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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수봉 Nov 09. 2022

조증과 괜찮음, 그 애매한 경계 사이에서

우울증 치료 225일.


병원 가던 날이었다.



[맹수봉 님, 잘 지내셨나요? 저번에 힘들면 드시라고 따로 드린 약은 얼마나 드셨나요?]



“선생님 그냥 약을 아예 증량을 해서 주시면 안 될까요? 2-3일 빼고는 계속 약을 더 먹었어요. 치료 시작하고 나서 종종 괜찮은 상태를 마주할 때마다 그게 가장 베스트 한 상태인 줄 알았는데 , 약을 증량해서 먹으니 더 나아진 것 같아요. ‘만족감’을 느끼고 ‘다양한 감정’들을 느껴요. 괜찮은 날들을 보내요”



[네?ㅇ_ㅇ 계속 더 드셨다고요? 그렇담 손떨림이나 위에 관련된 부작용 같은 건 없으셨을까요?]



“손떨림은 없는데 , 소화가 잘 안 되고 속 쓰림이 심해졌어요”



[부작용 관련된 ‘위’ 약을 파우치에 담아드릴 테니 속이 많이 아프실 때 드시면 될 것 같고요 , 혹시 말이 많아지거나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거나 생각이 빨라진다거나.. 그런 방방 뜨는 증상들은 없으셨을까요?]



“예전에 비해 카톡으로 사람들한테 연락을 하는 횟수가 늘기는 했어요. 일을 벌이지는 않지만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는 해요.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 중이고요. 달리기도 4.5km 정도 계속 뛰고요. 확실히 말을 더 많이 하기는 해요. 보통사람들이라면 이런 날들을 보내나? 하는 생각도 해요”



[사람들에게 연락을 먼저 하시고 기분이 좀 더 방방 뜨는 정도면 드셨던 약의 용량이 과할 수 있어요. 약간의 조증 상태가 되는 거죠.]



“음 , 저는 활력이 있어서 좋은걸요?”



[활력이 있는 정도라면야 우리의 목표에 이르는 것이라 좋은 것이지만 , 지금 내 재정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무리하게 돈을 대출해서 쓰면 나중에 갚기가 힘들어지겠죠? 그거랑 마찬가지로 뇌 호르몬 상태가 풍요롭지 못한 상태인데 ‘기분을 대출’해서 무리하게 쓰면 대출 기분을 갚아야 하는 그 어느 날 갑자기 우울함으로 급격히 빠져들어서 힘들 수 있어요. 그런 분들이 종종 계셨고요. 지금 맹수봉 님은 활력과 약 용량 과함 그 경계에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 그럼 40mg 말고 30mg으로 줄여서 먹어볼까요? (원래는 20mg을 먹었다가 저번에 40mg을 먹고 이번에 30mg으로 딜하는 중) 그러다가 부작용이 심하다거나 용량이 과한 증상들이 나타나면 캡슐을 빼고 복용을 할게요”



[그래요 그럼 우리 30mg으로 하고 , 옛날과 비교했을 때 지금이 말이 많아진 편일까요?]



“어… 선생님 애들 낳고 가정 양육하고 코로나 어쩌고 하면서 사실 옛날 제 모습이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아.. 충분히 그러실 수 있어요. 그래서 육아하면서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이 좀 어렵기는 해요. 많이 나아지신 것 같아 기분 좋게 오셨는데 제가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아 죄송하네요. 그렇지만 충분히 조심스럽게 조절해야 할 부분임은 확실하니까요 ^^ 그럼 2주 뒤에 오시는 걸로 할게요]







선생님의 질문에 옛날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는지 기억해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뭐 약용량이 과하니 어쩌니 저쩌니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 우울증을 치료하는 요즘이 가장 마음이 편안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우울증 치료는 앞이 캄캄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힘이 있고 내 남편과 내 아이들이 있어 난 오늘을 충분히 살아낼 수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사랑을 채워주고 보듬어 준다.

한바탕 웃을 수 있게 해 주고 , 

내 존재가 유의미하다는 시그널을 보내준다.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어준다.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가정이 되어주는 내 가족들에게 너무 고맙다.


나도 더 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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