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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리 Aug 25. 2022

복실복실한 사랑


 얼마 전 직장 동료가 꽤 긴 출장을 떠나면서 나에게 그의 반려견을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단 한 번도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강아지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기도 하거니와, 사실은 살짝 무섭기도 했다. 한참을 망설이는 내게 그는 자신이 찍은 동영상, 사진으로 어필을 하더니 이내 절대 물지 않으며 짖지도 않는다고, 배변도 잘 가리니 적당히 밥과 물만 주고 쓰다듬어 주면 된다고 간곡히 부탁의 말을 전했다.


 겨우 30센티미터를 넘을까 말까 한 작은 강아지의 이름은 마을이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그가 생각했을 때 강아지도 꼭 그렇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했다. 마을이. 작고 소중한 이 녀석이 내 엄지발가락만 한 발로 타닥, 타닥 소리를 내며 걸어올 때부터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치 춤을 추듯 덩실덩실, 구름 위를 걷듯 사뿐사뿐한 모양새였다. 녀석에게 줄 사료와 간식, 패드를 받아 들고서도 한참이나 생각했다. 마을이가 좋아하기만 한다면 하룻밤 새에 모든 간식을 다 입에 물려주고 싶다고.


 마을이는 외로움을 타지만 새침한 타입이었다. "마을아, 이리 와" 하면 결코 오는 법이 없지만 등을 돌리고 누워 버리면 바로 코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뽀뽀라도 할라치면 금세 그르렁 거리면서도 화장실을 가건, 주방에 가건, 침대를 가건 그 어디든 따라왔다. 다른 일에 몰두하느라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금세 발치에 와서 발등을 핥았다. 그리고 꼭 제 엉덩이를 내 몸 한 구석에 딱 밀착시켜 놓고 자리를 잡곤 했다. 종 잡을 수 없는 마을이의 이런 행동들은 자꾸만 사람을 안달 나게 만들었다. 행여 마을이가 헥헥 거리며 웃기라도 하면 세상의 모든 임무를 내가 다 성공적으로 수행한 기분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마을이는 뭐든 같은 행동을 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내가 TV를 보면 옆에 앉아 가만히 TV 화면을 응시하기도 하고, 그러다 내가 뒤로 벌러덩 누워버리면 마을이 역시 몸을 뉘이고 눈을 감았다. 다시 내가 벌떡 일어나 물을 마시면 자신도 물을 마시고, 걸어 다니면 같이 신이 나서 따라다니기도 했다. 문득 마을이에게는 뛰어난 공감 능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마을이로부터 한 수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나도 당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었구나.


 마을이와 함께 지내며 전에는 알지 못했던 다양한 삶의 이면을 보게 되었다. 산책하며 만나는 다른 강아지들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고, 애견카페 등 펫 동반이 가능한 공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학대당한 동물들의 사례를 접하면 더욱더 분노하게 되었으며, 유기견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더 깊이 가슴 아파하게 되었다. 반려동물 용품점에 처음 가 보게 되었고, 거기서 수많은 간식과 사료, 옷이며 장난감 같은 것을 보고 새삼 놀라기도 했다. 이전에는 다소 작위적으로 칭찬했던 다른 지인들의 반려 동물에 대해서도 훨씬 더 진심을 다해 반응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수 싸이가 어떤 심정으로 '연예인'이라는 노래를 불렀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마을이는 곧잘 새벽에도 깨서 잘 자고 있는 나를 깨워 머리로 내 손을 들어 올린다. 얼른 자신을 쓰다듬으라는 얘기다. 그럴 때마다 숙면을 취하고 싶은 욕구와 귀여워 죽을 것 같은 마음이 상충한다. 잠이 들 때마다 몸을 털어재끼는 통에 매트리스가 흔들려 잠이 달아나면 얄미운 생각마저 든다. 낮잠 자고 이렇게 자꾸 새벽에 깰 거야? 더 오랫동안 산책을 시켜야겠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일말의 평온함을 느낀다. 이 새벽은 아무 문제도 없다는 안도감. 그저 너의 귀여움이 나의 폭력성을 불러온다는 정도의 무사함. 이 작은 생명체로 인해 나의 세계가 성장함을 느낀다. 실은 예상치 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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