/sutrs/222775242341


복용중인 약 : 에스벤서방정 50mg 폭세틴캡슐 20mg , 아리피졸정 1mg 은 일주일 정도 복용했으나 둔해지는 느낌이 있어 (+자전거탈 때도 불편할 정도) 병원에 전화하곤 약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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