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구원자는 오직 나야

by 이재리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한 번만 도와달라고, 제발 부탁이니 한 번만 나를 이 거지 같은 세상에서 꺼내 달라고 애원을 한 끝에 내린 단 하나의 결론. 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도, 좁은 세상에 갇힌 나를 꺼낼 수 있는 것도 오직 나뿐이라는 것.



어김없이 여행 마지막 날의 아침이 찾아왔다. 며칠 동안 흐리다 맑다는 반복하던 하늘도 눈치껏 맑았으며 바르셀로나에 머물던 여느 날보다 따뜻했다. 다시는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게 할 작정인 것 같았다. 마지막, 참 희한하게도 이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담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 남은 인생 동안 다시 이 도시에 올 일이 있을까? 쉽게 확신하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천천히 길을 나섰다.


바르셀로나에서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것은 구엘 공원이었다. 역시나 가우디의 역작인 동시에 바르셀로나의 주요 관광 수입처이기도 한 이곳은 오후만 돼도 관광객이 너무 많아 이른 아침에 가는 것을 다들 추천했다. 메트로를 타고 근처 역에서 내려 까마득한 오르막을 걷다 보니 입구가 나왔는데, 정식 입구는 아닌 것 같았다. 구글맵이 또 나한테 이상하지만 자기가 생각했을 때 효율적인 길을 알려줬구나, 탄식하며 티켓을 구매하고 공원에 들어섰다.


가우디는 여러모로 멋진 사람이었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구축하고 그걸 평생 고수해 나갔다는 점에서 가장 그랬다. 수많은 비난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꿈꾼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매일 수십 잔의 커피를 마시고 노력한 그의 결과물을 보고 있자니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공원 어디를 봐도 독보적인 가우디의 손길이 머무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그는 그런 면에서도 보통 사람 그 이상이었다.

구엘공원 그리스 극장의 인상적이었던 모자이크

공원을 둘러보고 내려와 점찍어 두었던 카페로 향했다. 마지막 날이니만큼 현지인같이 느지막한 시간에 근처 카페에 가서 느긋하게 브런치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잔뜩 힘을 준 인테리어, 풍요로운 재즈 음악, 필요 이상으로 높은 가격이 책정된 커피와 빵 쪼가리를 먹고 있으면 인생이 한층 다른 색으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직원들이 모두 친절한 탓에 많지 않은 양에도 불구하고 속이 든든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카페에서 나와 슬슬 걸어 카탈루냐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물관은 꽤나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박물관 앞의 벤치에 앉아 바르셀로나 시내를 내려다보니 마치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을 올라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벤치 맞은편에서는 역시나 멋진 버스킹 연주가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가만히 앉아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바르셀로나 곳곳을 누볐을 바람들.


카탈루냐 박물관에서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몬주익 성이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었지만 누군가 여기서 바라보는 지중해의 풍경이 잊을 수 없다고 한 것이 떠올라 무리해서 올라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쉽게 잊히지 않을 광경이 펼쳐졌다. 가끔 저 멀리 흐릿하게 뉘어있는 수평선을 바라볼 때면 가보지도 못한 세상이 그립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이번에도 어김이 없었다.

바르셀로나 항구 뒤편으로 멋진 수평선이 펼쳐져 있다.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이기 때문일까, 끝없이 흐르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하염없이 막연한 기분이 든다. 차이가 있다면 강렬한 햇빛 덕분인지 지중해 바다는 너무 눈부시게 반짝여서 선글라스 없이는 오랫동안 바라보기 어려웠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서 해가 기울어갔고 멀리서부터 하늘이 분홍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이 여행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왔다.


매번 여행을 할 때마다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한테 이렇게 유쾌한 면이 있었구나, 이런 위기 대처 능력이 있었구나, 이렇게 쉽게 아픈 몸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런 것들을. 돌아가면 조금 더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해지고 싶다, 더 많은 세계를 간접적으로라도 탐구하고 싶다와 같이 전에는 명확하지 않았던 욕망들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는 계기를 갖기도 한다. 그리고 항상 깨닫는다. 나는 얼마든지의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몸도 마음도 유난히 유약했던 시절, 믿지도 않은 신에게 매달려 기적을 바랐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 단 한 번만 내 인생을 구원해 주신다면 남은 인생을 당신을 위해서 살겠노라고 간절히 기도했었다. 그래서 내 삶이 나아졌냐고? 애석하게도 내 삶은 그대로였다. 초라하리만큼 무엇도 변하지 않았다. 그때 마음속에 새긴 문장이 이거였다. ‘내 인생의 구원자는 오직 나야.’ 그렇다. 현재의 내 인생이 괴롭다면, 혹은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걸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정말이지 이 세상에 오직 나뿐이다. 다른 누군가는 절대 해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나와 친해지기 위해서, 나를 더 잘 알기 위해서, 내 삶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나만의 신념을 쌓고, 나의 철학을 그려 나가기 위해서. 한 때 형벌이라고 여겼던 이 삶을 한 순간의 여행으로 바꿔 나가기 위해서, 주변의 있는 사물과 풍경을 다른 시야로 보고 몰랐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나아가 삶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찾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나는 내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자신을 모르겠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는 이 시점에 나는 그러한 의문을 품지 않는다. 사람의 본성은 잘 변화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나의 감정이나 생각은 계속해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일반화해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신 내가 얻어가는 것은 삶의 태도다. 앞으로도 나를 더 잘 보살피고, 욕구와 필요를 적절히 충족해 주며 행복을 누리는 사람으로 살아가야지. 때로 고통스러운 날들이 찾아오더라도 냉소와 풍자로 이겨내야지. 나는 언제나 나를 가장 먼저 지켜내야지. 그렇다, 이런 자세라면 앞으로의 날들을 더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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